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회 법안 발의 남발… 재정은 '의료기관 몫'
[단독]국회 법안 발의 남발… 재정은 '의료기관 몫'
  • 홍미현 기자
  • 승인 2019.04.17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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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료인 안전' 명목 의료 관련 법안 '우후죽순'
의료계, "법 취지는 이해… ‘비용’도 함께 지원해야"

제20대 국회 개원 이후 지금까지 발의된 의료계 관련 법안은 약 1000건에 이른다. '의사 처벌'이나 '환자와 의사의 안전', '의료기기', '약물 기준', '의료기관 설립·운영' 등의 제·개정 사항을 담은 법안이 하루 한 건 이상씩은 나온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안이 의사와 환자의 안전이나 의료기관 설립·운영에 필요하다는 내용만 강조할 뿐, 법이 시행됐을 때 구체적으로 투입되는 예산은 의사들이나 의료기관에 떠넘기는 식의 법안이 태반이다.

의료계에서는 '법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입법이 추진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의료계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일단 법을 통과시키면 기획재정부를 통해 예산이 확보될 것'이라는 식의 막연한 입법 추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교수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야 의원들은 관련 법안을 쏟아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3월 법안 제안이유에서 임 교수의 사망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의료법 개정안만 모두 10건이다.

이들 10건의 의료법 개정안 중 8건(자유한국당 김승희·박인숙·윤상현·윤종필·김기선·정태옥, 더불어민주당 신창현·전혜숙 의원 대표발의/ 법안 발의 날짜 순)은 의료인과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진료실 내에 비상벨이나 대피공간 등의 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안전요원을 배치하거나 경찰서와 연계된 긴급출동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들은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통합·조정돼 보건복지위원장 대안으로 만들어진 뒤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종적으로는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의료인과 환자 안전을 위한 보안장비를 설치하고 보안인력을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8건의 의료법 개정안 중 보안장비 설치나 보안인력 배치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명시한 법안은 5건(김승희·박인숙·김기선·정태옥·전혜숙 의원안)이고 나머지 3건의 법안은 재정적 지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예를 들어 비상벨의 단가는 기능과 종류에 따라 20~300만원대로 다양하지만 관공서나 화장실 비상벨 설치 등의 사례를 기준으로 할 경우 한 대당 100~200만원 수준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국회법은 국회의원이 예산상 조치를 수반하는 법안을 발의할 경우 법이 시행됐을 때 예상되는 비용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생략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법안의 내용이 선언적·권고적 형식이어서 기술적으로 비용추계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에서는 "의료기관에서의 폭력이 근절돼야 한다는 내용은 공감하지만, 비상벨 등의 설치나 청원경찰 등 보안인력 운용에 대한 비용을 의료기관이나 의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의사는 "의료기관 내에서의 의료인 보호 의무는 1차적으로 국가가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인상할 수 없는 현행 의료시스템 하에서는 보안장비 설치나 보안인력 운용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안장비 설치와 관련해 비상벨 설치 기준 등을 의무화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B의사는 "아무런 재정적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내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의료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탁상공론적인 제도"라고 꼬집었다.

의료계에서는 "결국 이번 의료법 개정은 의료기관의 행정적 부담만 가중시킬 뿐, 그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의원 및 중소병원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건축법 개정안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발의한 건축법 개정안은 화재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건물 건축 과정에서 내부·외벽 마감 재료를 사용할 때 방화에 지장이 없는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건축물 대상에 의료시설을 비롯해 다가구주택, 학교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앞서 서울시의사회는 정부 지원 없이 강압적으로 제도를 시행하려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의사회는 "정부의 의료기관 시설 지원책이나 의료 수가에 대한 반영도 없이 건물 내부·외벽의 마감 재료를 방화에 지장이 없는 재료로 해야 하는 대상에 의료시설을 추가하는 등 많은 비용이 드는 시설 요구만 하는 과도한 입법은 지양돼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책 근거 규정에 대한 입법도 동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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