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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의 출발점, 유언
웰 다잉의 출발점, 유언
  • 전성훈
  • 승인 2019.04.0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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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32〉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법정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무소유'라는 말로 세인들에게 기억되는 훌륭한 선승으로, 그 말 그대로 입적하실 때 아무것도 남기신 것이 없었고, 일체의 장례의식을 하지 말며 자신이 쓴 출판물들을 모두 절판하고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들은 자신에게 신문을 배달해 주던 사람에게 전해달라는 유지를 남기고 입적하셨다.

생존을 위한 소유, 만족을 위한 소유를 넘어서 과시를 위한 소유가 넘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들먹이기 전에, 속세에서의 생활을 위하여 재산을 모으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한 세인(世人)들에게 무소유라는 것은 불교의 피안(彼岸)과 같이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과 재산을 함께 남기고 죽는다(물론 한 가지만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남긴 자식들이 내가 남긴 재산을 놓고 싸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적지 않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부모도 사람인지라 모든 자식들을 똑같이 대우하지 못 하였을 수도 있고, 누가 공부를 더 잘 했는지, 누가 형편이 안 좋았는지 같은 집안사정에 따라 자식들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에 차이가 있었던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님 사후에 자식 중 누군가가 과거의 섭섭함을 재산분배 과정에서 표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식들은 비교적 고른 대우를 받아 불만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식의 배우자들은 `시부모님/장인장모님은 이제 안 계시고, 그 재산을 남의 집에 주느니 내 자식에게 가져오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아침 막장드라마 같이 느껴지는가? 하지만 상속 관련 상담을 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보면 가장 흔한 것이 시누와 올케의 대리전인 경우이다.

최근 웰 다잉이 화두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죽기 위한 `육신에 대한' 웰 다잉도 중요하지만,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관계가 내가 떠난 후에 분란이 없도록 정리해 놓는 `관계에 대한' 웰 다잉 역시 중요하다. 관계에 대한 웰 다잉의 출발점은 꿈에도 상상하기 싫은 `자식들 간의 재산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유언에 대하여 알아보자.

구두약속도 법적 효력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하지만 구두약속은 추후 분쟁발생시 상대방이 오리발을 내밀면 그 내용을 증명하기가 어려워, 법원에서 이를 인정받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렇다면 임종시 자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머님이 재산분배에 관하여 남기신 말씀은 어떨까? 그 말씀을 자식들이 잘 지킨다면 미담이 되겠지만, 법적으로는 이 말씀은 무효이므로 지킬 의무는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권리와 의무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은 공신력 있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법은 유언의 방식을 공신력이 확보될 수 있는 5가지 방식으로 한정하고, 다른 방식의 유언은 모두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법이 인정하는 첫 번째 유언 방식은 `자필증서'이다. 자필증서는 ①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② `날인'하여야 효력이 있다. 연월일이나 주소 등을 빠뜨리면? 당연히 무효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수천억 대 재산을 어떤 대학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주소를 `자필증서'에 쓰지 않고 `봉투'에 쓴 사건이 있었는데, 그 유언의 유무효가 대법원까지 다투어지기도 하였다. 유언에 관한 법은 이렇게 엄격하다.

두 번째 방식은 `녹음'에 의한 유언이다. 이는 ①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② 이 유언에 참여한 `증인'이 그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한 것을 녹음한다. 이 방식은 보통 유언자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에 활용된다. 가장 불명확성이 높은 유언 방식이어서, 변호사가 증인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고, 유언자가 의식이 분명하였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의사가 의견서를 첨부하는 경우도 있다. 녹음 방식에는 제한이 없으므로 최근에는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세 번째 방식은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이는 ① 유언자가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하고 ② 공증인이 이를 필기하여 낭독하면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③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이다. 실무상으로는 유언자가 공증인인 변호사와 상의하여 공정증서를 미리 작성한 후, 변호사사무실을 찾아 증인 참여 하에 서명 또는 기명날인만 한다.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네 번째 방식은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이는 ① 유언자가 자신의 성명을 기입한 유언증서를 확실하게 봉인하여 날인하고 ② 이를 2인 이상의 증인의 면전에 제출하여 자신의 유언서임을 표시한 후 ③ 그 유언봉서 표면에 제출연월일을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후 ④ 5일 이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서기로부터 그 봉인 위에 확정일자인을 받는 방식이다. 번거롭지만 이것도 확실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유언자가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거나 교통사고로 생사를 오가는 경우와 같이, 질병이나 급박한 사유로 위 네 가지 방식의 유언을 할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가능한데, 이 방식으로 유언을 한 때에는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하여야 한다.

유일한 박사라는 분을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미국유학까지 다녀왔지만, 편한 삶을 마다하고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키우고 독립운동가를 지원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불법적 정치헌금을 내지 않아 정권에 밉보여 세무조사를 당하였지만 말 그대로 `털었는데 먼지가 안 나서' 대통령이 포기하였다는 일화가 있는 분이다.

유일한 박사는 손녀에게 학자금 1만 달러, 딸에게 자신의 묘 주위의 땅 5천 평, 아들에게 대학공부까지 시켜줬으니 이제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행여 자신의 친족들이 유한양행의 경영에 참여할까봐 자신의 친족들을 모두 회사에서 내쫓은 뒤, 자신이 평생을 일군 회사인 유한양행의 보유주식 전부를 교육사업에 기부하였습니다. 그 주식은 현재 가치로 6000여억 원이라고 한다.

법정 스님과 유일한 박사,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소유를 실천하고 가신 분들이다. 그렇지만 필자를 포함한 세인(世人)들에게 무소유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니, 성실히 모은 재산이 오히려 분란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함에 만족하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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