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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떨어진 외과 의사
사기 떨어진 외과 의사
  • 윤익진
  • 승인 2019.04.15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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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상징'이라고? 겉만 화려 속으론 자존감 추락
윤익진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
윤익진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

최근 들어 더 유난히 외과의사로 산다는 것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많이 받는다.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하고, TV에서는 의과대학 입시 광풍에 대한 풍자 드라마가 히트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거리에서 데모를 하는가 하면, 의사가 되고 싶지만 외과의사가 되고 싶은 의대생은 없는 이율배반이 판친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이율배반에 시달리는 것이다. 외과의사가 부족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도 또다른 이율배반으로 느껴진다. 피해의식인가, 아니면 열등감인가? 그도 아니면 정말 대한민국 사회는 외과의사가 부족해지는 것을 실제적으로는 걱정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외과 전공의 지원이 줄어드는 정도를 지나 거의 고갈에 이르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대책을 세워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외과의사가 되고자 하는 예비 의료인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요새 젊은이는 힘든 일을 싫어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없어서 지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너무 식상하다. 가끔 병원에서 드라마를 찍는 경우가 있다. 이때 수술장 등에서 방송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경우를 본다. 이들은 정말 그야말로 상거지들이다. 아무 바닥에서나 끼니를 때우고, 아무데서나 쪽잠을 잔다. 그들 중에는 멀쩡한(?) 학력과 경력을 갖고도 그 짓을 한다. 왜일까? 단순히 몸이 힘들고 벌이가 신통하지 않은 일은 다 하기 싫어한다는 논리는 상황을 이지경에 이르게 한 어른들의 비겁한 변명이다.

또 사실 전공의는 부족하지만, 진짜 외과의사도 부족한 지는 확실하지 않다. 외과 분야가 인적 집중도가 매우 절실하기 때문에 대학병원 입장에서는 현재 규모의 수술과 병상을 유지하기 위한 전공의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이들 전공의가 수련이 끝나고 취직해서 외과의사로 살기 위한 공간이 넓지는 않다. 우리는 외과의사가 부족한 사실을 전공의 지원으로만 보지만, 사회에서의 외과의사 부족을 심각하게 계산하고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부하'가 부족한 외과 대학교수들이 조장하고 있는 `가짜뉴스'일 수도 있다.

몇 년 전 외과, 흉부외과 의사를 아무도 지망하지 않아 정부가 외과 전공의를 위한 지원금을 만들었다. 힘든 일 하니까 외과 전공의들에게 봉급 좀 더 주면 하지 않겠냐는 논리인데, 그 지원금이 지급이 되고 병원에서 한참동안 집행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외과에서 당시 병원장에게 가서 떠졌더니, 내과 의사였던 병원장은 “이것을 집행하면 내과 전공의들의 사기가 떨어져 내과지원율이 떨어질 게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이 사람을 설득할 어떤 논리도 존재하지 않겠구나 하는 절망감을 기억하고 있다.

외과의사에 대한 이율배반적 대접은 이 뿐만이 아니다. 사회는 외과의사의 헌신을 요구하고 찬양하지만 그들이 인간이고 기본적 욕구와 삶이 있다는 것은 자주 잊는다. 여전히 드라마에서는 응급실에서 수술실까지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외과의사들이 그려지고 있고, 24시간 환자를 위해서 일하는 외과의사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 외과 수술의 불가피한 합병증조차도 용인이 되지 않는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중소 대학병원에서 조차 수입을 위한 균형을 맞추는데 외과 분야가 위축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는 듯 하다. 이는 몇몇 대형 3차병원이 외과 수술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대형병원의 외과 의사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외과수술을 한 건이라도 더 하려고 한다. 이렇게 일부 병원에 수술이 독점되는 상황은 배출된 많은 외과의사들이 수술 병원에 취직해 수술하는 외과의사가 되는 길을 막고 있다. 대부분의 배출된 외과의사가 외과 수술을 하면서 평생 살 수 있게 되지 못 하는게 현실이고, 우리는 후학들에게 외과의사의 보람과 긍지를 얘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이 알아서 수술 건수를 조절하지는 않을 것이고, 정부도 서비스 측면에서 이를 촉구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같은 값으로 최고급 서비스를 받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을 교묘히 이용한 정책 포퓰리즘이고, 기업 이기주의지만 시정을 요구할 마땅한 근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외과 내에서는 그나마 편하고, 수입이 보장되는 대장 항문외과나 유방외과로의 쏠림과 투자가 시정되지 않는다. 병원은 수익성이 더 좋은 이들 분야의 외과 전임의 티오를 더 주려고 한다. 그래서, 외과 내에서도 더 복잡하고, 합병증 가능성이 높고, 투자 시간 대비 수익이 적은 간담췌 외과나 이식 혈관 외과 등이 푸대접을 받게 된다.

여기에 최근 인터벤션 등의 시술이 외과의 많은 분야를 잠식하면서, 심각하게 어떤 분야까지가 꼭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생기고 실제적으로 수술적 처치가 줄어든 부분도 있다. 외과 의사는 `외과적 치료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꼭 모든 치료를 수술로만 해결하자고 하는 `칼잡이'가 아니다. 하지만, 환자를 의뢰해야 하는 내과의사들은 이런 `외과적 결정'도 자기들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나는 왜 외과의사가 되었을까? 단순히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그르다는 논리가 아니라 정말 그때 나는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외과의사로 사는데 불만이 없다. 수술이라는 다른 분야의 의사가 갖지 못한 기술이 있고, 이를 통해 마지막 해결을 도울 수 있다는 큰 보람이 있다. 외과의사로서 이 사회에 대한 작은 소망이 있다면, 배출된 모든 외과의사들이 자기가 배운 수술로 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도왔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된다면 전공의 지원 부족, 외과적 의료 사고 문제등이 조금씩 천천히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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