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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술 정찰제?…환자에 최상의 진료 할수 있나”
“모든 수술 정찰제?…환자에 최상의 진료 할수 있나”
  • 김미란
  • 승인 2019.04.1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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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癌 제외 일반수술로 책정…현실 무시한 `중증' 질환 분류
불가항력 의료사고, 선진국은 국가가 전액 부담, 한국 70% 부담
김미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김미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처음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그 마음은 그대로 이지만, 지금의 제도와 여건은 우리 의사들을 슬프게 한다.

새벽녘 산고에 시달리는 산모의 아기를 받았을 때, 여성을 괴롭히는 부인과 질환을 치료할 때, 환자들의 고충을 들으며 고통을 함께 공감하고 애써 치료를 한 후 그 결과가 아주 좋아 환한 미소를 다시 찾아주었을 때, 그때의 기쁨은 여전히 크다. 이런 기쁨으로 인해 어렵고 힘든 산부인과를 택한 것이 무척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 현실은 우리를 무척 힘들게 한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것이나 대학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공의를 수련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의료인들이 전문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현장 전문가의 의견 수렴이나 소통이 없는 탁상공론 행정이 초래하는 불합리한 조치들, 선심쓰듯 하는 정치적 행위로 인해 너무나 쉽게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체계가 좌지우지 되고 휘청거리는 상황이 안스럽고, 불안하다. 이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이미 의료전달체계는 무너져 너나 할 것 없이 상급 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은 몰려온다.
한쪽에선 “선택진료 제도가 없어져서 환자들은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어서 좋아지셨죠” 라고 선전한다. 특진비, 즉 선택진료비라는 것을 의대 교수들이 만들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선택진료비를 교수들이 직접 받은 적도 없다. 이 제도는 의료보험 수가의 원가 보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정 수준이상의 경력을 갖춘 의사들은 이 제도에 따라 선택진료를 했었고, 병원은 원가를 보전했다.

이제는 이 제도가 필요없다고 한다. 그 대신 상급 종합병원은 중증도 높은 환자들을 많이 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증도를 따지는 기준이 너무나 황당하다.
`중증'이란 말그대로 수술의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 여기에 해당돼야 한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제시한 `중증'은 이게 아니라 1, 2차 병원에서 적게 다루고 , 상급종합 병원에서 더 많이 다루는 질환이 중증이라고 한다. 이런 황당한 기준은 누가 정했는지 정말로 알고싶다.

같은 수술명이지만 1, 2차 병원에서 충분히 가능한 수술이 있고, 3차병원에서 감당해야하는 수술이 있다.
산부인과의 경우 부인암을 제외한 모두가 보건당국에 의해 `일반수술'로 책정돼 버렸다.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증의 경우 산부인과 1차, 2차 의료기관에서도 같은 이름의 수술이 시행되고 있지만, 재발성이 높거나 난치성인 케이스는 1, 2차 병원에서 감당하지 못해 상급종합 병원으로 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모두를 `일반수술'로 분류해버렸다.

상급병원에서 난치성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 치료를 담당하던 의료진은 하루아침에 선택진료 의사에서 일반수술의사로 전락했다. 전원돼 오는 환자들은 상태가 심각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수술이 이뤄져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케이스는 산부인과 자체적으로만 수술하기가 만만치 않아 때로는 여러 과의 협진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케이스가 `중증'이 아닌 `일반수술'로 분류된다. 그 결과 이런 환자들이 소위 `중증환자'들에게 밀려 수술 스케줄을 잡기도 힘든 경우들이 발생할 것이다.

산부인과와 달리, 1, 2차 병원에서 수술 사례가 많지 않은 과의 경우 거의 모든 질환과 수술이 모두 다 `중증' 질환으로 분류됐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국소마취의 간단한 수술이 단지 개원가에서 많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중증'이란다.
보건 당국에 시행하는 그 많은 심사와 조사와 평가는 또 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진정으로 환자를 잘 치료해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치료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환자의 주관적인 서비스 평가 만족도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포괄수가제도 문제다. 왜 산부인과에서 시행하는 수술은 부인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수술이 다 정찰제인가? 산부인과의 자궁과 난소의 수술은 지극히 단순한 분류로 자궁절제술, 기타 자궁수술, 자궁부속기 수술로 나뉜다. 그동안 배워왔던 교과서의 수많은 질환들이 이렇게도 단순하게 분류돼 버렸다. 수술수가가 정찰제이니, 그 범위안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 새로운 수술기구나 지혈제나 유착방지제 등의 사용도 다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하니 어떤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환자들에서 최상의 치료를 제공할 수가 있을지, 왜 산부인과에 대해서만 이런 불합리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여성 환자들도 질 좋은 최상의 치료를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도 그렇다. 의사가 잘못이 없는 경우에도 의료사고는 날 수가 있다. 이런 경우를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라고 한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국가가 전액 보상을 해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재원의 30%를 분만의료기관에서 부담하도록 되어있다. 잘못이 없는데도 산부인과 의사가 위험한 분만과 수술을 하니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신을 가지고 누가 위험을 무릎 쓰고 우리나라 여성 건강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겠는가?.

그래도 처지고 힘든 어깨를 펴고 산부인과 의사가 될 때의 초심을 생각하며  오늘도 다시 일어선다. 우리는 소중한 여성 건강을 지키는 수호자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이 슬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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