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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조금 더 약기를 바라는 것은 왜였을까?
의사들이 조금 더 약기를 바라는 것은 왜였을까?
  • 신형준 위원
  • 승인 2019.06.16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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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醫 운영, 월드컵 결승전 의료지원센터 참관기
신형준 대한의사협회 홍보 및 공보 자문위원

5시간 가까이 운영된 ‘의료지원센터’를 이용한 사람은 총 10명이었다. 두통이나 단순 타박상 등 가벼운 증상으로 찾은 이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심하다고 볼 수 있는 게 두드러기가 왼팔 상박부에 심하게 난 20대 여성, 그리고 응원 도중 발목을 삐어서 압박붕대를 감게 된 20대 남성이었다. 당장 응급실을 찾아야만 할 환자는 없는 듯 했다. 이를 위해  ‘동원’돼 대기한 의사는 모두 6명.

 ‘이 같은 단순 진료를 위해 서울시의 중진 의사 6명이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까지 대기해야만 했을까? 크든 작든 시민들에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의사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항상 되뇌면서 무한 봉사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만 할까? 시민들은 정말로 고마워는 할까?’

16일 새벽, U-20 월드컵 결승전 단체 응원이 열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된 ‘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시 의사회 의료지원센터’(이하 센터)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15일 밤~16일 새벽, 서울시 의사회가 월드컵 경기장에 마련한 센터에 어느 의사 선생님이 참여해 어떻게 운영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의사신문의 베테랑 홍미현 기자님께서 멋진 기사를 작성했으니, 필자의 둔필로 가감할 것이 전혀 없다.

다만 의사가 아닌 자로서, 지난 1년 간 대한의사협회와 인연을 맺으며 의료 정책과 의료 현실을 지켜본 필자가 센터를 열었으면 한다고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께 왜 부탁했는지(흔쾌히 들어주신 것, 지금도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박 회장님!), 그럼에도 참여한 서울시 의사 선생님들께 막상 왜 미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고백하자면, 대한민국 의료의 ‘보장성 강화’에 기본적으로 찬성 하면서도, ‘제도의 건강한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필자의 모순과 무책임에 그 누군가가 일갈하며 답을 “툭”하니 던져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위선보다는 위악이 낫지만...

필자는 위선이 너무 싫다. 위선적으로 사느니, 위악이 차라리 낫다고 본다. 이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최근 사례 하나.

어느 개그맨(이하 A씨)이 지자체에서 2시간 강연료로 1550만원을 받을 ‘뻔’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연이 취소됐다. 한데, A씨는 그 정도 강연료를 이미 여러 차례 각 지자체에서 받았다고 한다. 대부분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말이다.

필자는 A씨가 강연료로 1550만원을 받든, 1억 원을 받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받는 것을 왜 비판하는가? 그럴 거면 자본주의를 하지 말지! 세금만 제대로 내면 그만 아닌가?

문제는 그 개그맨이 평소 “판사의 망치와 목수의 망치는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대중이 듣기 좋은 말을 하니까, 강연에서 대중의 호응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막상 자신이 ‘판사의 위치’에 올랐을 때, ‘목수’와는 엄청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필자는 그러나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이 처세라는 면에서 A씨의 ‘말과 행동이 다른 전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20년 수가 협상은 결렬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애초 제시한 2.9%가 되느냐, 아니면 협상 결렬에 따른 패널티로 2.8%가 되느냐 만이 남았을 뿐이다.

한데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애초 초-재진료 30% 인상 등 대폭적인 수가 인상을 이야기했다. 2.9%와 30%! 간극이 너무도 크다.

문제는 의협의 이런 안을 정부가 무시했을 때 대한민국의 의사들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이다. 10차에 걸친 공단과의 수가 협상에도 결렬이 됐으니,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파업뿐인데...

의사들이 ‘30% 수가 인상’을 내세워 파업하면, 시민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동의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일까? ‘대한민국 최강자’(의대 대입 커트라인을 보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 선망 직업은 의사다!) 자리에 위치한 의사들의 파업을 정부는 민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타워 크레인 기사들의 파업처럼 ‘대접’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파업을 상기해보자. 정부의 대응은 강경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한유총은 ‘무조건 항복’ 했고...

센터의 설치를 제안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길게 보면서, 약게 싸우자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의사들이 지금 당장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부와 싸워서 이길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 시민과 좀 더 가까워지면서(물론 지금도 가깝지만!) 장기전과 지구전에 대비하자는 뜻이었다. 개그맨 A씨처럼 겉으로는 “판사와 목수의 망치는 같아야 한다” 운운하면서, 속으로는 ‘실속’을 챙기는 방법도 ‘전술적으로는’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련돼 있지 않았던 의료석

그럼에도... 필자는 경기장에 도착한 이후 솔직히 섭섭했다, 
 
센터에서 진료할 서울시 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한 것은 결승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30분 전인 15일 밤 10시. ‘관중이 도착하기 훨씬 전일 터인데 그리 빨리 센터를 열어야 하나’ 의문도 들었지만, 막말로 ‘까라면 까는 것’!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필자는 의료석이 따로 마련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진료 활동을 하지 않겠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제대로 진료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경기장 특성상 센터를 거창하게 마련할 수는 없고, 의사 선생님들도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탁자라도 어딘가에 한두 개 배치해야 하는 것일 터였다.

한데 의료석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관중석 그 어딘가에 자리 잡은 뒤, 센터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왜 밤 10시까지 경기장에 도착해야만 했는지를 그 제서야 알았다. 관중이 대충 들어선 이후 센터를 열려고 했다가는, 의료석 확보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김성배 서울시 의사회 총무이사가 경기장 도착 직후부터 동분서주했던 것은 이런 이유였다. 센터가 자리 잡은 뒤, 김 이사는 경기장 어디에 센터가 위치했는지 관중에게 홍보해달라면서 단체 응원을 주관한 대한축구협회와 서울시에 거의 읍소하듯 전화를 연신 해댔다.

의료 봉사를 하면서 이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했는지, 의사 선생님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서울시 의사회 오승재 이사와 경문배 이사는 ‘서울특별시 의료봉사단’ 글귀가 등에 적힌 조끼를 입은 뒤 “센터 개설도 알리고, 혹 불편하신 분들이 없는지도 살필 겸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오자”며 자리를 나섰다.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의사가 아닌 내가 오히려 섭섭해 하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어느 한국 영화의 대사 하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

 “고맙습니다”를 세 번 이야기한 어느 청년

‘첫 환자’는 센터 개설 1시간 여 만인 15일 밤 11시 44분에 오신 20대 여성이었다. 왼팔 상박에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 있었다. 김성배 이사 등 몇 의사 선생님들은 환부를 보면서 어떤 약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눈 뒤 하루 몇 차례 바르라며 연고 한 통을 건넸다.

“가져가세요.”

20대 여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 그래도 돼요?”

경기 시작 15분 전인 16일 새벽 12시 45분, 경기장에 마련된  두 개의 대형 화면에 이런 글귀가 흘러나왔다.

‘의료 인력 배치 안내. 관람석 N-A 구역 및 E 구역 데크에 의료 인력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섯 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전광판 화면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기뻐하며, 손을 흔들었다. 박홍준 회장은 대형 화면을 휴대폰 사진에 담느라 바빴고...

‘순수한 건가, 순진한 건가, 아니면 덜 떨어진 건가... 자기 돈 들여서 황금 주말 밤에 1박 2일로 의료 자원 봉사하면서 이 정도 안내해주는 것이 저리도 좋을까?’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족속이다. 누구보다 똑똑하지만, 한편으로는 분명 어수룩한...

전반을 마친 오전 2시쯤, 20대 남성 하나가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왔다. 응원을 하다가 발목을 삐었다는 것이다. 정형외과 전문의 오승재 이사가 압박붕대로 정성스레 발목을 감쌌다.

“조심스레 걸으시고요, 주무실 때는 다친 다리를 조금 올려서 주무세요. 내일 보시고 통증이 더 심해졌다 싶으면, 일요일이니까 응급실에 가시고요.”

청년은 세 차례나 “고맙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10명의 ‘환자’가 센터를 찾았다.

후반 막판 한 골을 더 먹으며 3 대 1이 됐다. 경기 결과를 뒤집을 시간이 부족하자, 경기를 마치지 않았는데도 일부 관중은 자리를 떴다. 애초 새벽 4시까지 센터를 운영하기로 했지만, 의사들끼리만 남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오전 3시 20분, 센터를 마친 뒤 월드컵 경기장 주변의 어느 나무 아래서 의사 선생님들과 서울시 의사회 직원님들은 캔 맥주를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박홍준 회장은 필자에게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센터 운영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었다.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청맹과니인 탓이다.

보장성 강화를 내심 지지하지만, 과연 이것이 지속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의문이다. “수가 30% 인상” 주장에는 ‘의사들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른다’고 투덜대지만, 수가 협상이 결렬되면 수가 0.1%를 패널티로 먹을지도 모르니 2.9%라도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심각히 고민했던 대한의사협회 수뇌부와 수가협상단에는 연민마저 느낀다. 자기 돈 들이고, 귀한 주말 밤 시간까지 써가면서 무료 봉사하는 이들이, 자신들 활동을 한 줄 알리는 대형 전광판 글귀에 그리도 좋아하는 것을 보노라면 ‘나는 끝내 대한민국 의사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여전히 내게 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끝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헤어진 시간은 오전 4시 쯤. 곧 동녘으로 날이 밝아올 것이다. 명징한 해법은 서울시 의사회가 밝아오는 날처럼 시나브로 한걸음씩 찾을 터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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