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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壽)노인의 큰 머리
수(壽)노인의 큰 머리
  • 의사신문
  • 승인 2019.03.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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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65〉
유 형 준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유 형 준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사람의 수명을 주관하는 자그마한 키의 수노인은 특히 그 머리 형상이 특이한데, 머리가 몸에 비해 괴이할 정도로 길고 크다. 눈썹, 수염을 비롯한 얼굴의 모든 털이 긴데 머리털은 없어서 길고 높은 이마와 큰 머리가 눈썹 윗부분서부터 마치 도봉산 인수봉이 하나 우뚝 서 있는 인상을 받는다. 수노인은 도교의 신선으로 중국 전설상의 인물이다. 남반구 별인 카노푸스를 인격화 한 것으로 수성노인 또는 남극노인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9월에서 4월까지 사이에 서귀포에서만 볼 수 있다. 민화와 동양화 속의 수노인은 술을 좋아하고 불사의 영약이 담긴 표주박을 지니고, 두루마리 책이나 불로초 혹은 복숭아와 같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을 들고 있거나, 나무를 배경으로 사슴이나 학 또는 선동자와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장수를 상징하는 수노인의 머리를 왜 매우 어색할 정도로 큰 민머리를 우뚝 세워 크게 그렸을까? 머리 크기와 수명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여겨 수명을 지배할 거라 믿는 밤하늘의 별을 그렇게 대두단신(大頭短身, 큰 머리 작은 키) 노인으로 의인화했을까?
노인에서 머리 둘레와 뇌 용량 또는 치매와의 관련성에 관한 국내외의 연구 보고는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 의대 노화 분야 팀에서 2016년 `국제 정신노인의학' 학술지에 `머리 둘레는 노인에서 두개내 용량을 반영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MRI로 머리 둘레와 두 개내 용량을 측정하여 `머리 둘레가 크면 뇌용량이 크고, 이는 인지기능과 비례적 연관을 보인다'고 논고하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주제에 대해 연구자들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어 아직 명쾌하게 한 마디로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권위 있는 학자들의 공통적 의견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머리둘레는 어릴 적 뇌가 얼마나 크게 자라고 충분히 성숙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꽤 의미 있는 지표라고 인정된다.' 머리 둘레와 치매의 관련성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머리 둘레가 뇌의 발육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엔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견은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산부인과에서 임신부에서 출산하기 전에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진찰 항목 가운데에 필수적인 것의 하나가 바로 태아의 머리둘레 측정이다. 머리둘레를 측정하는 이유는 출산 시 산도를 잘 따라 나올까를 확인하는 목적도 있지만, 태아의 발육상태 또는 뇌영양상태를 예측하는 목적도 있다. 실제 임신 주수와 비교해서 아기의 머리둘레가 너무 작으면 태아의 영양상태와 뇌 발육에 더 관심을 두고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뇌가 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다. 고래의 뇌는 체중의 이천 분의 일 정도고 침팬지는 백분의 일인데 사람의 뇌는 오십 분의 일이나 된다. 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불릴 만큼 상대적으로 크다. 그렇다고 태생부터 사람의 뇌 비율이 다른 동물에 비해 큰 건 아니다. 처음엔 다 비슷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두드러지게 사람에서만 어린 시절 성장 시기에 뇌가 몸의 다른 부위보다 더 폭풍성장을 하여 다른 동물들보다 뇌의 비율이 커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섯 살 어린이 때 이미 성인 뇌 크기의 구십 퍼센트 이상으로 자란다. 이후 속도가 늦춰져서  여자는 열 두 살 전에, 남자는 열다섯 살 전에 뇌의 크기는 최대로 된다. 이 시기 이후부터는 머리둘레가 더 커지지 않고 뇌의 기능적, 질적 성숙만 꾸준히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뇌의 성장, 머리 크기는 영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영양결핍이든 다른 이유로 두개골의 크기가 작은 상태로 멈추어 버리면 두개골 속에 있는 뇌가 아무리 더 커지고 싶어도 두개골 내 공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뇌성장과 발달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치매를 비롯한 인지기능이 망가지는 뇌질환의 발병원인은 대단히 다양하고 많다. 영양의 문제 머리 크기의 문제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고 이해할 순 없다. 더구나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고 전례 없이 노인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지금까지 밝혀진 의학적 원인들만으로 현재 노인들의 뇌와 인지기능에 관한 소견을 설명할 방법이 만만치 않다.

뇌의 크기는 인지기능과 관련이 있어 클수록 인지기능을 더 잘 보존하게 하는 경향이 있고, 인지기능이 잘 보존되니까 노화와 질병에 대한 예방에도 간접적이긴 하지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어떻게 그런 관계가 생기고 이어지는 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큰 머리의 좋은 영향을 생각하면, 장수를 주관하는 수노인의 머리를 그리 크게 그린 것이 막연한 공상은 아니잖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수노인을 그린 화가도 그 귀에 이어서 그린 화가들도  뇌의 해부학이나 기능 생리를 깊이 알았으리라고 짐작하긴 어렵다. 다만 만나고 겪은, 아니면 보고 들은 오래 산 이들의 머리 크기를 떠올려 과장하여 그리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생각하여 그리고 또 생각하여 고쳐 그리면서 자신의 관찰과 장수에 대한 욕망과 화가적 상징을 듬뿍 표현하였을 것이다. 더러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죄다 공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정보는 일단 머리로 모인다. 그리고 정리 정돈하여 몸 곳곳에 활동이나 통제의 명령을 내린다. 특히 사람의 머리는 학습의 중추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배우고 익힌다. 수천 년 넘어 사신 수노인은 그 기간 동안 배우고 익힌 그 많은 지혜와 우화들을 담아두시려고 머리를 그렇게 크게 키우셨나보다. 저 남반구 하늘 높이 빛나는 별 카노푸스가 머리 큰 노인의 형상으로 지상에 내려와 늙음에도 넉넉한 학습이 필요함을 일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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