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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죄 아니다"... 66년만에 굴레 벗다
"낙태는 죄 아니다"... 66년만에 굴레 벗다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04.11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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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7대2 헌법불합치 결정...내년 법 개정 앞두고 논란 예상
전면금지,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임신 초기엔 낙태허용 해야

낙태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재판관 4(헌법불합치) : 3(단순위헌) : 2(합헌)의 의견으로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사실 낙태죄 폐지가 7, 유지가 2였던 일방적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로써 형법 제269조 제1항, 형법 제270조 제1항 모두 오는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에서 개정될 예정이며 개정 전까지는 계속 적용된다.

낙태죄 처벌 조항은 1953년 제정된 이후 66년 동안 유지된 바 있으며 낙태죄 헌법소원 심판은 2012년 이후 7년 만이다. 앞서 2012년 8월 헌재는 재판관 찬반 4:4 의견으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낙태관련법 개정 및 폐지 시도는 지금껏 여러 차례 있어 왔다.

1982년 낙태합법화를 위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움직임부터 시작해 1992~1994년 낙태 허용사유를 확대해 형법에 담는 개정안, 2007~2008년 거의 모든 낙태를 합법화하는 복지부 모자보건법 14조 개정안, 2010년 산모구명낙태와 성폭행에 의한 임신 낙태만을 허용 사유로 하는 모자보건법 14조 개정안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여론도 낙태죄 폐지에 우호적이었다. 지난해 실시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참여 여성의 75%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 바 있고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는 등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 또한 과반수가 넘은지 오래다.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낙태죄 찬반 집회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낙태죄 찬반 집회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날 헌재 결정의 핵심은 자기낙태죄 조항(형법 제269조 제1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오히려 낙태를 음지화하면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속출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또한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협이 임신한 여성의 임신종결 여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 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에 비춰 봤을 때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낙태죄로 인해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 또한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렵다”며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의사낙태죄(형법 제270조 제1항)에 대해서도 자기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면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순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판단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법적 공백에 대한 우려와 함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입법재량권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각각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당장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낙태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할지 여부 및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입법적 논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고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단순 위헌 의견을,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벌써부터 국회 입법 개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오늘 헌재 결정을 앞두고 상무위원회에서 “형법상 낙태죄를 삭제하는 개정안 및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의 허용한계를 대폭 넓힌 개정안을 곧 발의할 예정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이 대표는 “더는 여성의 몸을 통제해 인구를 유지하는 것은 안 된다”며 “누구나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부터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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