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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시민 친화적일까 정치적 흥정대상일까
의사, 시민 친화적일까 정치적 흥정대상일까
  • 장성구
  • 승인 2019.04.15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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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불행한 나라의 불행한 의사
권력에 마음대로 휘둘려 영혼까지도 발가 벗겨져
의료 수준 세계 최고 불구 사회적 제도에 설 땅 잃어
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경희의대 명예교수)
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경희의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우선 가슴이 답답해진다. 평범한 시민들 생각속에 대한민국의 의사란 어떤 존재 인가를 먼저 유추해 보자.

많은 국민들이 의사란 시민 친화적인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대답 할 것이다. 국민들 생각에 “의사란 어쩔 수 없이 가치를 인정하여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지만, 나에게 친근한 사람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썩 내키지 않는 존재다”라는 정도로 평가 할 것이다. 즉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로서 부정하자니 현실이 어른거리고, 그렇다고 친근감을 갖기도 거북한 존재로 생각할 듯하다.

나름대로 이 사회를 위하여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의 예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고, 의사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사에 대한 불신과 공격적인 분위기를 생각 해 보면, 유추하여 부여한 이 정도만 해도 과다한 평점을 주었을 수도 있다. 국민들은 이미 오랫동안 의사에 대한 권력층의 체계적이고 부정적 이미지의 부각에 따른 학습 효과에 사로잡혀 있다. 한편 의사들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반사회적인 언행이 자충수를 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 존재와 역할로서 의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의사는 환자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흔히 말하는데, 이 말은 논리적 표현의 적절성을 이탈하였다. 인간의 개성을 무시하는 전체주의(全體主義)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말이다.

합리적인 논리와 철학적 정당성을 고려한 말로 표현 한다면 “의사는 환자를 위해서 존재한다”라고 하여야 적절하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의사의 사회적 가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합리적 보편성이 인정받는 사회라면 특별한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의사도 한 인간으로서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인격적 존재이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여러 나라의 의사들 중에 대한민국 의사는 가장 불행한 의사라고 생각 한다. 불행의 씨앗이라는 귀책사유가 본인한테도 있을 수 있고, 사회적 제반 여건으로부터 유발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불행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의사가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해서, 혹은 경제적인 상황이 점점 열악해져서 불행하다고 한다면, 그것도 본인들이 느끼는 불행의 원인 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본인들의 과욕에서 출발한 자기불만족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문제가 되는 큰 불행은 사회적인 불합리성과 제도적인 원인에 의하여 초래되고 있는 불행이다.

우리 사회의 변형적이고 기형적인 방향 감각의 왜곡 현상에 대하여 이화여자 대학의 박성희 교수는 조선일보(2019.03.27.)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는 마치 첨단 의학을 놔두고 민간요법에 골몰하거나, 아파트를 지어 놓고 동굴에 들어가서 사는 것처럼 나라가, 생각이, 문화가 거꾸로 되어가고 있다”라고 하였다.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국민으로 부여 받은 권력이라는 힘이 방향성을 잃고, 권력자의 마음대로 휘둘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사회 구성원인 국민은 피곤하고 불행해 진다.

의사가 불행을 느껴야만 했던 불합리적인 사회구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하여 왔다. 권력기관은 언제든지, 정치적 입장의 국면 전환이 필요 할 때마다, 국민들 앞에 의사들의 영혼을 발가벗겨 세움으로서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의사들에 대한 대국민 신뢰는 추락을 거듭하여 사회적인 타도의 대상으로 까지 변하였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의료기관 방문 횟수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국가이고, 의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단위 시간당 가장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 의료의 수준은 전세계 최고에 근접하고 있다. 여기에까지 도달한 것은 의사들이 스스로가 감내하고, 스스로가 밤잠을 줄여가며 성취한 고귀한 일이다. 이 고품격의 의료에 따른 혜택은 그대로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것이 의사들의 진정한 사회적 공헌인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의사들의 이러한 사회적 이바지에 대하여 회자되는 일은 없으며, 오히려 전문가로서의 식견은 박탈되고, 오염된 제도에 대한 굴욕을 강요받고 있다. 의료제도의 진일보라는 정책은 거꾸로 흘러서 실질적인 사회주의적 통제의료를 향하여 내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지구상 그 어느 나라 의사들도 격지 않고 있는 숙명적 등짐을 걸머지고 있다. 첨단 과학을 통한 정점의 의학을 향하고 있는 열정과 희망의 발걸음은 덫에 걸리고, 무지의 샤마니즘과의 논쟁은 물론이거니와 무소불위의 천박한 권력과 투쟁을 벌여야하는 척박한 환경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의 의사란 어떤 사람들 일까?
그동안 이룩한 첨단 의학의 자랑 스런 위상이 곤두박질 칠 것 같아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

의사들의 피와 살이 찢겨나가는 희생을 통하여 여기까지 달려온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나마 지속 가능할지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반납해야 할 것 같은 우려 속에 고민하는 사람들!

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를 통해 이 세상이 잡동사니 쓰레기로 채워질까 봐 단잠을 설치는 사람들!
초라한 모습이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고,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의사들의 현 주소이자, 잊어서는 안 될 초라한 모습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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