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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빨간 구두 아가씨’ 속 남녀사랑
노래 ‘빨간 구두 아가씨’ 속 남녀사랑
  • 정준기
  • 승인 2019.05.20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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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107)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결혼의 계절인 5월을 보내면서 남녀의 결합에 대해 사회생물학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다소 우리의 품격(?)을 낮추는 내용도 있으나 삶을 완전하게 파악하려면 이런 관점에서 관찰, 분석, 판단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육, 문화, 윤리 의식이 생물학적 욕구에 다양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선의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이해와 성원을 부탁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신과 동물 사이의 존재다. 고귀한 영적, 정신적 언행도 할 수 있으나 생물체로서 본능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생물학(social biology)이란 생물학적 지식을 이용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1963년에 발표된 가요 <빨간 구두 아가씨>를 들었다. 김인배 작곡의 단순하고 가벼운 이 곡을 당시 24세의 싱그러운 총각 남일해 씨가 특이한 저음으로 불러 크게 유행했다.
구둣방 마다 빨간 구두가 동이 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을 남일해 씨가 세월의 흔적 하나 없는 총각 때 모습 그대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도 깜짝 놀랐지만 그날따라 하충희 씨가 쓴 노랫말이 사회생물학적으로 새삼스럽게 들렸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 소리 어딜 가시나
한 번쯤 뒤돌아 볼 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 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똑바로 뻗은 오솔길에 빨간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또박또박 걸어간다. 뒷모습에 반한 총각이 뒤를 따라 걸으며 한번쯤 뒤돌아 보아줄까 혼자 애를 태운다. 도입부의 “솔솔솔”은 오솔길과 운을 맞추면서 어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를 나타낸다.

사람도 없는 호젓한 길에서 왜 주인공은 빨간색 구두를 신었을까? 빨간 색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정열적이어서 눈길을 쉽게 끈다. 정신의학적으로 젊은 여성이 빨간색 구두나 옷을 착용하면 성(性)적으로 자유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똑똑똑” 소리를 내며 걷는 데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선 이렇게 걸으려면 의식적으로 체중을 번갈아 옮겨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뒷사람 에게 알리려는 의도다.

또한 두 다리는 물론 사지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또박또박 걸을 수 있다. 중추신경이 온몸의 감각기관과 각 부위의 근육을 적절하게 조정 해야 한다. 또박또박 걷는 구두 소리는 종합적으로 여성의 건강이 양호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남자 주인공은 “어딜 가시나”하며 관심을 가진다. 뒷모습만으로도 이미 반한 것이다. 흔히 코카콜라 병도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본떠 만들었다지만, 여성의 몸매는 종족보존의 본능과 연결 되어 있다. 알맞게 큰 엉덩이와 유방에서 자식의 순산과 양육에 충분한 모유를 직감하기 때문에 남성은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낀다. 이 모습이 병적인 것이 아님은 잘록한 허리가 보장한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 뚱뚱한 몸은 영양 과다가 아니라 중증의 내분비 질환(갑상선기능저하증, 부신피질증식증)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이때는 특징적으로 몸 중심부에 비만이 생기고 아이를 갖기가 어렵다.

오늘날 미인대회에서 몸매를 측정하는 기준은 사실 건강한 출산과 양육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다. 이미 여자 주인공은 남자가 뒤에서 따라온다는 것을 안다. 뒤 돌아 어떤 남자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하나 둘 발걸음을 세면서 그 순간을 가늠할 뿐이다. 마지막 줄에 “혼자서 가네”는 같이 걷 고 있으므로 이미 혼자가 아니다. 뒤돌아 보면 총각이 다가와 아가씨에게 말을 걸 것이다. 인연이 된다면 서로 끌려 사랑하고 결혼도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남자, 아니 남녀 모두가 기대하는 전개다. 2절의 가사는 이런 추측에 확신을 준다.

밤밤밤 밤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 소리 어딜 가시나
지금쯤 사랑을 할 만도 한데
종소리만 하나 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남자의 희망인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언급된다. 네 번째 소절의 종소리가 축복의 종소리, 결혼의 종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적으로 보면 남녀 관계의 종착역은 당연히 짝이 되고 결혼하여 우수한 자손을 많이 만들어 키우는 것이다. 혼기의 선남선녀 들은 새로운 이성(異性)을 만날 때마다 머릿속이 슈퍼컴퓨터로 변한다.

짝이 될 가능성, 결혼의 손익, 부부간의 관계, 후손에 대한 기대 등을 한꺼번에 입력하여 단숨에 계산한다. 겉으로는 시치미를 떼면서 호감을 표시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한다. 그러나 대부분 헛된 노력으로 끝난다. 인간은 고등동물이기에 복잡한 조건이 서로 맞아야 한다. 노랫말처럼 다시 “혼자서 가며” 또 다른 짝을 찾아 나설 것이다. 나는 이 에너지야말로 생물체가 지닌 활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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