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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 가는 또 다른 병원 가족
멀어져 가는 또 다른 병원 가족
  • 정준기
  • 승인 2019.05.0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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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6〉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같은 대학병원에서 40년을 넘게 근무하다 보니 주위에서 장사하는 몇 분과는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예를 들면 구내 이발소나 단골 식당의 주인과 종업원이다. 병원 직원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이용하면서 같이 지내 마치 직장 동료로 여겨진다. 오늘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써 보겠다.

지금부터 45년 전인 1974년에 아들 하나뿐인 과부 아주머니가 원남동 병원 정문 앞에 조그마한 간이 밥집을 열었다. 아주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고 부지런해 병원 직원들이 단골이 되어 점심 때면 병원 식구에게 된장찌개를, 밤이면 영안실 손님들에게 육개장을 도맡아 제공하였다. 주차장 공터 무허가 건물에서 직원들이 이름 붙인 〈대학식당〉을 시작했고, 15년이 지나서는 병원 앞 원남동 사거리에 〈고궁의 아침〉이라는 80평의 큰 식당으로 확장하였다.

이 식당에 가면 병원에서 온 손님으로 항상 가득 차 있어 제2 구내식당 같았다. 나도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식당을 애용하고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영안실에서 주문하면 한밤중이라도 영락없이 아이를 등에 업고 무거운 음식을 머리에 이고 걸어 오시던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이 장면은 투박한 화강암 색조의 바탕에 서있는 헐벗은 나무 옆을 아이를 등에 업고 머리에는 물건을 진 여인이 지나가는 박수근 화백의 〈나목(裸木)〉 시리즈 회화를 연상시켰다. 고달픈 삶을 인내와 세월로 이겨낸 우리 어머니 세대의 장한 모습이다. 우리가 식사할 때 한 구석에서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던 그 어린 아들이 내 모교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나와 동문의 인연이 되어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

지금은 아들 부부가 식당 운영을 맡아 하고 있으나 여전히 계산대 앞에 앉아 있는 82세 황복순 할머니는 옛날과 비교하면서 마냥 행복해 한다. 아직도 많은 직원, 환자와 가족이 식당을 찾아주고 음식을 즐기기 때문이다. 마치 병원 식당처럼 직원은 식대 10%를 깎아 주고, 치과대학 병원을 비롯해 어린이병원, 암병원에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내어서 불우한 환자를 돕고 있다. 암병원 로비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도 이 분이 기증했다. 환자를 위한 자선공연에 요긴하게 사용하면서 처음에는 송년 음악회에 황 할머니를 초청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세태가 달라졌다고 한다. 지난 4월 병원 본관 앞에 개설한 〈대한외래〉 건물에 대기업 푸드코트가 입점한 후 손님이 줄어들었고, 더 악화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38년이 된 이발소는 더 아쉽게 되었다. 〈대한외래〉 건물에 유명 브랜드의 미용실이 들어와 폐쇄하게 된 것이다. 물론 병원 당국도 결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직원들의 의견을 널리 알아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동안 중견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남자 직원의 두발을 책임져 왔기 때문이다. 나도 구내에 있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머리 스타일도 마음에 들어 단정히 할 때에는 꼭 이곳을 애용했다. 지금도 현직에 있는 사람 외에도 퇴직한 교수와 직원이 찾아오고, 단골이 된 환자도 700∼800명이나 있다고.

이발소는 환자 진료에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동이 불편한 환자를 휠체어나 침대에서 쉽게 옮기기 위해 이발 의자를 개조하고 문턱을 없애는 등 나름대로 특성화된 병원 이발소로 자부해 왔다.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선호하는 젊은이 위주의 병원 결정에 더해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는 아저씨는 곧 변두리에서 개업한다고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신경외과나 이비인후과 수술 환자의 두발 관리 등 자기가 맡았던 일이 순조로울지도 걱정하면서…

“서당개 3년이면, 풍월(風月)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주인 아저씨는 환자 이발을 오래하다 보니 머리 속 이상이나 질병의 상태를 곧잘 감지한다고.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을 환자인 경우 병소 부위를 자기도 짐작할 수 있단다. 나는 이 말에서 의료 행위와 병원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주인 아저씨는 우리 병원에서 또 다른 의미로 동료였던 것이다!

30년을 구두를 닦아 주는 아저씨도 있다. 젊어서 병원 구내에 자리 잡고 공사 때 마다 병원 건물 구석구석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서 어느 부서에서나 연락하면 신발을 수거하여 닦고 광을 내어 배달해 준다.

한번은 나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귀띔하였다. 자기는 많은 교수 중에서 나중에 병원장이 될 사람을 미리 알아 낼 수가 있단다. 바로 젊어서부터 구두를 정기적으로 깔끔하게 닦는 사람이란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자기의 이미지를 항상 신경 쓰고 관리하는 유형을 의미한다. 나하고는 정반대되는 경우이다. 그렇고 보니 내가 40년 동안 구두를 닦아 달라고 맡긴 적이 다섯 손가락이 못된다. 대학이나 병원의 보직을 원하지도 않았고 또한 요청 받지도 못한 내 과거 행태를 설명해 준다.

인간사의 진실과 지혜는 우리 병원 주변의 삶에서도 곳곳에 작은 조각으로 숨어 있었다. 남다른 시선과 생각으로 발견하여 풀어쓰면, 좀 더 진솔하고 풍요롭게 사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어쭙잖은 이 컬럼을 계속 맡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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