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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사 3월호 낭만닥터 인터뷰(김기찬 킴스미의원 원장)
서울의사 3월호 낭만닥터 인터뷰(김기찬 킴스미의원 원장)
  • 의사신문
  • 승인 2019.02.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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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80세에도 밴드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학창시절부터 이어진 김기찬 원장의 음악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개 의사가 즐기는 음악으로 클래식을 떠올리겠지만, 김 원장은 밴드 사운드를 즐긴다. 2004년에 만들어진 강서구의사회 밴드 ‘UNIS’의 창단멤버이기도 하다. 삶의 3분의 2를 살아온 현재도, 나머지 3분의 1까지도 밴드 음악을 즐기고 싶다는 김 원장과 이야기 나눴다. 


UNIS, U&I Sound=너와 나의 소리 

김 원장은 2004년부터 시작된 강서구의사회 밴드 동호회 유니스의 창단 멤버다. 처음에는 ‘Why not(와이낫)’이라는 이름으로 꾸려졌으나, 유명 인디밴드와 이름이 겹치고 멤버가 대거 교체되며 2016년부터 ‘UNIS(유니스)’로 재탄생됐다고 김 원장은 말한다. 15년 동안 밴드를 지킨 그는 현재 리더를 맡고 있다. 


“유니스는 You & I Sound, 너와 나의 소리를 의미합니다. 지금껏 여러 경연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의사회 행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연말에는 1~2번 정도의 정기적인 공연을 열고 있죠. 저는 2004년 와이낫 창단 때부터 퍼스트 기타를 맡아 쭉 기타를 쳐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공연에서는 보컬의 공백을 메우고자, 보컬을 맡기도 했죠. (웃음)”
김 원장이 처음 기타를 잡은 건 2004년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 좋은 밴드들이 참 많았어요. 송골매, 다섯손가락, 들국화… 좋은 음악이 쏟아졌던 시절이라 자연스레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나도 저렇게 연주하고, 노래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기더군요. 아마 수학여행 갈 때쯤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어요. 이후 대학교 예과 때 2년 정도 밴드 동아리에 몸담았고, 본과 1학년 때는 통기타 동아리의 창단멤버였죠.”


이후 김 원장은 98년도에 개원한 뒤로, 거의 밴드 활동과 진료를 함께 해왔다. 밴드를 계기로 의사회와 가까워졌고, 현재는 강서구의사회장까지 맡고 있다. 어쩌면 음악 때문에 더 바쁜 일상을 살게 된 것. 그러나 그는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며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일상에서 음악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밴드와 자신 또한 그런 관계라고 김 원장은 전한다. 


“밴드는 삶에 있어 중요한 맥락 중 하나가 됐어요. 가수나 뮤지션을 꿈꿨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동료 의사분들도 좋아하는 곡 하나를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시면, 도전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요즘엔 혼자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요. 혼자 연주하고 노래하는 희열과 성취감을 한번 느껴보신다면 일상에 활기가 훨씬 많이 돌 거예요.” 

음악, 그리고 무대의 매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음악과 깊숙이 연결돼 있다. 어떤 말도 필요치 않을 때 음악으로 위로 받고,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행복을 배가시키는 일도 음악의 몫일 때가 있다. 김 원장은 ‘음악은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음악을 통해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가장 큰 음악의 매력이라고도 덧붙인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뮤지션은 누구일까. 


“사실 보통 때는 클래식을 자주 들어요. 잘 모르지만 듣는 걸 참 좋아해요. (웃음) 과거에는 소위 7080 국내 음악을 무척 좋아했어요. 외국 뮤지션 중에서는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인 게리 무어의 호소력 짙고 파워풀한 목소리를 좋아해요. 또 영화 <킹스맨>에 삽입된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의 ‘Free Bird’라는 곡을 좋아하죠. 올해 연말 공연에는 게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와 레너드 스키너드의 ‘Free Bird’, 두 곡을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읏음)” 


밴드 창단부터 줄곧 퍼스트 기타를 맡아왔던 김 원장은, 작년 연말 공연에서 보컬로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기타로든 보컬로든 무대가 주는 긴장감과 떨림은 언제나 한결같다고 말하며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TV에서 프로 뮤지션들이 ‘무대를 즐기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면 즐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추어라서 그런지 항상 긴장되고 떨리죠. 유니스의 리더이기도 하고 특히 작년에는 보컬을 맡게 돼, 멘트를 더욱 많이 했는데요.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들이 꽤 있어요.”
찰나의 순간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꾸준한 공연을 통해 무대 매너와 멘트 등을 배우고 있다고 김 원장은 말한다. 프로와 같은 수준일 수는 없겠지만 관객들이 ‘잘한다, 노력했다’ 정도만 느껴줘도 고맙다고도 덧붙인다. 


“작년 공연에서 제가 너무 얌전했던 것 같아서, 올해 무대에서는 활력 있는 무대 매너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좋은 보컬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사실상 밴드에서 싱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잖아요? 누구든 보컬로 들어오시면 잘 모시겠습니다! (웃음)”

 
의사 그리고 의사회장으로서 맡은바 최선을 

공대와 의대 사이에서 김 원장은 의대를 택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부친의 권유가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의대, 인턴, 레지던트, 개원까지… 김 원장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밴드 활동, 진료, 의사회 업무로 다시 바빠졌지만 각각의 활동에서 얻는 보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의사로서 얻는 보람은 역시 환자 때문이죠. 생명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과가 아니라 급박한 환자는 별로 없지만, 멀리 이사한 환자가 다시 찾아올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참 감사하고 다른 환자들에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최근 1~2월에는 의사회 결산 및 예산을 세우느라 잠시 밴드 활동에 브레이크를 건 김 원장. ‘발로 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강서구의사회 2년 차 회장이다. 


“지난해 4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의사회 홈페이지도 리뉴얼했어요. 의사회장 2~3년 차 때는 홈페이지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가족동반 프로야구 관람과 근교 트레킹 행사를 하려고 해요. 회원님들이 서로 소통할 기회를 다양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회원님들의 더욱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웃음)” 

10년, 20년 뒤에도 밴드를 꿈꾼다 

‘나에 대한 잣대는 엄격하게, 상대방에 대한 잣대는 관대하게 살고 싶다’는 김 원장. 그는 어느덧 50대 중반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전체 삶의 3분의 2 정도를 살아왔다고 말하며 웃는 그에게 ‘꿈꾸는 삶’에 대해 물었다. 


“우선 건강해야죠. 그래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웃음) 제가 꿈꾸는 삶은, 70~80세에도 기타를 놓지 않고 밴드를 계속하는 겁니다. 밴드는 혼자 할 수 없어요. 기타, 보컬, 드럼, 베이스, 키보드… 기본 다섯 명은 있어야 하죠. 한두 명만 빠져도 음악을 완성할 수 없답니다. 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밴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밴드 음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꽤 멋지고 좋은 삶 아닐까요?”


‘되는 데까지 밴드를 계속하고 싶다’는 김 원장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언젠가 백발을 휘날리며 밴드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그의 모습이 기대되는 바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 원장은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의료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의료계에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문재인케어부터 응급실 폭행 사건, 의사 피습 사건 등 슬픈 소식이 넘쳤죠. 13만 의사들이 화합하지 않으면 이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모두가 화합해서 안정된 진료 환경을 구축하는 데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제가 맡은 일에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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