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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라벨 피아노협주곡 G장조
모리스 라벨 피아노협주곡 G장조
  • 오재원
  • 승인 2019.05.27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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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472)

■ 고전양식과 20세기음악을 결합한 세련된 신고전주의 결정체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라벨은 군 입대를 한다. 이미 스무 살 때 입영 대상자였지만, 작은 키와 건강상의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다시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열망해 육군을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공군 운전병으로 참전하였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치열한 격전지로 유명한 베르됭 지역에서 수송부대에서 복무했으나 예민한 성격에다가 유난히 키가 작고 결벽증까지 있었던 터라 전쟁터에서 견뎌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군을 제대한 직후 설상가상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했던 라벨에게 견디기 힘든 상실감을 안기게 된다. 전장에서 목격했던 숱한 주검들과 어머니와의 사별은 그에게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1919년 이전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일방적 문화흐름에 변화가 생기면서 미국문화가 유럽에 속속 상륙하기 시작하여 그 유입은 약 20여 년 계속된다. 이 시기 재즈 어법을 자신의 음악 속으로 흡수하면서 스페인풍의 색채와 함께 자신만의 음악을 구사하게 된다. 스페인 혈통의 어머니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의 작은 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1927년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할 기회를 갖게 되어 여러 도시를 돌았는데 이때 재즈와 좀 더 밀접하게 접촉하게 된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1929년부터 1931년 사이 피아노협주곡 G장조와 왼손을 위한 협주곡 D장조를 작곡하게 된다. 두 작품은 <볼레로>를 통해 상상을 뛰어넘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게 된 후 자신감이 넘쳐 있을 때 탄생한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신고전주의적 걸작들이다. 그는 고전주의적인 형식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신바로크적인 <쿠프랭의 무덤> 등을 작곡하여 리듬, 음색의 잔향, 음영의 조화 등을 18세기형식을 20세기에 맞게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마침내 이 두 피아노협주곡에 이르러서 규칙적인 프레이징과 음악적 요소들의 절묘한 균형감을 통합하여 신고전주의적인 양식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결합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스페인적인 취향의 선명하고 화려한 아름다움과 동양적인 판타지, 리듬감과 색채감, 그리고 한층 분명하게 드러낸 재즈 선율, 더욱 정교해진 세공력과 함께 고전주의 오마주 등이 말년의 원숙한 손끝에서 어우러진 독자적인 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는 리스트처럼 본인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비르투오소적인 기교를 발산하고자 이 협주곡을 작곡했으나 50대에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는 것을 친구들이 만류하자 연주를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모차르트와 생상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작곡했는데 특히 제2악장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오중주 제2악장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협주곡이란 화려하고 경쾌한 마음의 음악이어야 한다. 어떤 극적 효과나 심오한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그는 그 이전 시대보다 훨씬 세련되고 풍부한 효과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1932년 1월 파리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라벨 특별연주회에서 자신의 지휘와 마르게리트 롱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다. 라벨은 그녀를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밝혔다. 1932년 4월 진행된 스튜디오리코딩에서 그는 마음에 들 때까지 연주를 수십 번 이상 반복하게 했는데 롱 여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새벽 세 시쯤 이었어요. 녹음이 끝났다고 생각해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더니 라벨은 냉정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더군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라벨의 참관 하에 녹음한 롱의 리코딩은 지금까지 불변의 기준으로서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1악장 Allegramente 명확한 소나타 형식으로 경쾌한 막대소리와 함께 율동감 넘치는 악구로 문을 연다. 피콜로와 피아노가 어울려 새가 지저귀면서 날아가는 듯한 음형을 연주하다 풍부한 음악적 소재와 함께 다채로운 악상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제2악장 Adagio assai 무반주 피아노 솔로가 우아하게 시작하면서 색채감과 분위기는 그 감수성이 최고조로 고양되면서 감동을 자아낸다. 마지막에는 꺼질 듯이 사라지는 인상적인 피아니시모가 어머니의 죽음, 세계대전의 참상 등을 그리는 듯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강하다.

 △제3악장 Presto 격렬하게 달려 나가는 듯 약간 들뜬 기분으로 펼쳐지면서 빠르고 현란한 피아노와 타악기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 들을 만한 음반
 △모니크 하스(피아노), 파울 페라이(지휘),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DG, 1965)△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피아노), 에토레 그라시스(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57)△상송 프랑스와(피아노), 앙드레 클뤼탕스(지휘), 파리 오케스트라(EMI, 1960)△마르타 아르게리치(피아노),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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