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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독특한 자동차, 관객들 상상력 부른다
스크린 속 독특한 자동차, 관객들 상상력 부른다
  • 이형중
  • 승인 2019.05.20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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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의 영화 이야기(11)
델마와 루이스/택시운전사

이 형 중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경찰차 수십 대의 추격을 뿌리치고 서로 손을 잡고 웃은 채 절벽으로 질주하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로드무비의 백미이다.

그러나 가장 오래 잔상에 남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여주인공 보다는 자동차 그 자체였다. 후방의 길다란 테일핀을 사용한 바디 프레임과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테일램프, 하늘색 차체의 ‘F’사 2인승 컨버터블인 선더버드는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자유로의 갈망에 대한 환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상당수는 이동수단으로의 의미에 그치거나 혹은 미장센을 구성하는 배경의 역할로 국한된다. 점점 더 다양한 자동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 현상은 자동차가 단지 사람을 옮기는 수단을 넘어서, 스스로를 표출하는 방식의 하나임을 입증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최근 TV의 자동차 PPL(Product Placement)을 통한 무의식적인 시청자 세뇌는 무차별적이다.

<도깨비>의 공유가 타고 나온 이탈리아 ‘M’사의 르반테(지중해의 바람)는 캐나다 퀘백의 아름다운 단풍과 어우러져 감미로운,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잔향을 남겼고, <효리네 민박>과 <품위있는 그녀>에는 스웨덴 ‘V’사 XC90이, <스카이캐슬>에서는 영국차 ‘J’와 ‘L’사의 흑표범같은 세단과 도로를 꽉 채운 SUV가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심지어 자동주차기능까지 보여주고 있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들의 키스 씬을 위해 무리하게 설정된 자율주행 기능을 선보인 것과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좀비들이 달려들 때 지프를 버리고 더 튼튼하다는 이유로 등장인물이 투싼ix로 피하는 장면은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과도하다.

할리우드의 PPL 원칙은 “Not blatant, but subtle(노골적이지 않게, 그러나 자연스럽고 미묘하게)”란 말로 함축된다. 하지만 <트랜스포머>의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자동차인 것처럼 최근 미국영화들은 자동차를 위해 제작된 것만 같다. 노란색 범블비(‘C’사의 카마로)는 이 영화출연 하나만으로 최고의 머슬카(실제로는 포니카)인 머스탱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제로백 4초의 후륜구동 쿠페는 급가속 시 발하는 엄청난 굉음과 연기를 머금은 뒷바퀴의 스키드마크로 부양책무가 없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는 슈퍼카가 존재하는 법. 마블 시리즈와 독일 ‘A’사와의 돈독한 관계는 아직도 진행 중으로 <아이언 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운전한 R8은 천재적이고 과감한 첨단 재벌 이미지(테슬라의 CEO 앨런 머스크를 차용)에 걸맞는 10기통 사륜구동의 3.3초 제로백을 가진 슈퍼카로서 디젤게이트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A’사가 국내에서 얼마 전 다시 판매를 시작한 최초의 자동차이기도 하다. 윌 스미스가 <아이로봇>에서 타고 나왔던 바퀴와 사이드 미러도 없던 자동차 역시 ‘A’사의 RSQ란 미래지향적인 컨셉트카였는데  향후 수소연료를 탑재해 출시할 계획이라고 하니 자동차 회사들에게 있어 영화는 BTS가 선보이는 것과 동일한 쇼 케이스인 셈이다.

DC코믹스의 주인공들은 하늘로 날거나(슈퍼맨, 사이보그), 물속으로 다니거나(아쿠아맨), 순간이동을 하기 때문(플래시)에 자동차를 탈 일이 좀처럼 없을 듯한데, 배트맨은 좀 다르다. 망토를 휘날리며 업무용 관용차인 텀블러에 승차할 때를 제외하고 민간인 브루스 웨인으로 살 때에는 좀 더 평범한(?) 차를 타는데 이탈리아 슈퍼카인 ‘L’사의 무르시엘라고를 <다크나이트> 때까지 사용했고, 이 차가 단종되자 아벤타도르로 교체했다.

마블의 천하무적 전직 신경외과 의사 <닥터 스트레인지>가 자동차 사고를 겪고 자신의 망가진 두 손을 치료하기 위해 네팔로 가게 되는 계기를 만든 자동차 역시 ‘L’사의 우라칸 쿠페이다. 운전 중 핸드폰 사용은 폐인이 되거나 슈퍼히어로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었다.

반세기 넘어 시리즈가 계속된 007에는 많은 본드카가 등장했지만 <골드핑거>부터 등장한 영국 ‘A’사의 DB5는 주인공의 냉철한 섹시함(츤데레+여혐)과 잘 어울리며 랩 범퍼, 기관총, 사출시트, 연막 분사기 등의 다양한 기능 등이 탑재되어 있어 제임스 본드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하다. 가장 최근의 <스펙터>에는 오로지 영화를 위해 10대만 제작된 DB10 모델이 나왔는데 여기서는 이전 본드카로 나왔던 ‘J’사의 자동차는 악당차로 나와 폭발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인생에 영원한 우군은 없다.

새로운 첩보물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이단 헌트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독일 ‘B’사가 물주로 자처한다. 전기로 움직이는 스포츠카로서 전면 유리를 통째로 HUD로 사용하는 첨단 자동차 i8은 걸윙도어 하나만으로도 주차난에 신음하는 한국민에게 엄청난 희망을 선사하였다. 또한 비엔나 거리를 후진으로 질주하고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가며 뒤집어져도 주인공은 죽지 않는 이른 바 공포의 M 시리즈인 M3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탈리안 잡>에서는 배신자에 대한 복수로 그의 금괴를 탈취하는 데 가장 적절한 크기의 자동차인 미니 3대를 사용한다. 그토록 작은 자동차가 보이는 속도감, 지하철 선로 위를 달리는 데 특화된 안성맞춤형 크기, 200마력이 되지 않음에도 금괴를 싣고도 끄떡없는 힘 등은 덩치가 전부는 아니라는 세상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기쁘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파리 시내 계단을 전속력으로 오르내리면서 구석구석 누비는 장면에 나온 자동차도 미니(메이페어)였는데, 도심 전문 운전용으로 만들어진 예쁘기만한 자동차로 이러한 추격씬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백 투 더 퓨처>에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번개를 연료로 움직이던 자동차가 기억나는지? 드로리안 DMC-12는 전세계적으로 1만대도 팔리지 않았던 희소한 차였는데 국내 최초 독자개발 모델인 포니를 디자인한 이탈리아의 쥬지아로의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최근 재출시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속물 변호사가 회개해가는 과정을 그린 마이클 코넬리의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는 미국 대통령의 의전 자동차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영화인데 근래 출시된 콘티넨탈 광고에는 영화에 출연했던 매튜 맥커니히가 등장한다. 미국식의 넉넉한 럭셔리를 표방함에 있어 링컨만한 브랜드는 없을 듯하다.

자동차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빠질 수는 없다. 주인공 폴 워커는 몇 년 전 독일 ‘P’사의 카레라 GT를 운전하다가 과속사고로 사망하여 안타까움을 남겼는데, 단 3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불꽃처럼 살다간 제임스 딘도 ‘P’사의 550스파이더를 운전하다가 사망하여 ‘P’사의 자동차와 스타의 죽음은 마치 운명처럼 보인다. 폴 워커는 영화에서 일본 자동차를 애용하였는데 만화 <이니셜 D>에서 ‘T’사의 86과 쌍벽을 이루던 란에보란 별명의 일본 ‘M’사 랜서 에볼루션, ‘N’사의 유명한 스카이라인 GT-R이 대표적으로서 이들이 공도주행이 아닌 랠리 운전 전용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임을 생각할 때 대중성을 벗어나 소수의 매니아층을 위해서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일본 자동차 산업의 저력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1980년 5월의 뜨거웠던 광주는 차령 45년의 브리사를 통해 재현되었다. 모나지 않은 둥그스름한 외형과 따뜻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느낌의 녹색 자동차는 연기와 총소리로 뒤덮여 생사를 오가던 공간에서도 전진, 후진을 계속하며 <택시운전사>로서의 도리를 다 하려던 주인공 만섭을 그대로 드러낸다. 승객의 미션에 충실하던 그의 돌직구 직업관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가장 소박한 대답일 것이다. 그래서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자동차는 사람이 손수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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