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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임세원 교수 의사자 지정 호소합니다”
“故 임세원 교수 의사자 지정 호소합니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6.10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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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의학회, 4월 의사자 지정 보류에 탄원서 제출
"간호사에 도망쳐라" 주변 안전 살피다 참변…지정 당연

故 임세원 교수의 의사자 지정이 지난 4월 의사상자 심의위원회에서 보류된 것과 관련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의사자로 지정되기에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동료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 고인의 숭고한 뜻이 의사자 지정을 통해 기억되고 함께 지속적으로 추모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최근 발표했다.

의사자란 직무 외의 행위로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구조행위는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상의 위험을 무릎쓰고 급박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직접적 적극적 행위를 말한다.

지난해 12월 31일 가해자는 예고없이 병원을 찾아왔다. 유가족이 제공한 법원기록에 따르면 피의자는 병원, 기업, 국가가 뇌에 소형폭탄칩을 심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와 관련된 여러 사람을 해치겠다는 표현을 했다.

지난 1월 2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임 교수가 진료실 문 앞 간호사에게 ‘도망치라’고 말하고 본인은 반대편으로 도피했다”며 “가다가 간호사가 피했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서서 간호사를 바라봤고, 피의자가 다가오자 다시 도피를 시작했다. 간호사를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고 설명했다고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고 이후 국회와 언론, 여러 SNS에서 고인에 대한 의사자 지정에 대한 의견이 여론화됐다.

고 임세원 교수는 생전에 본인을 찾아온 환자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이며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는 글을 남긴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외래진료 시 전력투구한다고 서술했다.

그의 책임감은 한 해 마지막날 진료에도 이어졌다. 보통 예약없이 환자가 불쑥 찾아올 경우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되지만 고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책임을 다한 것.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유가족을 통해 받은 법원 등 자료에 따르면, 오후 5시 39분 피의자는 진료를 시작했고 불과 3분 만에 고인은 간호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1분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인은 옆방으로 이동했고 이때 외래간호사가 문을 열자 ‘도망가’라고 소리치며 외래간호사의 반대방향으로 뛰어나갔다. 바로 뒤따라 나온 피의자는 좌측의 외래간호사에게 칼을 휘둘렀고 불과 50센티 정도의 차이로 칼을 피했다.

이때 고인은 간호사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며 멈추었고 간호사스테이션 쪽으로 “빨리 피해! 112에 신고해! 하며 소리를 쳤다. 이 소리에 피의자는 임 교수 쪽으로 방향을 돌려 추격하기 시작하고 이후 비극이 벌어졌다. 불과 10초 후 보안요원이 도착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정리하면, 더이상 진료현장으로 볼 수 없는 흉기 앞에서 범죄피해에 노출된 상황에서도 고인은 △방을 나오면서 사람이 있는 쪽으로 피하지 않고 간호사와 반대편으로 피했고, △본인의 안전을 우선 생각하여 계속 뛰지 않고, 멈추어 뒤를 돌아보아 위험에 처한 간호사의 안전을 확인했으며, △멈추어 다른 간호사에게 ‘빨리 피해! 112에 신고해!’라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 이 소리는 피의자가 뒤를 돌아보고 다시 임교수를 쫓게 하는 신호가 되었다.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동료에게 대피하고 구조를 요청하라 행동을 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의사상자위원회의 고민의 지점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이 찰나의 행동이 생사를 가른 것이다. 보안요원의 출동시간을 감안할 때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피했다면, 적어도 본인은 안전했을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 위기상황에 있었던 동료간호사도 의사자 신청을 위한 진술서에서 “만약 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피하셨더라면 이런 끔찍한 상황을 모면하셨을텐데, 본인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주변동료를 살피시다 사고를 당하셨으므로 의사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저뿐만 아니라 당시 사건 현장에서 도움을 받았던 다른 동료 직원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진술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임 교수의 생명을 지키는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그에 따른 의로운 행동은 비극적 상황에서도 많은 동료의료인, 예비의료인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에 슬픔을 넘어 희망과 신뢰의 메시지를 남겼다”고 전했다.

더해 임 교수의 유가족들은 이 소식을 경찰을 통해 접하고 나서, 비통한 상황에서도 고인이 가장 사랑했던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 방향을 고인의 유지로 밝히고 조의금 1억 원을 기부해 우리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당시 임 교수의 유족들은 “저희 가족이 남편을 아빠를 황망히 잃게 되었으나, 그래도 남편이 그 무서운 상황에서도 간호사나 다른 사람들을 살리려한 의로운 죽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지 않고 의사자로 지정이 되면 저희 가족, 특히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고 임세원 교수의 발인날 고인의 어머니도 “우리 세원이, 바르게 살아줘서 고마워” 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마지막 찰나의 순간까지 바르게 살기 위해 애쓴 고인을 우리가 의사자로 기억하고 이를 통해 유가족들도 사회가 위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학회는 또 이러한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의사상자심의위원회에 제출할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고 임세원 교수 의사자 지정 탄원서 참여 사이트(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P7txBT-iNFhuSKErIHmmhZa4fDOinLEzjoae_oWLbB2yaAQ/viewform)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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