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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정된 고창순 교수님
`명예의 전당' 헌정된 고창순 교수님
  • 정준기
  • 승인 2019.04.22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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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5〉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약 135년 전, 근대 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 된 이후 많은 선구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우리 의학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해 왔다. 대한의학회는 이런 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업적을 기리고자 〈명예의 전당〉을 설립해 그동안 99명을 헌정하여 왔다. 지난 3월 26일 고창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님을 비롯한 12 분이 새로 헌정하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고 교수님의 제자로 젊은 의료인들에게 선생님을 소개 하려고 이 글을 쓴다. 간단히 말하면, 대표적인 한국 최초의 핵의학자로서 핵의학, 갑상선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교수님이고, 굴곡이 심한 삶 속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모범을 보인 큰 스승님이었다.

고창순 선생님은 1932년 경남 의령 출생으로 1951년에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으로 건너가 1957년 동경에 있는 소화의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서울의대 부속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시절인 1960년 스승인 이문호 교수를 도와 〈방사성동위원소 진료실〉 설립과 대한핵의학회 창립에 관여하였다. 그후 국내 핵의학 1 세대로서 2012년 작고하기까지 평생 동안 방사성핵종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 연구에 헌신했다. 당시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600 여 편의 국내외 논문을 발표하였고, 현재 한국 핵의학은 세계 3∼4 위 수준의 연구와 진료를 하는 명실공히 `핵의학 선진국'이 되었다.
또한 선생님은 핵의학적 방법을 이용해서 초기 갑상선학 분야의 연구와 발전에 기여했다. 1960년대 초 방사성요오드의 임상 활용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후 40여 년간 〈방사성동위원소 진료실〉은 우리나라 갑상선학의 메카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임상 이용을 주도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갑상선학은 일본에 앞서 아시아대양주학회와 세계학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고창순 교수는 일찍이 국제 학술교류를 통한 의학 발전에도 앞장서, 1980∼1984년 아시아대양주핵의학회 사무총장, 1990∼2001년 아세아대양주갑상선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우리나라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이 노력은 후에 우리나라가 세계핵의학회 회장국이 되고, 세계의료정보학회, 세계핵의학회, 세계분자영상학회를 개최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의 교수 겸 방사성동위원소 진료실장으로 재직하며 방사성동위원소를 임상 현장은 물론 다양한 연구에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혈액학, 내분비학, 신장학, 감염학 등 전문 분과를 개척하여 우수한 제자들을 양성하고 이들이 해당 분야에서 핵심 인물이 되었다.

고창순 교수는 새로운 학문, 특히 의학과 인접 학문과의 융합에 관심이 많았다. 대한내분비학회 회장, 대한내과학회 회장을 역임한 후 대한의용생체공학회, 대한의료정보학회, 대한노화학회, 호스피스학회 등을 창립하고 회장으로 융합학문 분야로 정착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학문적인 업적 이외에도 스승님은 성숙한 인격과 굳은 의지를 갖춘 자아완성으로 모범이 되어 왔다. 25세 젊은 나이에 대장암을 비롯하여 일생 동안 생긴 3번의 진행 암을 모두 이겨내고 한국인 평균 수명을 누리셨다. 나는 가까이에서 선생님의 투병 생활을 보면서 환자의 정신 자세가 병의 진행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절감하였다. 선생님은 귀중한 경험을 〈암에 기죽지 말라〉는 책자로 출판하여 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젊어서부터 생사를 드나드는 힘든 삶을 겪은 선생님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가치관과 생활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기막힌 질병의 악연을 자기 성찰과 의지로 한단계 높여 참 좋은 인연으로 바꾼 셈이다.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지 철학적 예술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사람이 딱 한번만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인간이 두 번을 죽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진실되고 진지해 질 수 있을까요? 한 번 죽고 두 번째 사는 인생을 상상해 봅시다. 우리의 삶을 에워싼 그 많은 부질없는 것을 걷어내는 시기가 되겠지요.”

자코메티의 말 데로, 고 선생님은 부질없는 자신의 사소한 이익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진실한 자세와 행동으로 일관하였다. 이런 태도는 선생님이 갖고 있던 세상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 원만한 대인 관계와 시너지 되어 모두가 win-win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는 자연스럽게 의료계의 지도자가 되어 서울대병원을 비롯하여 여러 의료 의학 단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발전시켰다. 또한 평생 심고 가꾼 진료와 연구 성과도 자신의 몫으로 돌리지 않고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주었다. 덕분에 많은 후학들이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어 학문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

제14대 김영삼 대통령 주치의로 봉사하고, 1995년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의료과학진흥법을 만드는데 주도하였다. 이 연구사업으로 우리나라 의료인들이 의과학적 개념을 가지고 인접 과학 분야와 함께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스승님은 우리 제자들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바쁜 교수 생활 중에서도 가능하면 우리들과 `살을 비비려고' 애쓰셨다. 학문뿐 아니라 인생살이의 굴곡을 같이 하면서 어려움을 도와 주고, 지혜를 가르쳐 주고 희망을 노래하였다. 아마 내가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은사님은 지난 40년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나를 여기까지 길러 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은혜를 다시 기리며 천당에 계신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이 글은 두서 없지만 독자 여러분이 고창순 교수님 생애에서 쉽게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 한정되신 111명 선구자 모두 그 업적과 생활에서 우리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이 많이 있겠다. 각 인물에 관한 글과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의료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참 좋겠다. 의료인은 자부심과 함께 의료 현안에 대한 지혜와 해결책을 얻고, 국민들에게는 의료계를 좀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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