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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시대 의료계 역할은?
저출산·고령화시대 의료계 역할은?
  • 의사신문
  • 승인 2019.03.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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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3〉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국가적 정책 결정과 시행에서 의료계가 앞장 서 주도하고 해결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가 전공하고 있는 의료보건 분야의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의료보험, 의약분업 같은 중요 제도에 우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서 불합리하게 고생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일이 더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의학이나 의료와 관계되는 사회적 변화에 의료정책이나 의료관리학을 전공하는 전문가뿐 아니라 다른 의사들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적절히 대응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 급변하고 있는 인구 수의 동향에 관하여 이야기하겠다.

수년 전부터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님이 세인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젊은 교수 시절부터 학문 활동 외에도 일반인에게 감명을 주는 에세이를 발표하던 그가 99세의 나이(1920년 생)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강의와 집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대학생 때 선생님 수필집을 섭렵해 지금도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같은 45년 전에 본 책자 제목이 아련히 생각난다. 작년 겨울에 선생님 강의를 들었는데 한 시간 동안 흩트림 없이 조리 있게 말씀하셔서 감탄한 기억이 있다.

가까운 의학계의 원로 중에는 90세 중반을 넘기신 서울대 홍창의, 권이혁 두 명예교수님의 활동이 눈에 띈다. 소아심장학과 혈액학의 창시자인 홍 교수님은 서예에 몰입해 작년에 아들, 며느리와 미술관에서 전시회 `삼인삼락(三人三樂)'을 개최한 바 있다. 서울의대 졸업생의 정신적 지주인 권 교수님은 최근까지도 매년 한 권씩 꾸준히 집필을 해 우리의 모범이 되어 왔다.

그러면 이 분들의 활동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우일까? 이런 노익장 사례는 점차 많아질 것으로 나는 예측한다. 작년 12월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생명표'에 의하면 한국인의 수명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균수명은 82.7세(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지난해와 비교해 남자는 0.4년, 여자는 0.3년이 늘어났고 10년전과 비교하면 남자는 3.8년, 여자도 3.3년이나 늘었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 어른인 사람의 기대수명 즉 여명(餘命)은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예로 들면, 2017년에 65세인 사람이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남자 67.9%, 여자 83.9%로 남자는 향후 평균 18.6년, 여자는 22.7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80세 남자는 8.1년, 여자는 10.2년을 더 살아 이런 할머니들은 보통 구순(九旬)을 넘게 된다. 초장수하는 사람도 생겨 2011년에 태어난 아기 중 3%가 100세 이상을 살게 된다. 그러나 건강 수명은 아직 짧아 현재 60세인 남녀 모두 71.5세(2016년 자료)로 향후 11.5년까지 만 건강하고 그 후 평균 13.6년을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타계하고 있다.

한국인의 수명은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평균수명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치 보다 남자는 1.7년, 여자는 2.4년 각각 길어, 남자는 OECD 36개국 가운데 15위, 여자는 3위에 있다. 선진국과 비교해 남자의 기대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셈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13.8%가 되어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달려 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의료계는 급증하는 노인 환자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한편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장수를 계몽, 유도하는 정책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 인구 수에서 또 하나의 특징적 변화는 아기를 적게 낳는 저출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부터 출산율은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마침내 2001년에는 1.30명으로 초저출산 사회로 접어들었다. 정부의 출산 장려정책에도 불구하고 2004년 1.16명, 2008년 1.19명, 2012년 1.29명, 2016년 1.17명으로 계속 악화되어, 2018년에 태어난 아기가 32만 명으로 한 세대만에 1/3로 어들었다. 이 추세이면 수 년 안에 출생아 20 여 만 명인 시대에 진입할 것이다.

이처럼 심각해진 사태의 원인으로는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증가, 고용 불안정의 심화로 인한 결혼 연기와 출산 기피 등이 지적된다. 저출산 문제는 사회 구성원 특히 경제활동 인구의 축소, 고령화에 따른 복지 비용을 담당할 노동인구의 부족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 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여 출산 증가에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효과가 없다. 근본적으로 여자 만 양육을 책임지는 불평등한 현실에 가임기 여성이 적응하다가 생긴 현상이라는 측면도 있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의무와 권리를 강조하고, 양성이 평등한 사회문화를 만들어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더 이상 여성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큰 우려는 무자녀에 관한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에 20∼44세 미혼 인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는 남녀가 각각 28.9%, 48.0%이었다. 2015년 실태조사 보다 2배가 증가했다. 이유로는 우리나라는 자녀가 행복하게 자라기가 힘든 구조라는 부정적 사고 때문이다. 해결이 만만하지 않은 상황이고 우리 모두 위기감을 갖고 전 방위적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경제 인구 감소와 경쟁력 감소로 이어지는 피할 수 없는 양면의 칼이 되었다. 당연히 앞날의 의료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중 저출산은 어느 정도는 우리의 노력으로 호전이 가능하겠다.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여러 변화를 예측해 의료 시스템을 적절하게 재조정해야 한다. 사회 전체 구성원의 입장에서 또 전문가의 입장에서, 우리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적극 참여하고 다른 전문분야와 협조해 충실하고 효과적인 대책 마련에 기여해야 한다. 또 이것이 의료인이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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