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 이혼 양상에 관한 연구
단계별 이혼 양상에 관한 연구
  • 전성훈
  • 승인 2019.05.1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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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36〉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흔히 반복하고 있는 행동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 행동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사회적 행동의 대표적인 예로는 `결혼'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결혼할 이성을 선택한다고 `착각'하지만, 그 선택은 사전적 의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압박에'라는 이유의 사회적 행동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 비로소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한 자기 자신을 설득하거나 심지어 용서하기 위하여, 그제서야 결혼의 의미를 고심하고 나름의 결론을 미혼인 주변 지인들에게 역설(?)하곤 한다.

보통 결혼이라는 말을 쓰지만 법적으로는 혼인이라고 한다. 우리 법상 혼인은 `영속적인 생활공동체를 위하여 법적으로 인정된 남녀 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영속적'인 결합이므로 동거와는 구분되며, `법적으로 인정'된 결합이므로 사실혼과도 구분된다. 그리고 `생활공동체를 위한' 결합이므로 현재와 장래의 생활을 위한 공동재산을 형성하고 부부가 원칙적으로 동거할 의무가 있다. `남녀 간의' 결합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동성결혼은 허용되지 않는다.

결혼의 의미에 남녀 간의 애정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 약간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애정을 중시하는 연애결혼은 인간의 역사 1만 년 중 극히 최근인 150년 전에 태동한 양식이니 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다. 약 9,850년 동안은 남녀 간의 애정과 결혼은 별개의 것이었고, 남녀 간의 애정이란 것은 결혼생활에서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부속품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긴 인생을 살면서 예상할 수 없었던 많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예측하지 못한 행운은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은 대부분 원하지 않는 것이기에, 이에 대하여 보통 순차적으로 `부정(deny)-분노(fury)-협상(negotiate)-슬픔(sad)-수용(accept)'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남녀는 영속적인 생활공동체를 의도하며 결혼을 하지만, 이 세상에 영성(靈性) 외에는 영속하는 것이 없는지라, 결혼이 영속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많다. 이혼과 관련한 많은 상담, 그리고 소송을 진행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은 `이 사람이 이런 줄 알았다면 절대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혼인관계의 파탄'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절차인 이혼은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 상황'에 해당한다.

앞서 본 것처럼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다양한 반응을 보이므로, 이번 글에서는 앞서 본 다섯 단계에 따라 이혼의 양상을 구분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혼인관계의 파탄을 `부인'하는 단계, 즉 남과 여 양쪽이 감정적이건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건 `우리 관계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라고 믿는 경우에는 이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드물게 이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시부모/장인장모가 며느리/사위를 못마땅하게 여겨 어떤 핑계를 들어서 사실상 내쫓는 경우이다. 상담할 때에 보면, 대부분 어머니가 나서서 `지금 이런 상황이다… 이혼시켜야지 얘가 너무 안 됐다'라고 말하며, 당사자는 옆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 결혼도 `시키고', 이혼도 `시키는' 경우이다.

둘째로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하여 `분노'하는 단계에서도 의외로 이혼이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는 대부분 배우자의 부정 발견, 시댁/처가와의 갈등 폭발이 원인인데, 이러한 분노는 일시적인 것이어서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오면 결혼을 유지할 경우와 이혼할 경우의 자신의 득실에 대하여 진지하게 저울질하기 때문이다. 분노 상태로 변호사를 찾아오는 분에게는 법적인 득실을 잘 설명드리고 `결정하시면 오시라'라고 돌려보낸다. 이런 경우 곧 다시 찾아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셋째로 혼인관계의 파탄에 대하여 `협상'하는 단계, 흔히 말하는 협의이혼의 경우에는 이혼이 많이 이루어지며, 이 경우 양육권이 가장 큰 쟁점이다. 통념과는 달리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엄마의 경우 아이를 키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며, 학부모인 엄마들은 대부분 반드시 양육권을 가져오기를 원한다. 양육권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재산분할은 이야기도 못 꺼내 보고 이혼소송, 즉 재판상이혼청구 절차가 시작된다. 물론 양육권에 관하여는 합의되었는데 재산분할에 관하여 합의가 되지 않아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넷째로 혼인관계의 파탄을 슬퍼하는 단계는 묘하게 일방에서만 나타난다. 즉 쌍방이 슬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이 경우 `부인' 단계로 돌아간다), 한편은 슬퍼하지만 다른 한편은 무덤덤한(`협상'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양쪽이 이미 감정적으로는 정리가 되었기에 양육권과 같은 중요 쟁점에 대하여 합의만 된다면 협의이혼으로 금방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고, 어떠한 사정으로 이혼소송을 하는 경우에도 조속히 결론이 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혼인관계의 파탄을 `수용'하는 단계에서도 이혼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감정적 유대는 끊어진지 오래이지만, 자녀 양육 문제, 현상 유지 욕구 등의 현실적 이유로 인하여 양측이 혼인관계의 파탄적 지속을 묵시적으로 받아들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일방이 뒤늦게 결심하고 이른바 `황혼이혼'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이혼한 미국의 억만장자는 “25년 뒤 헤어질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결혼하였을 것”이라는 멋진 대사를 남겼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되었지만 당신과 함께 한 시간들은 충분히 소중했다는 진심, 그리고 어려움도 그 극복도 나의 인생이라는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자만으로 치부해 버릴 것만은 아니고, 소소한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저런 마음으로 인생을 대하고 그 불확실성과 위기조차 즐기는 것이 `진짜' 인생이지 않을까?

최근 `졸혼'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이는 혼인관계 파탄의 `수용'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감정적으로는 이미 남이고 사회적 책임도 다하였으니 이제 쿨하게 서로 `동거인'으로 살자는 것이고 이혼조차도 번거롭고 불필요하다는 것이니, 이보다 쿨한 `수용'은 없지 않을까.

필자의 주변에도 그리 오래지 않은 결혼생활 끝에 벌써 `졸혼'을 입에 올리는 지인들이 있다. 필자는 이런 지인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호흡 끝에, 진심으로,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마지막 애정을 쥐어짜서, 이혼해라.' 하지만 이 조언을 듣고도 아직 이혼한 지인은 없다. 그것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신만이 아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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