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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의 부작용, 무고죄란 무엇인가
고소의 부작용, 무고죄란 무엇인가
  • 전성훈
  • 승인 2019.06.10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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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40)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최근 의협 회장이 경기도 안산시 안산상록경찰서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는 일이 있었다. 서울이면 모를까, 안산에 왜 의협 회장이 소환되었을까? 게다가 피의자 신분이라니?

지난 4월 한의협은 한의계를 비판하는 영상을 게시한 유튜버 2명을 안산상록경찰서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였다. 그러면서 ‘의료계가 이 유튜버들에게 한의학과 한의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내용으로 유튜브 및 SNS 활동을 해 줄 것을 요청하고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여 한의협의 업무를 방해하였다’라고 주장하며 의협 회장과 의협 한방특위 위원장을 유튜버들과 함께 고소한 것이다.

한의협은 얼마 전 전국의사총연합이 한의사를 ‘한방사’, 한의협을 ‘한방협’이라고 폄훼하였다며 모욕죄로 고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고소.고발 건들까지 더하면, 말 그대로 ‘남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적 대응을 강화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한의협의 대응 방법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 토론의 장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토론의 장에서 유사한 방법으로 반박하면 충분할 것이다. 이익단체가 공권력의 힘을 빌어 비판적인 개인의 입을 닫게 하는 방법은 법이 허용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하책이 아닐까.

의협은 한의협의 막무가내식 고소.고발에 대하여 ‘6월 중순까지 법리 검토를 마치고, 무고죄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법은 근거 없는 고소를 방지하기 위하여 ‘무고죄’를 규정하고 있다. 의협과 달리, 아마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무고죄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무고죄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겠다.

무고죄는 ① 타인을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②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신고한 경우 성립한다. 죄가 인정되면 10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 잘 알고 있는 절도죄가 6년 이하의 징역, 상해죄가 7년 이하의 징역 등인 것에 비하면 중하게 처벌한다고 할 수 있다. 유사한 죄에 대하여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은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아도 역시 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무고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1차적으로 국가의 심판기능이고, 2차적으로 무고당한 사람의 법적 안정성이라는 점이다. 즉 무고죄를 규정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국가가 허위사실을 확인하느라 수사력을 낭비하게 하고, 사법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무고당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약간 섭섭할 수도 있겠다.

아래에서 무고죄에 대한 퀴즈를 몇 개 풀어보자.
Q1: 사립대학교 학생 A는 자신에게 낮은 학점을 준 교수 B에게 앙심을 품고 B를 징계받게 하려고 학교재단에 B가 자신을 성추행하였다고 허위사실을 제보하였다. 무고죄가 성립할까? 정답은 ‘NO’. 사립대학교 재단은 공무소가 아니기 때문에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Q2: C는 D를 처벌받게 하려고 자신은 허위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으로 경찰서에 D를 신고하였는데, 뜻밖에 C가 신고한 내용은 허위사실이 아니고 진실이었다. 무고죄가 성립할까? 정답은 ‘NO’.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신고한 이상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Q3: E는 동성애자인 F를 처벌받게 하려고 경찰서에 ‘F는 동성애자이니 처벌해 달라’라고 신고하였다. 무고죄가 성립할까? 정답은 ‘NO’. 동성애는 죄가 아니므로 형사처분을 받게 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Q4: G는 평소 사이가 극히 나쁜 아버지 H를 처벌받게 하려고 ‘3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주무시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인 H가 베개로 질식시켜 살해한 것이다’라고 경찰서에 허위사실을 신고하였다. 무고죄가 성립할까? 정답은 ‘NO’. 살인죄는 최고형이 사형이고 최고형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공소시효가 25년인데, G의 신고는 그 신고 자체로 공소시효의 완성이 명백하기 때문에 사법질서가 교란될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촉발된 미투운동으로 인하여 묵은 성범죄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음지에 숨어 있었던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어 피해사실을 밝히게 되었다. 현직 도지사가 업무상위력에 의한 성폭행이 인정되어 법정구속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피해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성범죄 피해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성범죄 고소가 늘어남과 비례하여 ‘상대방의 고소는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하며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법무부와 검찰은 작년부터 ‘성폭력 수사매뉴얼’을 개정하여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무고로 고소될 경우 성범죄 사건의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무고 사건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2016년 정춘숙 의원 등이 발의한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의 내용이었으나, 위헌이라는 반론에 부딪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그런데 입법이 불가능해지자, 정부는 검찰의 수사매뉴얼 개정을 통해 편법으로 그 내용을 실무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맡긴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법언이 있다. 공정한 사법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동시에 무고죄의 처벌 필요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수사기관의 압박적 수사를 받는 것, 그리고 심지어 사법기관의 오판으로 처벌까지 받게 되는 것 모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의사가 허위고소할 가능성은 극히 낮으나, 허위고소를 당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무고죄는 국가의 사법질서를 교란하고, 무고를 당한 사람이 억울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게 만드는 중범죄이다. 향후 진행될 의협의 무고 고소 사건에서 사법기관의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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