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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춘문학' 발간 1년…소통의 시간 이었다
`함춘문학' 발간 1년…소통의 시간 이었다
  • 의사신문
  • 승인 2019.03.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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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4〉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병원은 어느 직장보다도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함께 협력해 일하는 곳이다. 한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관계로 항상 조심스럽고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이다. 따라서 구성원 사이에 소통과 화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들이 행복하게 일을 해야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병원 원내 포탈에 틈틈이 수필을 게재하고 있는 행정처 국중홍 팀장과 간호부 김영미 과장이 주도해 직장 동호회인 `서울대학교병원 문학회'를 만들었다. 영광스럽게 정년을 앞둔 나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교수,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원, 비상계획과 직원 등 여러분들이 매달 모임을 가지면서 지난 1년 동안 정말 즐겁고 화목하게 취미생활을 보내고 있다. 올해 들어 국중홍, 김은자, 김주현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애쓴 보람으로 마침내 3월 12일 `함춘문학' 잡지를 발간하였다.

신국판 크기(152mm x 225mm) 146 쪽에 달하는 아담한 창간호에는 이비인후과 의사인 홍지헌 시인의 권두시와 회장의 발간사가 있고, 회원의 작품으로 논단 1편, 시 14편, 수필 13편, 동시 2편, 동화 2편, 디카시 4편을 수록하였다. 그 뒤 부분은 1년간 모임 화보와 회원 명단 등을 자료로 편집했다. 출판 기념 파티를 하고 책을 받아 든 회원들은 마치 첫아기를 안은 부모같이 감격스러워했다. 비용을 아끼려고 단순한 디자인에 사진도 흑백으로 처리한 소박한 `함춘문학' 책자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연상시켰다. 어린 시절 책 보기를 즐겼던 나에게 새 학기에 나눠주는 몇 권의 교과서는 목마르게 바라던 선물이었다. 밤늦게 까지, 갓 인쇄된 교과서의 잉크 냄새를 맡으며 냉수를 마시듯이 단숨에 읽어 버렸다.

출간 다음 날 새벽에 깨어난 지금, TV에서 생중계하는 흥미진진한 유럽챔피언리그 축구 경기를 뒷전으로 하고 여운이 가시기 전에 창간호 독후감을 쓰고 있다. 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수필에 관해서만 소감을 말하겠다. 우선 작품들의 높은 수준에 감탄하였다. 회원들이 평소에 문학에 관한 높은 관심과 열정으로 자기 연마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중한 사람〉에서 김혜자 회원은 비서로 평생을 모시던 흉부외과 이영균 교수님과의 인연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회 초년생인 그녀에게 선생님은 `진실과 성실로 근무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라.'고 격려했단다. 이 말씀은 그녀가 비서 역할에 솔선수범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보내는 바탕이 되었다. 교수님이 타계한 지금도 사모님과 연락하고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쓴다고.

언제부턴가 옛 것이 눈에 띄고 좋아하기 시작한 국중홍 회원에게 어릴 적 콩나물을 키우던 기구인 〈쳇다리〉는 남다르다. 안방 윗목에서 쳇다리로 콩나물을 키워, 콩나물밥, 콩나물죽으로 배고픔을 달래던 어려운 시절의 친구인 셈이다. `오랜만에 이 기구를 찾아내어 보니 정감 어린 추억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박정화 회원이 쓴 〈유천이 이야기〉는 유천이라는 사람 이름을 지어준 애완견에 대한 글이다. 가족 간의 소통과 화목을 도모하고자 입양한 강아지는 자기가 집안 서열 3번으로 착각하면서 도도하게 자란다. 그러나 식구가 어렵고 슬플 때 뒤에서 조용히 위로해 주는 유천이는 어느덧 `존재 자체' 만으로도 중요하게 되었다. `소중한 가족인 유천이가 서열이 더 올라도 불만이 없다.'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김정희 회원은 평생을 하고 있는 이 싸움을 위트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동안 멀미로 인한 고생과 수련 끝에 이제는 `시간이 주는 선물인 노하우'를 어느 정도 터득했지만 20년이 지난 오늘도 `자동차를 타면 어느새 멀미 놈은 말없이 내 옆에 앉아 있다.'

〈환갑 단상(斷想)〉에서 김영미 회원은 육십갑자 인생을 한 바퀴 돌고, 그 경험으로 두 번째 다른 삶을 시작하는 의미로서 환갑을 풀이하고 있다. 병원 간호과장에서 환갑 후 대학교수로 변신한 그녀는 힘겹게 한 학기 동안 학생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더 많이 배운 것을 실감한다. 임상 간호와 연결하여 공자님의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도 느끼며 `첫 60년 인생살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인생을 사는 계기라는 환갑의 의미를 체험했다'고 자신을 기특해한다.

임완택 회원은 〈어른아이〉와 〈오락실, 돈가스 그리고 연가〉 두 편의 수필을 게재했다. 그는 이 책에 동화도 2편을 더 실어 왕성한 필력을 뽐냈다. 부모님과 이모, 고모 이야기가 실감 나게 내 일처럼 다가온다. `입가에 흥얼거리는 옛 노래의 멜로디는 보석 같은 추억을 되살리는 마법의 주문이다.'라는 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덕 줄기〉에서 이연길 회원은 왜 그가 병원에서 알아주는 미식가인지를 보여준다. 더덕 줄기와 순을 가지고 직접 효소를 담그고 나물을 무쳐 먹는다. `세상에 없던 맛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또한 〈구세군〉인 그는 북한산 백운대 암석에서 열린 자선냄비 출정식에 참석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택하여,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다. `백운대에서 바라본 세상은 미세먼지로 흐리지만, 그 속에서 도움을 바라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 세상을 맑게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김선구 회원은 〈아, 운양동 김포한강 야생조류생태공원〉에서 은퇴 후 살고 있는 인생 2막을 흥미롭게 적었다. 영국 뉴캐슬 은퇴마을에서 삶의 모델을 발견하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단다. 마침내 18만 평의 야생조류생태공원과 인근 공원이 근처에 있는 집을 찾아내 번잡한 문명사회를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백로, 재두루미의 운명이 나와 다르지 않아 다 함께 거대하고 오묘한 생태계의 구성원임을 느낀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쌍둥이, 세 쌍둥이 분만의 명의로 손꼽히는 전종관 교수가 25년에 걸친 산과 의사의 회환과 보람을 〈산과 의사로 살아가기〉에 담았다. 분만을 위해 한밤중이나 새벽에 달려 나온 의사에게 감사의 말 외에는 아무 보상이 없다. 임신 중 산모-태아 또는 태아-태아 간 갈등과 정상 분만과 제왕절개 분만의 선택 등 전문 이슈를 쉽게 설명하지만 끝은 다음과 같이 감동으로 마감한다. `또 다른 고마운 분들은 내 진료로 나쁜 결과를 보였던 환자들이다. 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때때로 졸린 눈을 부릅뜨고 나태해지는 나를 추스른다.'

수필의 마지막은 이주영 회원의 〈미국 병원 연수기〉와 전한숙 회원의 독후감 〈소년이 온다〉이다. 겉모양새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국 병원의 운영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훨씬 원칙에 충실하다. 연수 마지막을 7대 캐니언 패키지여행으로 미국 5개 주를 섭렵한 그녀는 정녕 super-woman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을 읽고 전한숙 회원이 쓴 `독후감 글에 대한 독후감'은 내가 그 책을 직접 본 후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오늘 다소 사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적은 것은 다른 병원 모임에서 참조하길 바라는 의도에서였다. 독자 여러분의 넓은 양해를 바란다. `서울대학교병원 문학회' 회원들에게 이렇게 알찬 창간호의 발간을 축하드린다. 이 작은 책자가 동호회를 더욱 활성화시켜 직장생활에 활력과 애정을 주고, 결국에는 환자 진료를 향상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를 살짝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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