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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그 달콤한 독약
복수, 그 달콤한 독약
  • 전성훈
  • 승인 2019.06.03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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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39)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필자가 학생 시절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암굴왕’이었다(이건 무슨 책인가 한다면, 아마도 젊은 사람). 원제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인 이 소설은, 200년 전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신문에 연재하였던 통속소설이다. 이 책이 왜 소년소녀권장도서목록에 들어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모범생이었던 필자는 ‘권장도서’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이 왜 그렇게 필자를 몰입시켰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원작의 완역본을 찾아 읽었다. 방대한 분량을 또 다시 몰입하여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이야기가 통쾌한 복수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복수(復讐, revenge),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두려움? 긴장감? 불안감? 혹은 쾌감? 어떤 느낌이 들던지 간에 일상적인 느낌은 아닐 것이다. 복수는 일상에 반대되는, 그리고 일상을 파괴하는 이질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항상 ‘용서’라는 이란성 쌍둥이를 꼬리표로 달고 다니면서도, 그 대리만족적 쾌감으로 인해 많은 문학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어 왔다. 서양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부터 한국의 막장드라마까지.

흔히 인간은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동물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는 생존을 위한 판단을 할 때이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인간은 생존과 무관한 판단을 하는 경우도 많고, 이 경우 상당부분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왜냐하면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특징, 즉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특징 때문에 언제나 ‘피를 피로 씻는’ 복수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의 일부분을 당당히 장식해 왔다. 이러한 복수는 1차적인 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나 문명을 이룩한 사회, 따라서 관계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더욱 중시되었다.

오랜 문명을 지닌 중국을 보자. 2,000년 전 오왕 합려, 그 아들 부차, 그리고 월왕 구천 사이의 복수와 재복수 이야기를 담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는 누구나 알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벌어진 사무라이들의 복수 학살극을 모티브로 한 창작물 추신구라(忠臣藏)가 여러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영화 ‘대부’를 통하여 가족 간의 복수 문화가 널리 알려진 시칠리아는 어떤가? ‘카눈’이라는 명예살인이 빈번했다고 하는 알바니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이제 복수는 옛날이야기인가? 당연히 아니다. 최근 중국 허난성 뤄양에서 50대 남성과 그 아내, 20대 아들 3명이 집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끔찍한 살인극이 벌어졌다. 범인은 옆집 30대 청년이었다. 그 청년의 아버지는 20년 전 피해자 가정의 가장와 다툼이 생겨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이를 몹시 분해 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아들은 20년 동안 때를 기다리다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자 피해자 일가를 몰살시킨 것이다. 그 아들의 방에는 ‘반드시 원수를 갚자’와 같은 복수를 다짐하는 글들이 여럿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현대판 복수극은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에만 특유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인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을 보고 그 배후인 미국에게 복수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사마 빈 라덴. 그가 19년 뒤 일으킨 9.11 테러는 아무런 정당성 없는 사상 최악의 복수극이었다. 물론 그 피해자인 미국이 복수를 내걸고 일으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역시 정당성 없는 복수극에 불과했지만.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현세적인 한국인들은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욕하고 털어버릴 뿐’ 먼 미래의 복수에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욕이 발달한 언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우습지만 한국인들은 성질이 너무 급하여 10년, 20년을 기다려서 복수할 능력 자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자살하고 귀신이 되어 나타나겠다’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것을 보면, 적극적 의미의 복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모욕과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로서, 역시 한국인들은 ‘욕 잘 하고, 욕 먹으면 발끈하는’ 사람들이지 조용히 뒤에서 복수를 꾸미는 사람들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법은 ‘복수’라는 것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첫째 법적으로는 그 동기를 고려한 ‘복수’라는 개념이 아닌, 동기를 불문하고 그 행위에 초점을 맞춘 ‘보복’이라는 개념을 쓴다. 둘째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한 보복살인 등에 대하여는 일반살인죄보다 형량을 2배로 가중한다. 보복상해.폭행.체포.감금.협박의 경우 역시 형량을 가중한다. 셋째 구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고려요소 중 하나로서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규정함으로써 보복 우려가 있다면 구속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넷째 유죄 판결시 형량을 정할 때 ‘범행 후의 정황’을 규정함으로써 범행 후 피해자 등에 대한 보복행위가 있는 경우 예외 없이 중벌에 처한다.

법률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어 사회구성원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의 보호를 위한 것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폭력에 의한 크고 작은 복수가 당연시되는 일상을 보다 안전하고 예측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사적 복수를 금지하되 그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으니 국가가 대행하겠다는 합의에 오늘날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하지만 일부는 이러한 합의를 무시하고 칼을 뽑아 복수에 나서고, 일부는 법과 상황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찌질한 복수를 하고, 대부분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생각나는 욕이란 욕을 다 하면서 ‘복수는 나의 것’의 극장표를 사거나 악녀가 처절하게 응징을 받는 막장드라마를 켠다. 어찌 보면 그래야 인간답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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