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
사람의 얼굴
  • 정준기
  • 승인 2019.06.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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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8)
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얼굴, 즉 용모는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거나 기억할 때, 당연히 몸의 여러 부분 중에서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또한 ‘얼굴’은 그 사람의 평판, 체면, 명예를 나타내는 추상적 용어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못 생긴 편이었다. 특히 희미한 눈썹과 두툼한 위 눈두덩에 눈은 가늘고 작았다. 이렇게 작은 눈과 지방이 많은 눈두덩은 추운 겨울을 지내는 몽고족에서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발달된 형질이었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눈이 작아 ‘단추 구멍’ 같다고 했다. 우리 집 당고모들은 장난기가 많아 눈을 뜨고 있는 나에게 졸지 말고 눈을 떠보라고 놀리곤 하였다. 어떤 사람은 작은 눈 때문에 내가 사납게 보인다고도 하였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야속하였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용모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고등학교생 시절 신장도 작아 60명인 반에서 5번(그 당시는 키 순서로 학생 번호를 정하였음) 이상을 벗어나지 못 했고 몸도 말라 볼품이 없었다. 자연히 ‘body image’도 이에 맞추어져 여가 시간에 다른 남학생들은 체력단련이나 운동을 하는데, 나는 주로 독서와 음악 감상을 하며 휴식을 즐겼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애(自己愛)가 있어 석고 댓 상을 해보면 모두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그린다고 한다. 내 경우 무의식적으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반가사유상 같은 몸과 용모에 내 이미지가 고착되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뛰어난 용모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의예과에 같이 입학한 친구 중에 아주 미남이고 장신인 학생이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 조화된 시원한 용모로 주위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당구장이나 식당에 가면 여종업원들이 한눈에 반해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다. 여학생들은 그의 말을 거역하지 않아 남녀 대학생 사이에 미팅을 주선하는 일은 모두 이 친구가 담당하였다. 그러나 오빠 부대 여학생들 성화에 결국은 학교를 휴학하고 나중에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

사람의 얼굴은 두개골 형태에서 기본적인 윤곽이 결정되고, 눈, 코, 입, 귀의 모양과 위치, 80여 개 얼굴 근육의 수축과 이완에 의하여 표정이 생긴다. 인간의 얼굴 근육은 제각기 여러 형태, 위치와 방향으로 복잡하게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 많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예를 들면 5가지 근육으로 만 가지 다른 표정이 가능하단다. 따라서 얼굴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예리하게 관찰하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반면에 죽은 사람 얼굴은 이런 근육 긴장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억하기 힘들다.

얼굴 뼈와 근육은 환경과 쓰임에 따라 일생 중에도 계속 변화한다. 음식을 처리하는 턱뼈와 근육은 얼굴의 1/3 이상을 차지하기에 음식 습관이 용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즐겨 먹는 음식의 종류, 채소와 육류, 생선과 고기, 부드러운 음식과 딱딱한 음식 인지에 따라 씹는 근육과 뼈가 반응하고 변화되어 표정이 달라진다. 늘 같이 밥 먹는 식구나 부부 얼굴이 서로 닮아가는 이유이다.

얼굴은 사람의 혼(魂)인 얼이 잘 나타나는 신체부분이다. “마흔 살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다.”고 링컨 대통령이 말했다. 얼굴은 자신의 생각,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 용모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신 내면의 생각과 정체성에 따라 자주 쓰는 얼굴 근육의 긴장도가 전체의 조화에 반영된다. 한국인 200여 명의 인물상을 만든 조각가 이영학 선생은 이제는 운명을 점치는 관상가(觀相家)가 다 되었다고 했다. 부족한 내 안목으로도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원칙을 지키는 반듯한 사람인지 편법으로 욕심을 챙기는 사람인지 대충 알 수가 있다.

물론 인간 내면의 가치를 얼굴 하나로만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번은 우리 문화유적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표지에 있는 작가 사진을 보니 눈, 코, 입 하나하나가 객관적 관점에서 추남에 속할 정도였다. 그 책은 의외로 아주 내용이 좋고 재미가 있어 흠뻑 빠져서 하루 만에 독파하였다. 다 읽고 다시 본 작가의 얼굴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즉, 고달픈 삶과 연륜 때문에 추해지고 늙어질 수 있지만 성숙해진 얼굴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가 내 얼굴을 거울에 비쳐보니 전형적인 샌님 용모다. 여기에다 안경을 쓰니 누가 보아도 학교 선생이다. 요즘은 겨울에도 춥지 않게 살아 두툼했던 위 눈덩이는 없어지고 대신 아래 눈덩이가 생기고 입술은 두꺼워졌다. 안경 안의 작고 가느다란 눈은 지적이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고 두둔해 주는 사람도 있으나, 입술은 아둔하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두개골에 눈, 코, 입과 표정이 단정하지만 아집도 있는 모양새이다. 평생을 고생없이 대학병원에만 있어 이렇게 변했으리라.

초면인 경우에도 곧잘 사람들은 내가 의사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이라고 짐작한다. 이제는 이 용모로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이나 나쁜 짓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여튼 타의에서지만 ‘얼굴’이 깎이는 일은 못하게 생겼으니 이나마 천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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