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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 첫 발…의료법 잘 몰라 진료에 부담감”
“의료현장 첫 발…의료법 잘 몰라 진료에 부담감”
  • 이한결
  • 승인 2019.04.15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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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벌어지는 의료인 폭력·폭행사건 불안감 가중
 호박죽과 수확한 고추 건네시는 농촌 환자에 `소확행'
이한결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홍보이사
이한결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홍보이사

공중보건의사로 복무를 시작한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그간 동료 및 선후배를 포함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처음 뵙는 분들께는 저를 소개하고, 알고 지내던 분들과 안부를 묻고 답했다. 거기까지였다면 서로 웃으며 돌아설 수 있을텐데, 으레 그렇듯 안부인사는 거기에서 끝나질 않았다. `요새는 어디서, 무얼하며 지내느냐'는 질문에 공중보건의사로, 천안에서 근무하고 있노라 말씀드릴 때마다 그리움과 아쉬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아래와 같은 말을 뱉지 않은 분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특히 남자 의사 선생님이실수록 반응이 더하다.

“아아, 공보의….”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충북 옥천군 태생의 시인 정지용이 그의 명시 `향수' 매 연에 반복했던 문구이다. 그리움을 자아내는 표현으로 곧잘 회자되는 문장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때 세뱃돈을 저금하려 처음 만들었던 농협 통장에 부부인형작가 이승은·허헌선의 〈엄마 어렸을 적엔〉에 나올 법한 인형으로 너른 시골집 마당에 모여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함께 인쇄되어 나에게는 더욱 기억에 남는 문구이기도 하다.

영국의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대개 공중보건의사의 삶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만 가득하다고들 하지만, 현재 복무 중인 공중보건의사도 본인의 삶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적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특히 오랜 기간 도시에서 생활하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수도권 아닌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중보건의사는 대개 시골 면 단위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늘 가까이에 있던 빌딩과 유리창에 비친 햇빛을 받으며 지내다 밤하늘에 아스라이 보이는 별빛을 보며 약간의 낭만을 느끼며 다소 서서히 시골 생활에 적응하게 되는 이유다. 때로는 진료실에 실뱀이 들어오고 이따금씩 관사 빈틈으로 말벌이 벌집을 트고 창틀 사이로 들어오며 늘상 함께하는 거미는 공중보건의사의 친구가 되어준다. 뽕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어김없이 송충이가 따라오며 방역은 늘 공중보건의사의 몫이다. 비교적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중보건의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에 곧잘 적응한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신분상 임기제공무원으로 결재권자의 위치에서 업무를 관장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대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심자에게 폭넓은 결정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공중보건의사의 대부분은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내가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갑작스레 마주하는 의료법과 의료법상 명시된 책임 사항 등은 처음 사회로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완전히 책임지는 것의 진의를 깨닫게 되는 자리라고 할까.

생존이 신뢰보다 우선인 불신사회는 필연적으로 그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고 돈 앞에서 어떤 사람의 도덕성이 온전히 남아있길 기대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배운대로 의술을 행할 수 없는 여건, 연역적 사고보다는 귀납적 경험에 의존해 처방약을 상비약처럼 가정에 보관하는 현실, 그리고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 벌어지는 지역 내의 사건 사고를 마주하며 내가 과연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늘상 고민한다. 날씨도 일도 사람도 잘 모르겠으니 그나마 알 것 같은 책을 사고 또 빌려 읽는 분들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연일 벌어지는 의료인 폭행 사건 사고 또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얼마 전 우울증 환자를 위해 한 평생 노력했던 교수님이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건을 비롯해 낫과 송곳을 들고 진료실을 찾는 이들의 얘기가 회자될 때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가상의 얘기로만 느껴지던 일이 이제는 내가 근무하는 진료실 안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불안감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 덕분에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을 종종 잊는 경우를 본다. 정확히는 일상을 얘기하며 상대에게 질문하는 법을 잊었다고 해야겠다. 어렵사리 적응하고 어렵사리 의지를 불태워보지만 사회적 동물이 본인의 준거집단을 벗어난 사회에서 생활하니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편히 공유할 수 없어 무료함과 우울감에 쉬이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덕분에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이 많음을 다시금 느끼며 나의 보통이 모두의 보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불어 쉬이 찾아오는 우울감만큼이나 간혹 직접 만든 호박죽이나 갓 수확한 고추를 건네시는 환자 분들 덕에 소소한 일상에서 쉽게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법도 배운다. 근무지를 정하는데 있어 치킨과 피자 등의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지 여부를 꼼꼼히 따지며 입고 먹고 자는 생활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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