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2:01 (금)
모리스 라벨(물의 유희) 작품번호 30
모리스 라벨(물의 유희) 작품번호 30
  • 오재원
  • 승인 2019.06.03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식 이야기 (473)

■ 물방울의 섬세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맑은 음의 향연으로 표현
이 작품은 드뷔시의 영향을 받아 라벨이 26세인 1901년에 쓴 작품으로 가장 뛰어난 독창성을 가진 인상주의 작품 중 하나이다. 당시 인상파의 거두 드뷔시도 아직 피아노 음악에서는 인상파 스타일을 정립하고 있지 않았을 때였다.

프랑스 시인 ‘앙리 드 레니’의 시모음집에서 “물의 신이 그를 간질이는 물방울을 보며 웃는다.”는 시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하였다. 물결칠 때의 섬세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글로 적었다면 라벨은 그것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환희의 감각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악보에 이러한 주석을 남겼다.

“맑게 개인 한 낮, 하늘로 뿜어 오르는 분수가 햇빛을 받아 아롱지며 사라져 가는 모습을 신선하게 잘 그려냈다. 조용하게 아르페지오로 시작되는 서두는 이 작품의 무드를 여실히 조성시킨다. 이 부분의 리듬은 물의 유희의 고동이라고나 할까… 이것이 진전됨에 따라 물의 노래를 이끌어 간다. 이렇게 여러 갈래로 전개되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처음의 목가적인 기분으로 돌아간다. 물의 테마는 후반부에서도 요긴한 소재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르페지오로 그 정경을 그린 후 조용히 사라진다.”

이 작품은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Annees de Pelerinage Premiere Annee)’ 중의 ‘에스테장의 분수(Les Jeux d’Eaux a la villa d’Este)’와 ‘샘가에서(Au Bord d’une Source)’에서 영향을 받아 작곡됐다. 피아노에 의한 물의 생태를 묘사하였고, 불협화음을 이용하여 여러 색깔이 맑게 울리는 음의 향연들로 표현하였다.

음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라벨은 인상주의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고전이 가진 격조를 지키면서도 모든 것을 신선하고 대담한 색채의 화성적인 감각과 결부시켰다. 분방한 시정을 띠면서도 그 형식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형성한 것이다. 라벨은 “내 작품에서 사람들이 읽고자 하는 들릴 듯 말 듯한 여린 음들의 새로움은 그 모든 것의 시작이며, 물결이 살랑대는 소리나 샘, 폭포, 실개천 등,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음악적인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는 말을 남겼다.

라벨의 음악에는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런 멋,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등 서로 상반적인 것들이 잘 조화되어 나타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리스트의 기교와 복고풍과 함께 인상주의 기법을 혼합시켜 라벨 특유의 독특한 표현으로 빚어내고 있다. 20세기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새로운 음의 시대를 열어간 현대음악으로 음악사에 획을 긋는 전환적인 수작이다.

이 작품은 1902년 당시 라벨과 친분이 있던 스페인의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니예스에 의해서 초연되었고 자신의 스승인 가브리엘 포레에게 헌정하였다.

Tres doux 서두의 세 마디에 나오는 신비한 아르페지오 음이 제1주제이다. 그 후 제15~16마디에서는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에서 즐겨 쓴 5음 음계를 사용했고, 이것은 제17~18마디까지 연결되어 매우 자유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제19마디의 왼손 성부에서 제2주제가 나타나며 오른손에는 역시 인상주의적인 2도의 아르페지오가 나온다.

제2주제는 제23마디까지 오른손이 받아서 나오며, 왼손은 계속적인 32분 음표로써 마치 물방울이 아래위로 튀고, 솟아나는 모습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제24마디부터 50마디까지의 광범위한 발전부에서는 라벨이 즐겨 쓴 춤곡 리듬도 나타난다. 중반부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반음계적인 음들의 화려한 제2주제로 돌아가고 제38마디의 왼손 성부는 제1주제의 변형된 모습이며 오른 손의 멜로디는 또 다른 물방울의 모습을 표현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다시 제1주제로 돌아와서 곡을 마친다.

특히 곡의 마지막 부분은 반짝일 만큼의 아름다운 아르페지오가 마지막 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르페지오의 레가토(부드럽게 연결하는 방식)와 스타카토(톡 톡 끊어서 연주하는 방식), 트릴, 피아노의 검은 건반을 쭉 내려 긋는 글리산도 등을 이용해서 다양하게 물방울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 들을 만한 음반
△상송 프랑수아(피아노)(EMI, 1966)
△마르타 아르게리치(피아노)(DG, 1961)
△발터 기제킹(피아노)(EMI, 1954)
△로베르 카자드쉬(피아노)(CBS, 195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