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8:07 (화)
<시론> 이제 의사가 북치고 장구도 치게 됐다
<시론> 이제 의사가 북치고 장구도 치게 됐다
  • 승인 2005.10.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제 의사가 북치고 장구도 치게 됐다

 

남소자<서대문구의사회장/나산부인과>

 

 

 의료행위를 할 때 의사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실수가 아닌 무과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그 당사자인 의사가 과실여부를 입증해야 하는 법안이 발의될 전망이다.
 모든 형사법은 유죄가 인정되지 않을 때는 무죄추정이 법문화되어 있는데 유독 의료행위에 한해서만큼은 당사자인 의사가 `과실 없음'을 증명해야 하게끔 된 것이다.
 법정성립의 필수요건인 변호사의 도움도 없이 법을 전혀 모르는 의사 본인이 `나 홀로' 법정투쟁을 하게끔 법이 제정될 예정이어서 가히 봉건사회에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호통 치는 원님의 우격다짐에 힘없는 백성이 답변할만한 법 지식도 없이 원님의 기분에 운명을 맡긴 셈이다. 그 사이 수술시야가 좁아 엉뚱한 조직을 떼 내고 실수로 가제나 수술용 가위 등을 남겨두고 봉합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한 것이 사실이다.

최선다한 의사에 과실입증책임 `가혹'

 이런 상황은 의사가 아무리 변명하려 해도 변명할 길이 없어 환자와의 협의나 소송을 통해 의사가 법의 제재를 받아왔다. 이때도 의사도 인간인 이상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에 분주했다.
 그러나 의사의 과실이 전혀 없는데도 불가역적으로 발생한 사고를 의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법은 의사가 의료행위뿐 아니라 그 부작용을 먼저 연구해 결론을 내린 뒤 진료해야 한다는 이중부담을 지게 된다.
 시험관내 연구 등을 통해 특정질환에 유효하고 안전하여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되고 인체에서도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 받아야 하는 약물사용도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올 수 있는데 이때의 의사책임추궁은 의사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깔고 있다.
 이젠 의학공부도 자기방어를 위한 법률공부부터 먼저 하고 환자생명보다 방어 진료를 우선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현대의 의료행위는 근거중심의료(Evidence-Based Medicine)를 추구한다.
 의료에 필요한 모든 기기도 약물처럼 충분히 검증된 것을 사용해도 나타날 수 있는 극히 미세한 부분의 부작용을 의사가 규명해야 한다면 의사는 또 기계 공학도 전공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동안 의료소송은 환자의 10%만이 승소했다고 통계수치를 내놓았다는데 의사는 이제부터라도 환자의 사고 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따져보고 시술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 의료행위가 가능하겠는가.

방어진료 안되게 보완대책 먼저 세워야

 교통사고로 온 몸이 으깨지고 혼수상태의 환자가 자신의 과거 병력을 말 못하는 상태에서도 의사의 일상적인 응급처치가 그 환자상태에 맞지 않아 사고가 났을 때 무과실사고라고 의사가 입증해야 책임을 면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 결과에 대한 입증책임까지 의사에게 씌우겠다는 법률은 그 보완대책을 먼저 세운 후에 시행 돼야 할 것이다.
 `과실여부 의사입증'은 의사도 인간인 이상 빠져나갈 구멍을 먼저 찾는 법인데 의사에게 짐을 하나 더 지우는 셈이다. 의사를 비겁하게 만들어 득을 보는 쪽은 어느 쪽인가. 법만 만들지 말고 의료피해 구제위 쪽에서 사고의 객관적인 검증을 하고 난 뒤 의사책임을 물어야지 의사가 먼저 입증 자료를 구성하라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