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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그은 호박, `스마트진료'
줄 그은 호박, `스마트진료'
  • 의사신문
  • 승인 2019.03.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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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31〉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간단한 질문 하나. 의사가 가장 익숙한 행위는? 다양한 답이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대다수는 `진찰'이라고 답할 것 같다. 진찰이 진료의 첫 걸음이자, 의학적 판단의 기초에 해당함에는 이론이 없다.

진찰(examination)은 의사가 환자에게 병이 있는지 여부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진찰·검사'라는 식으로 검사와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 양자를 구분하자면 진찰은 의사의 오관(五官)을 직접 이용하여 하는 것(이학적 검사: physical examination)이고, 검사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임상적 검사: clinical examination)을 말한다. 진찰은 문진, 시진, 촉진, 타진 및 청진으로 구분된다. 공자님 앞에서 천자문 강의, 정말 죄송하다.

이렇게 진찰은 의사의 오관을 직접 사용하여 이루어지므로 환자와 의사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면 일견 진찰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의료법이 `의사가 컴퓨터·화상통신 등 IT기술을 활용하여 원격지의 의료인에게 의료지식·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 바로 원격의료이다.

간단할 질문 둘. 의사가 직접 오관을 사용하여 환자가 병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진찰의 정의에 따르면, 원격의료는 진찰인가?

생각해 보면, 화상통신을 이용하여 의사가 환자와 대면하여 상병에 대하여 문답하거나(문진), 화상통신을 이용하여 의사가 환자의 환부나 신체를 보거나(시진), IT기술을 이용하여 환자의 신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거나(청진) 하는 경우에는 진찰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원격의료의 특성 및 현재의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분명 진찰에 해당하기 어려운 것(촉진, 타진)도 있다. 그렇다면 답은 `케바케'일 것이다.

만약 위와 같이 IT기술을 이용하여 환자에게 묻거나, 환부를 보거나, 환자의 신체음을 듣는 것이 기술상 가능하고, 이것이 진찰에 해당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원격의료가 (특히 1차 의료기관에 대하여) 실무상 의미있는 진료행위가 되려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 있다. 바로 의료법상 처방전 등의 교부 요건인 `직접 진찰'이다.

의사의 진료행위가 진찰로만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 대부분은 치료 목적의 투약을 위한 처방전 등의 교부로 이어진다. 그리고 의료법상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의 교부를 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처벌된다. 이러한 `직접 진찰' 요건이 있기 때문에, 원격의료는 이를 해결하는 입법이 있기 전에는 적어도 실무상으로는 반쪽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직접 진찰'의 의미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최고 법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같은 사건을 놓고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피고인 A는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이전에 1회 이상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고 `살 빼는 약'을 처방받은 바 있는 환자들과 “전화 통화를 통하여” 진료한 다음, 처방전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산 입력하고, 간호사는 그 처방전을 출력하여 특정한 약국에 전달하는 등으로 진료행위를 하였다.

이에 대하여 검사는 A가 환자들과의 전화 통화를 통하여 진료한 것은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교부한 것에 해당하여 의료법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A를 벌금 250만 원에 약식기소하였다. A는 이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였고, 이로써 장장 5년에 걸친 법적 다툼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제1심 법원은 A에게 유죄를 선고하였고, A는 이에 불복하여 다시 항소하였다. 항소심 법원 역시 ① 의사는 신의성실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한 진료를 하여야 할 성실진료의무를 지는데, ② 전화로는 `문진'만이 가능하고 다른 진찰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 위와 같은 의사의 성실진료의무가 소홀해질 우려가 매우 크고, ③ 전화를 받은 상대방이 의사인지 의사가 아닌지, 전화를 하는 상대방이 환자 본인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약물의 오남용의 우려도 매우 커진다는 이유를 들어, 역시 A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후 A는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동시에 처벌의 근거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였다. 즉 우리나라의 최고법해석기관 모두에 법적 판단을 구한 것이다.

이러한 A의 청구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2012년 `직접 진찰'은 대면진료를 의미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르면 대면진료를 하여야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같은 취지라면 원격의료시에도 처방전을 교부할 수 없을 것이다(물론 입법으로 허용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A는 여전히 유죄라는 판단이다.

반면에 대법원은 2013년 “① 의료법 내에서도 `직접 진찰(제17조)'과 `직접 대면진찰(제34조)'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고, ② 의료법 제34조 등에서 원격의료가 허용되는 범위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라고 판시한 후, “전화진찰이 의료법상 허용되는 원격의료에 해당하는지는 제34조 등에서 규율하는 것이 의료법의 체계에 더 부합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A를 유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즉 대법원은 `직접 진찰'은 대면진찰과는 구별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대면진찰이 불가능한 원격의료의 경우에도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헌법재판소는 현행법하에서는 원격의료시 처방전 교부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대법원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최근 정부는 `스마트진료'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전 정부까지는 추진하는 원격진료의 형태를 `의사-의사'간 원격진료로 국한하였으나, 이제는 의료사각지대 해소 목적에 국한하여 `의사-환자'간 스마트진료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국회에서는 “원격의료를 표기만 영어로 한다고 해서 새로운 것이 되느냐”, “이름만 바꿨다고 의료계가 찬성할 줄 아느냐”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호박에 줄 그으면 수박이 되느냐는 힐난에 다름 아니다.

무엇이든지 시작은 어려우나 확대는 쉽다. 의료계는 휴화산이었다가 다시 연기가 나기 시작한 원격의료가 활화산이 되지 않도록 감시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환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원격의료가 아닌 대면진료의 활성화다”라는 설득력 있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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