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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협상 구조 바꿔야”…의료계 불만 증폭
“수가협상 구조 바꿔야”…의료계 불만 증폭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9.06.05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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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공단 권한 너무 커 입맛대로 진행, 해마다 결렬 사태 발생

의원 수가 협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결렬되어 불만을 제기하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정부와 공단의 권한이 너무 커 해마다 결렬 사태가 발생하는 수가협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7개 의약공급자단체의 2020년도 수가계약이 지난 6월 1일 오전 8시 30분경 종료됐다.

이번 협상에서 7개 유형 중 의협만 유일하게 결렬됐는데 의협 수가협상단은 공단 수가협상단과 협상 종료 시한인 5월 31일 자정을 넘겨 1일 오전 8시까지 10차례나 릴레이 협상을 거듭했지만 공단이 최종 제시한 2.9%의 인상률과 간극을 줄이지 못해 결국 건정심행을 택했다.

이필수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공단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인상률 수치로 회원들의 기대감을 반영하기 어려워 결렬하기로 했다”며 “회원들에게 죄송하지만 공단이 최초로 제시한 1.3% 인상률을 2.9%까지 끌어올리기까지 노력한 점은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는 비급여 진료비의 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가 본격 추진돼 문재인 대통령의 ‘수가 적정화’ 약속에 따른 수가 인상에 대한 공급자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더해 지난 2년간 30% 가까이 급등한 최저임금 인상률에 따른 의료계의 부담도 반영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수가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지난해 진료량 증가를 이유로 지난해 추가소요재정분(밴딩, 9758억원)보다 오히려 더 적은 수치를 제시하면서 협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의협은 “지난해 진료량이 증가했다고 올해 밴드폭을 더 줄이는 것은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과 역행하는 것이다. 의원 경영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데 대통령의 수가적정화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반발했고, 병협도 “병원 진료량이 증가한 것은 보장성 강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공급자들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공단 수가협상단까지 난색을 표해 공단 강청희 급여상임이사는 협상 중간에 공급자들에게 고개까지 숙여 사과하며 “재정소위에서 예상보다 낮은 밴딩 수치가 결정돼 ‘전 유형 결렬’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어 더이상 협상을 진행하기 어렵다”며 “최종 밴딩 결과에 따라 수가협상을 포기하고 보건복지부에 이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폭탄 발언했다.

이에 공단 재정소위는 협상 종료일인 31일 밤 11시 무렵 긴급 임시 회의까지 열어 결국 내년도 밴딩은 소폭 인상됐고 의협을 제외한 나머지 유형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애초부터 3%대 인상 불가능…건정심 패널티 적용 시 갈등 더 커질 듯

전체 유형 중 의원만 결렬된 협상 결과에 의료계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건정심행을 택한 의협 입장에서는 공단이 최종 제시한 2.9% 인상률에서 더 내려가는 ‘패널티 적용’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 지난 2008년 유형별 수가계약이 도입된 후 의원 수가 협상은 지금까지 7차례나 결렬됐고 이후 건정심에서 의원 환산지수를 결정하면서 이러한 패턴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더해 가입자단체 대표 상당수가 건정심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반면, 의협은 지난해 수가협상 결렬 시점부터 건정심에서 탈퇴해 현재까지 불참하고 있어 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 의협 수가협상은 애초부터 3% 이상의 인상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공단 재정소위에서 다름 아닌 가입자 측이 인상에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일 오전 8시40분 2020년 유형별 수가협상 종료 직후 열린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 모습.
지난 6월 1일 오전 8시40분 2020년 유형별 수가협상 종료 직후 열린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 모습.

실제로 공단 강청희 이사는 협상 종료 후 “가입자들의 의협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생각보다 매우 커 협상의 가장 큰 벽이 돼 양측의 불신을 줄이고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고 토로했고, 익명을 요구한 재정소위 관계자는 “재정소위에서 가입자 측 위원들이 막판까지 의원 수가 3% 인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고수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가입자 측이 그토록 의원 수가 인상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자는 “의협이 그동안 보장성 강화정책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는 이유로 가입자 측 위원들이 의원 수가 인상에 대해 적잖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수가협상 때마다 협상 종료 전부터 공단 재정운영위에서 내년도 총 추가소요재정은 물론이고 유형별 몫까지 일방적으로 미리 정해 놓고 이를 공급자 측에는 끝까지 공개하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하여 결국 한정된 재정 내에서 공급자들끼리 나눠먹기 눈치싸움을 벌이는 ‘깜깜이 협상’이 지속됐다. 이로 인해 수가협상은 진정한 ‘협상’이 아니라는 공급자들의 인식이 팽배한 상황. 

의료계는 이러한 불공정한 수가협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지금까지 협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식적 과정이 되풀이돼 왔다. 어떻게 이런 비합리적인 제도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며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우선 이번 건정심 결과부터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의사총연합도 “정부가 답을 정해 놓고 공급자단체를 겁박하거나 적당히 구슬려 ‘어린아이 사탕 쥐여주는 식’의 ‘한편의 쇼’가 매년 벌어지고 있다”며 “사실상 정부의 대리 역할을 하는 공단과 공급자 간 힘의 크기도 대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단은 매년 수가협상에 앞서 수천만 원을 들여 환산지수 연구용역까지 진행해 각종 근거자료를 확보하여 공급자단체들의 수가인상 요구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써왔다.

공급자단체의 수가협상 개선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공단도 이에 대응할 예정. 강청희 공단 급여이사는 “올 하반기 공급자들과 ‘제도발전협의체’를 재개해 협상방식개선을 논의하고 무엇보다 이번 협상에서 유독 공급자들의 불만이 높았던 SGR 모형 개선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이사는 또 “의협 협상은 결렬됐지만 협상 과정에서 보험자가 가입자-공급자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1조 원 이상의 진전된 재정투입을 바탕으로 상호 간극의 차이를 좁힐 수 있었던 점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의협도 이번 수가협상은 결렬됐지만 정부와 대화는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필수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와 대화 단절이 아닌 상생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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