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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사냥할 권리
마녀를 사냥할 권리
  • 전성훈
  • 승인 2019.05.0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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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35〉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흔한 통념과는 달리, 마녀는 원래 사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자문화권에 그 개념이 소개되면서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왜곡된 이해에 바탕하여 `마녀(魔女)'라고 번역되었으나, 영어로는 `witch', 즉 여자마법사, 여자무당에 가까운 의미였다.

이들은 현대에도 고립된 원시부족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질병치료, 제약, 출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의사이자, 점을 쳐서 길흉을 점치는 점복사, 그리고 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성직자였다.

이런 마녀가 악마의 하수인으로 지목되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가톨릭교회의 쇠퇴에서 기인한다. 13세기에 이르러 시작된 자본의 축적과 화폐경제의 성장은 교회와 신앙을 중심으로 한 중세적 기독교 질서를 외부에서 뿌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14세기에 이르러 내부적으로도 교회의 타락과 부패가 극에 달하자,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는 여러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중 도미니코 수도회는 타락한 교회를 질타하기 위하여 하나님/예수와 대립된 존재로 악마/마녀의 개념을 주장했다.

이어서 1484년 교황이 `긴급요청' 회칙을 발표하여 마녀가 존재함을 공언한데 이어, 1487년 도미니코 수도회 성직자 2명이 `마녀의 망치'라는 마녀사냥 지침서를 발간하면서, 흔히 말하는 중세의 마녀재판이 본격화되었다.

마녀재판은 가톨릭교회가 가장 약화되었던 17세기에 극에 달했는데, 이는 `근본주의의 창궐은 특정체제에 위기가 닥쳤음을 반영하는 증상'의 전형적인 발현이었다. 조선 왕조에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국토가 초토화되고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한 시점에 명분과 계급을 강조하는(그리고 여성을 핍박하는) 근본주의적인 성리학 이념이 강조된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마녀재판의 대상은 당연히 `마녀'였는데, 종교적인 판단기준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마녀로 지목되어 처형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부유한 과부들과 무신론적 지식을 습득한 미혼여성들이었다. 마녀재판에 소요된 비용 일체(마녀를 고문할 고문기술자의 일당, 고문도구 대여료, 마녀재판 판사의 일당, 체포시 소요된 자경단의 일당, 화형용 장작값, 그리고 교황에게 내야 하는 `마녀세'까지!)는 마녀에게 부담시켰으므로 이를 핑계로 마녀의 전재산은 교회에 몰수되었고, 이 달콤한 경제적 유혹으로 인해 남성 보호자가 없는 부유한 과부들이 무수히 불태워졌다. 무신론적 지식을 습득한 미혼여성들은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차원에서 역시 불태워졌다.

이후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지목되어 희생되었고,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간혹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까지 마녀재판은 동화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문제였다. 최근이라고? 그렇다. 마녀재판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은 유럽에서는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1970년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녀재판, 아니 마녀사냥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다 못해 분노를 일으킨다. 하지만 당시에는 신앙의 현세적 구현이자 법의 엄정한 집행으로서 당연시되었고, 지배층은 피지배층에게 여성을 벌거벗겨 산채로 불태우는 선정적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라도 기꺼이 이를 지지했다.

대부분 이런 서양의 마녀사냥은 남의 나라 일로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2017년 이른바 `240번 버스 사건'이 있었다. 버스기사가 어린아이만이 내리고 아이의 엄마는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승객들의 하차 요구에도 버스를 운행했다는 아이 엄마와 최초유포자의 일방적 주장을 실은 인터넷 글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 사실여부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키보드와 손가락을 이용하여 해당 버스 기사를 `인간쓰레기'로 만들었다.

이후 서울시와 경찰은 CCTV 등을 확인하고 `버스기사는 교통법규를 준수한 것이고 잘못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버스 기사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 버스 기사에 대하여 비난할 때만큼의 사과나 위로를 표현하지 않았다. 예순이 넘은 그 버스 기사는 중앙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살충동을 느꼈으며, 사흘 동안 잠도 못 자고 밥 한 끼도 못 먹었다'고 토로했다.

`김영애 황토팩 사건'은 또 어떤가? 이제는 고인이 된 탤런트 김영애는 오랜 기간 쌓아온 자신의 이미지와 각고의 노력으로 황토팩 사업에서 성공하여 연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명 PD가 만드는 한 소비자고발프로그램은 `황토팩에서 중금속이 발견되었다'라고 방송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사업은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었고, 그녀의 이미지 역시 큰 손상을 입었으며, 남편과 불화가 생겨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식약청은 `황토팩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중금속이라고 방송한 성분은 황토 고유의 자성체였음이 밝혀졌다. 그 소비자고발프로그램과 그 PD는 아무런 불이익을 입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건은 너무나 많다. 최근에만 해도 2012년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 2012년 교보문고 푸드코드 화상 사건, 2015년 세 모자 성폭행 조작 사건 등이 모두 `일방적 주장 - 사실 확인 없는 마녀사냥 - 주장과 반대되는 사실의 확인'이라는 전형적인 과정을 거쳤다. 공통적으로, 피해자들은 어떠한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 불태워진 `마녀'와 같이 말이다.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도 `마녀를 사냥할 권리'는 없다.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해당 권한을 부여받은 공무원의 의무일 뿐이고, 이 역시 `가능한 모든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에' 가능하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그 이전에 가능하지도 않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무고한 자의 육신을 마을의 광장에서 불태운 것이라면, 현대의 마녀사냥은 무고한 자의 영혼을 여론의 광장에서 불태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호기심의 충족은 법이 보호하는 권리가 아니다. 국민은 단죄의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알 권리'라는 것은, 시청률/클릭수를 올리기 위한 언론사의 양두구육이 아닌지 항상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게을리 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신앙을 핑계로 무고한 사람을 산채로 불에 태우는 것에 동의한 사람들'과 똑같이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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