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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내몰리는 의사들…죽어야 밝혀지는 ‘진실’
과로 내몰리는 의사들…죽어야 밝혀지는 ‘진실’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03.08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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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덕·길병원 전공의 과로사 이어 송주한 교수 9개월째 의식불명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의사들 암유병률 일반인 보다 3배나 높아

#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달 4일 과로사로 인해 숨졌다. 명절을 맞아 국내 응급의료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모습에서 의료계와 더불어 일반 국민들 모두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비극은 끝이 아니었다. 같은 달 14일에는 가천대 길병원 2년차 전공의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해당 전공의는 일주일에 118시간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 송주한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열정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던 중환자 및 에크모(ECMO)전담의다. 그러나 현재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지 9개월째다. 평소 호흡기내과 폐이식 환자와 에크모를 전담하며 지난해 3월부터는 중환자실도 전담해 왔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새벽 퇴근이나 병원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일이 많았다는 후문.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응급실까지 커버하며 열정적으로 일했기에 송 교수의 안타까운 사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사가 병원을 찾는 일이 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로서 방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2016년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주 평균 진료환자수는 외래가 118.7명, 입원 25.3명, 수술 14.3명에 달했다. 종합병원의 경우에는 외래 163명, 입원 29.3명, 수술 11.5명 수준이었다.

특히 수술의 경우 예상 밖의 돌발변수가 많아 일정이 길어지는 상황이 많다. 때문에 아침부터 새벽까지 수술을 집도해야 하는 자주 연출된다.

진료의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50.0시간, 연간 근무시간은 평균 2415.7시간에 달한다. 이는 평균 한국 근로자 노동시간보다 354시간이 많은 수치로 OECD 평균 보다도 651시간 많다.

김석영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의사는 불규칙하고 긴 근무시간에 문제를 호소하고 알코올 의존성향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진료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장시간 진료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보고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한 관계자는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는 의사들의 근무 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최근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4주 연속 평균 64시간 초과 근무 금지, 12주 연속 평균 60시간 초과 근무 금지 등을 담은 노사정 위원회의 과로사 방지법 논의에서도 의료계는 참여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 의사가 일반인보다 실제로 더 아픈가?

한편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의사들의 건강이 일반인에 비해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혜진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의사의 암유병률은 일반인에 비해 3배 정도 높았다.

논문은 지난 2010년부터 4년간 이대여성건강검진센터 및 건강증진센터를 찾은 의사 382명의 암 유병률을 조사했으며 이 중 30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이는 국가 암 통계와 비교했을 때 3배 더 높은 수치다.

구체적으로는 남성 의사는 일반 남성보다 암 유병률이 2.47배 높았는데 위암, 대장암, 갑상선암 순으로 유병률이 높았다. 여성 의사는 일반 여성보다 암 유병률이 3.94배 높았으며 갑상선암, 유방암, 폐암, 자궁경부암 순으로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아울러 연구에서는 비만의 경우에도 남성 과체중이 36.0%, 비만이 44.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연구 대상자의 평균 연령인 50대를 기준으로 일반인의 비만 유병률인 40.8%에 비해 4% 가량 높은 수치다.
 
연구팀은 이처럼 의사의 암 유병률이 높은 원인으로 바쁜 일정과 야간근무 등으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에 따른 자기관리 부실을 꼽았다.

연구를 진행한 전혜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의사의 암 유병률을 알아봤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의사 개인도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조기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업무 특성상 바쁜 일정과 스트레스, 생활습관의 변화와 방사성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증가가 암 뿐만 아니라 비만을 비롯한 대사증후군 증가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의료인들의 평균 수명이 일반인보다 짧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유승흠 연세의대 교수가 지난 2000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 평균 수명은 61.7세였다.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1995년도 국민 평균 수명 69.5세보다 8년가량 적은 수치다.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의 수명이 일반인들에 비해 짧은 원인은 뇌졸중, 간암, 위암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 전공의·공보의들 근무환경도 '암울'

전공의들의 상황도 녹록치만은 않다. 최근 가천대 길병원 2년차 전공의 사망사건에서 병원 측은 허위당직표를 작성해 해당 전공의의 실제 근무시간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해당 전공의는 일주일 168시간 중 118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최대연속수련은 59시간(12일 오전 7시부터 14일 오후 6시까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전협 관계자는 "아직도 수많은 전국 수련병원에서 이 같은 전공의법 위반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법 준수 여부에 대한 적극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우 대전협 회장은 “이번 사태는 비단 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수많은 수련병원이 근무시간을 지킨 것처럼 보이기 위해 보장되지도 않는 휴식시간을 교묘하게 끼워 넣는다”고 지적했다.

공중보건의사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실시한 '민간병원 근무 공중보건의사(이하 병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병공의 평균 주당 근무시간은 48.6시간이며, 최대 근무시간은 70시간이었다.

또한 40시간 근무를 초과하는 비율은 무려 74%에 달한다는 설명. 일 평균 진료 인원은 23.2명으로 많을 경우 최대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조중현 대공협 회장은 “과도한 업무량과 민간병원의 불합리한 대우 및 합당하지 않은 근무 강요로 병공의들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는 복지부와 도청에서 민간병원에서 근무하는 병공의의 실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현황 파악에 나서 민간병원을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다양한 문제 혼재, 해결책 쉽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다.

우선 왜곡된 국내 의료전달체계가 의사 과로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환자가 많고 중증도가 높은 대형병원과 종합병원일수록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교수 A씨는 "현재 정부의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자체가 의사들의 과로사를 부추긴다"며 "경증환자는 1, 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중증환자를 3차 의료기관에서 체계가 자리 잡지 않는 이상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특정과 쏠림 현상도 문제점 중 하나다.

전공의 B씨는 "외과, 산부인과 등 기피 과에서는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매년 발생한다"며 "해당과 의료인 및 간호사들은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2018년 기준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은 47명이지만 정원의 57.4%인 27명만 충원돼 가장 낮은 충원율을 보였다. 지난 2015년 47.9%까지 떨어진 흉부외과 충원율은 3년 연속 50%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지난 국감에서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흉부외과는 주 평균 근무시간이 76.1시간이고 120시간을 한 전문의가 있을 정도로 다른 과목보다 업무가 많고, 응급·외상·중증환자의 비중이 높다보니 사망 및 의료사고 위험도가 높아 부담이 가중됨에도 저평가된 수술·처치수가로 현실과 동떨어진 낮은 수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현재 1961년~1965년생의 흉부외과전문의가 275명으로 이들이 정년을 맞이하는 2025년 이후 대규모의 진료공백이 예상되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즉 기피과목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수가의 현실화와 위험보상수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론인 것이다.

한편 복지부에서 대책으로 내놓은 입원전담전문의제도도 아직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입원전담전문의는 입원 환자 관리를 전담하는 전문의를 따로 두는 제도로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25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입원전담전문의는 총 98명이었다. 과로에 시달리는 의료진들의 업무를 분담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인 것이다.

현재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꼽을 수 있다. 실제 대부분의 입원전담전문의가 계약직으로 채용되고 있어 고용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되고 있는 상태인 것.

대전협에서 지난해 입원전담전문의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큰 단점으로 불안정한 고용(83.33%)이 뽑혔고 △불확실한 진로(58.89%) △기존 과 의료진과 의견 충돌(58.89%) △잦은 야간 당직(57.78%) △사회적 지위 및 인식(33.33%)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입원전담전문의가 생각하는 애로사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한입원전담전문의협의회가 지난해 7월 내과계 입원전담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55명 대상 24명 응답) 결과에 따르면 입원전담전문의를 지원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직업 안정성(50.0%) △레지던트 업무에 대한 심적 부담(41.7%) △급여(33.3%) △새로운 역할에 대한 부담(29.32%) △근무여건(29.2%) 등이 순서대로 꼽혔다.

김준환 대한입원전담전문의협의회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내과 진료전담교수)는 “입원전담전문의가 과도한 업무 로딩으로 번아웃 되지 않도록 제도적 정비 및 병원, 정, 학회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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