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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에스더가 돼 ‘보구녀관’을 품어보다”
“박 에스더가 돼 ‘보구녀관’을 품어보다”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05.27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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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희 총재, 이화의료원에 보구녀관 복원 ‘감사’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대서울병원에 전달되길”

#. “1891년 4월 11일. 로제타는 3월부터 총 4건의 ‘구순구개열’을 수술했다. 나는 그녀의 수술을 보조했고, 수술 시 피를 잘 닦아내고 혈관을 누르는 지혈 겸자도 제법 잘 다루게 됐다. 구순구개열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던 사람들이 수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의사’가 하는 일이 참 아름다운 일임을 깨달았다. 나는 반드시 혼자 힘으로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될 것이다.”

이는 박 에스더 박사의 ’의사 탄생‘ 비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는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딴 서재필 박사이지만, 정식 ‘의사’ 면허를 가지고 한국에서 활동한 ‘국내 최초이자 여성 최초 한국인 의사‘는 박 에스더이다.

1877년에 김홍택의 셋째 딸로 태어나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박 에스더. 하지만 박 에스더는 한국 여성 의학의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참된 의술을 실천함으로써 한국 의료사와 여성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조명되고 있다. 

박 에스더의 조카인 박문희 걸스카우트 총재가 최근 이대서울병원에 마련된 '보구녀관'을 찾아 박 에스더의 발자취와 역사, 그리고 그녀가 평생 강조한 ‘사랑’의 마음을 가슴에 담았다. 

박문희 총재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의료 조수로 시작해, 의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35살이라는 짧은 삶이었지만 박 에스더와 평생을 함께 한 보구녀관 복원에 애써준 이화의료원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박 에스더의 삶과 역사가 숨어있는 보구녀관을 둘러보며 그녀의 어렵고 고단했던 의사 시절 삶을 회상했다.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박 총재는 “부모님은 항상, 박 에스더 선생님이 살아온 생애를 통해 자손들에게 남긴 교훈을 들려주셨는데, 그 분은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며 의술을 펼치셨다”면서 “박 에스더의 선생님의 말에 따라, 우리 부모님은 물론, 나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 에스더 선생님이 한국 의학과 여성들을 위해 의술을 펼친 보구녀관 사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대서울병원 개원과 보구녀관의 복원 소식을 듣고 ‘역사’를 위해 이화의료원에 기증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복원된 보구녀관에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박 에스더 선생님이 기뻐하면서도 쑥스러워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신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료의 발전과 함께 건강과 의술에 대해 낮은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신 박 에스더 선생님이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가신 것이 후회될 것 같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박 총재는 “이화학당 보구녀관을 시작으로 이화의료원 동대문병원을 거쳐 이대목동병원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거대한 이대서울병원이 최근 건립돼 마음이 뿌듯하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박 에스더 선생님의 마음과 같이 이대서울병원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보듬으며 의술을 펼쳐 지역은 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박 총재는 “박 에스더 선생님이 ‘한국 여성의학’과 ‘참된 의술을 실천’한 것이 헛되지 않도록, 이화의료원이 더욱 발전해 국내 의학의 선두자로 큰 획을 그어 나아가는 의료원으로 성장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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