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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처절한 법정 다툼
이혼보다 처절한 법정 다툼
  • 의사신문
  • 승인 2019.03.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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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30〉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이혼, 이젠 너무 흔해서 흉도 되지 않는다는 그 이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도 `갔다 온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어지간히 가십에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요즘 많은 사람들은 `누가 이혼했다더라'라는 말을 듣더라도 `그래?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정도의 영혼 없는 리액션을 보이곤 한다.

과연 이혼이 얼마나 흔한가? 혹자는 `이혼율이 40%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1년간 전체 이혼건수를 전체 혼인건수로 나눈 비율이다(2017년 이혼 10.6만 건 / 혼인 26.4만 건). 실제로 주변 사람들 중 이혼한 사람이 40%나 되지는 않는다.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는 2.1건으로, 이는 1000명 중 해마다 2명씩 이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혼한 사람은 누적되므로 체감상 이보다는 많은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싫은 것은 안 참는다는 말대로, 혼인기간이 짧은 젊은 부부의 이혼이 많을까? 하지만 혼인기간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31.2%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5년 미만인 부부의 이혼이 22.4%이다. `참고 참다가 애들 다 키우고' 하는 이혼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부들이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슬픈 통계이다.

남녀관계의 파탄을 의미하는 이혼보다 더 처절하게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혼인의 무효와 취소이다. 간단하게 말하여, 혼인무효는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아예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는 것이고, 혼인취소는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는 점에서 비슷하기는 하나 혼인경력 자체는 남는 것이다.

첫째 혼인무효는 왜 처절하게 다투어질까? 그것은 혼인무효가 인정되면 시쳇말로 `등기부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즉 혼인무효가 판결로 인정되고 이를 사유로 가족관계등록부 재작성신청을 하여 가족관계등록부를 재작성하면, 새하얀 가족관계등록부를 가진 법적 총각/처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 때나 혼인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다. 혼인 사실 자체를 `포맷'할 수 있는 강력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법은 혼인무효사유를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한다. ① 일정한 범위의 근친혼, ② 당사자 간의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를 들 수 있는데, 전자는 극히 드물고 문제되는 것은 후자가 대부분이다. 이 `혼인의 합의'라는 것은 남녀가 현재 동거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의사의 합치'를 말한다.

그러면 남녀가 같이 살고 있거나, 나아가 사실혼관계에 있는 경우에 일방이 상대방 몰래 혼인신고를 하였다면, 이것은 혼인무효라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혼인이라는 것은 `법률상, 사회생활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일정한 신분관계(=배우자관계+인척관계)를 창설하고자 하는 신분상 계약'이다. 따라서 법은 남녀가 좋아서 같이 살겠다는 의사와, 신분상 계약을 맺겠다는 의사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일방적 혼인신고는 언제나 무효이다.

둘째 혼인취소는 어떠한가? 취소는 무효만큼 강력하지는 않으므로, 법은 혼인취소사유를 다소 폭넓게 규정한다. ① 만 18세 미만인 사람의 혼인, ② 부모 동의 없는 미성년자의 혼인, ③ 혼인무효에 해당하는 것 이외의 근친혼, ④ 중혼(기혼자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다시 혼인하는 것), ⑤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 있음을 알지 못한 때, ⑥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인데, 최근의 혼인취소청구사건 중에는 ① 내지 ④는 거의 없고 ⑤, 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는 예를 들어 불치의 정신병, 성병, 말기암 등 혼인 전에 남녀 일방이 알았다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정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모야모야병, 반복성 우울장애 정도를 숨기고 결혼한 경우 법원은 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 경우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취소를 청구하여야 한다. 고민하다가 6개월이 지나면? 이혼청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공작 수컷의 허리깃털처럼,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이 암컷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 전반의 일반적인 행태이다.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게 하겠다'는 말이 사기가 될까? 이런 정도를 사기로 인정한다면 인류 사회가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학력, 경력, 결혼전력, 출산유무, 임신사실 등을 허위로 알리거나 알리지 않은 정도가 되어야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참고로 여기의 사기에는 제3자(중매인이나 부모 등)의 사기도 포함된다. 그리고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취소를 청구하여야 한다. 악성질병보다는 거짓말이 덜 심각한 상황이므로, 고민할 시간도 덜 준다.

남녀가 같이 못 살겠다고 마음이 돌아선 마당에 어떤 절차로 헤어지느냐가 무슨 큰 차이가 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흔한 이혼청구를 하지 않고 굳이 혼인취소청구를 하면서 격렬하게 다투는 것은,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경우 혼인관계증명서상 혼인 해소의 원인이 `이혼'이 아닌 `혼인취소'라고 기재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여 `나한테도 50%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혼은 받아들일 수 없어! 갈라서는 것은 전적으로 저쪽이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결혼 당시 나한테 숨겼기 때문이야! 나는 속아서 결혼한 거니까 잘못 없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현재에는 속았다는 억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장래에는 다시 만날 `진짜' 배우자에 대한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고나 할까.

혼인무효와 혼인취소의 차이는 크다. 혼인무효판결이 확정되면 아예 혼인한 적이 없는 것이 되므로, 판결확정 전에 상속을 받았다면 모두 반환해야 하고,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그 사이에 낳은 자식은 혼외자(!)가 된다. 혼인취소판결이 확정되면 `그 때부터' 장래를 향하여 혼인이 해소되므로, 판결확정 전에 받은 상속도 유효하고, 재산분할도 청구할 수 있으며, 자식은 혼인 중 출생한 자식으로 간주된다.

마지막으로, `배우자의 불임판정'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에 해당할까? 아니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신가능 여부는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실무에서도 배우자의 불임판정을 상대방이 이혼사유로 주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2세의 출산이 선택이 되어가는 저출산사회의 한 단면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세계 어느 곳의 창세기 신화에서도 남녀가 짝을 지어 등장한다. “History became legend. Legend became myth.”라는 영화 대사처럼, 남녀관계의 빛과 어둠을 기록한 이야기들은 시간이 흘러 전설이 되고 그 본질은 남아 신화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랑의 세레나데들과 혼인무효/취소판결들은 `두 개의 탑'처럼 쌓여갈 것이다.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의 귀환'이 인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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