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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갚음
안갚음
  • 유형준
  • 승인 2019.05.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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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74)
유형준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유형준 CM병원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저에게 할머니가 없었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며/할머니에게 제가 없었다면 여생을 마칠 수가 없습니다/할머니와 손자 두 사람이 다시 서로 생명을 의지하고 있습니다/이것이 구차하게 폐하고 멀리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저는 올해 마흔 넷이고/할머니는 구십 육세입니다/따라서 제가 폐하께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할머니의 은혜를 갚을 날은 짧습니다/까마귀 같은 정리로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할 수 있기를 원하고 바랍니다”

[臣無祖母 無以至今日(신무조모 무이지금일)/祖母無臣 無與終餘年(조모무신 무여종여년)/母孫二人 更相爲命(모손이인 경상위명)/是以區區不能廢遠(시이구구불능폐원)/臣密今年四十有四(신밀금년사십유사)/祖母劉今年九十有六(조모유금년구십유륙)/是臣盡節於陛下日長(시신진절어폐하일장)/報劉之日短也(보유지일단야)/烏鳥私情 願乞終養(오조사정원걸종양)]

중국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 한 대목이다. 세태와 인정의 바탕에서 가슴을 적시는 감동의 눈물과 고개 끄덕임을 함께 자아내는 중국 3대 명문장 중의 하나다. 세상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유의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우애가 없는 사람이고,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며, 이밀의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다.”

진정표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하 밀이 아룁니다/제가 험한 운명으로 일찍이 불쌍한 흉사를 당해/태어나 6개월만에 아버님을 여의고/네 살 때 외숙부께서 어머니를 개가시키니/할머니 유씨께서/저의 외롭고 약한 바를 불쌍히 여겨 몸소 부양했습니다/저는 잔병이 많아 아홉 살이 되도록 걷지 못하고/쇠락해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자립하게 되었습니다/일찍 백부와 숙부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어/가문은 쇠미하고 복은 없어 늦게 자식을 두었습니다/밖으로는 기복이나 공복을 입을 가까운 친척도 없고/안으로는 문에서 맞아줄 심부름하는 아이도 없었습니다/외롭게 홀로 서서 몸과 그림자가 서로 위로할 뿐입니다./할머니도 일찍이 병으로 약해/늘 병상에 있습니다/저는 옆에서 약을 달이며 일찍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할머니가 요행히 마침내 남은 여생을 보전하시면/저는 살아서는 당연히 목을 바치고/죽어서는 당연히 결초보은 하겠습니다/저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으로/삼가 절하고 표로서 아룁니다.”

글 속의 내용과 같이 이밀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개가하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의 병세가 위독할 때에 황제가 관직을 내리자 할머니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고 밝히며 그 명을 따를 수 없는 사정을 글로 써서 올린다. 바로 ‘진정표’다. 황제는 감동하여 이밀에게 노비와 식량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이밀의 진정표는 효심이 담긴 문장으로 지금도 감동을 주고 있다.

까마귀는 자라서 길러준 어미가 죽을 날이 육 개월 정도 남았다고 판단되면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여 은혜를 갚는다 하여 반포조(反哺鳥)라고도 한다. 까마귀는 키워준 어미를 알고 그때부터 먹이를 물어서 소화가 잘 되도록 위에 넣고 불려서 어미에게 먹여 준다고 합니다이에 빗대어 부모를 섬기는 자식의 지극한 효심을 반포지효(反哺之孝), 오조사정(烏鳥私情)이라 한다. 그런 까닭에 효심을 읊은 글 중에는 까마귀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의 시 두 수를 본다.

‘까마귀 검다한들 속까지 검을소냐/자오(慈烏, 까마귀) 반포(反哺)하니 새중에 효자로다/사람이 그 안 같으면 까마귀엔들 비하리’ <지덕붕> ‘뉘라서 까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박효관>

오조사정의 반포지효처럼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순 우리말로 ‘안갚음’이라 한다. 여기서 ‘안’은 ‘속’, 즉 ‘마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안갚음’은 마음을 다 해 길러주신 은혜를 갚는 일이다.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반포와 같은 뜻이다. 안갚음은 자식이 드리는 것이고, 부모가 자식의 봉양을 받는 것은 ‘안받음’이라 한다. ‘안’은 받을 이가 있어야 갚을 수 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철따라 잠자리채, 버들피리, 썰매 등을 만들어 주셨다. 주변에서 붙여드린 별명처럼, 할머님이 제작하시는 모든 놀이기구에는 고집이 단단히 붙어 있었다. 그 덕에 친구들의 잠자리채, 피리, 썰매들 보다 성능이 좋았고 수명도 오래 갔다. 할머니가 세상 떠나시던 날, ‘이젠 누가 썰매를 만들어 주나?’라며 엉엉 운 철없던 슬픔이 얼핏 떠오른다. 부모님 돌아가신 이제는 ‘안’을 받을 분들이 안 계시니 ‘안’을 갚을 길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바와 다름없을 것이다. 시인 정철도 같은 심정이었다.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정철>

자식을 키워 봐야만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부모의 처지가 되어 보아야만 비로소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에는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게 존재한다. 노력, 공부, 연마, 금전, 사랑 등을 몇 번씩 되풀이해도 알 수 없는 게 있는 것 같다. 그 중의 하나가 안갚음이리라. 세월을 곱씹어도 안갚음 받을 이 없고, 머리 검어 깨치지 못했던 속마음을 백발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아채지는 일. 안갚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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