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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스또메르의 늙음
홀스또메르의 늙음
  • 의사신문
  • 승인 2019.02.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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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63〉

유 형 준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
시인·수필가

 

노후 준비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모임으로부터 `아름다운 노년'이란 주제로 강연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늙기는 늙되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늙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궁금하여 마련한 자리라는 설명과 함께. 강연 청탁을 수락하는 전화를 끊자마자 주제에 대한 물음이 생기면서 적잖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노년?

`아름답다'는 사전적으로 두 가지 뜻을 지닌다. 하나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만하다', 다른 하나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노년'은 좋은 속마음이 우러나서 그 행동거지가 착하고 장하여 겉에서 보는 이에게 즐거운 만족을 주는 늙음이다.

지구상에 이런 늙음이 있을까? 이렇게 잘 늙어 가는 사람이 있을까? 열심히 늙을 순 있어도 잘 늙고 안 늙고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터라 의문이 클 수밖에 없다. 어느 누가 초라한 노년을 원하고 어떤 이가 글씨도 소리도 어둡고 거동도 못하는 노후를 바라는가. 각자 나름대로 절절하게 세월을 열심히 따라 왔을 뿐인데 어쩌면 더 많은 노년들이 이렇게 쓸쓸하고 건조한 늙음을 접하고 있지 않은가.

홀스또메르(Kholstomer)는 톨스토이의 중편 소설 `어느 말 이야기'에 나오는 얼룩말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엔 `홀스또메르'라는 연극을 통해 널리 소개된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톨스토이는 세계적 대문호로서 명성과 부와 행복한 가정생활 모두를 손에 넣은 인생의 절정기에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과 `인생은 무의미'라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인생은 의식 저 깊은 속에 자리한 나쁜 무엇인가에 의해 짜여지는 것이므로 근본적 해결법은 자살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변화를 거쳐 `있는 그대로의 삶'을 택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쪽에 놓인 대등한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 받아들인다. 나아가 살아생전 도덕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수록 삶과 죽음 그리고 늙음도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작품에서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여 죽음의 필연성이 삶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달려 있다고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아마도 늙음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 것은 비평가 스타소프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노년에 대해 불평하지 마라. 그것이 나에게 예상하지 않았던, 훌륭한 이점을 얼마나 많이 가져왔던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노년과 삶의 끝도 똑같이 예상 밖으로 멋진 것이 되리라는 것이다.”

늙음은 그 자체가 훌륭하고 멋진 것이며 뿐만 아니라 늙음에 바로 뒤이은 죽음 또한 그러하다고 여기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라고 판단한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소유주에게 충성하며 화려와 초라함의 엇갈림 속에서 늙고 병든 얼룩빼기 잡종 말 홀스또메르, 자신만을 위해 산 세르홉스키 공작. 이런 저런 곡절을 거치며 둘은 늙고, 죽는다. 세르홉스키의 사체는 `땅위를 걸으면서 먹고 마시던 세르홉스키의 주검은 한참 후에 지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의 피부도, 그의 육체도, 그의 뼈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검은 모두에게 커다란 짐이었다. 그래서 그 시체를 버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골칫거리였고 단지 짐이었다'고 톨스토이는 적고 있다. 홀스또메르의 사체는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그의 시체는 새 생명을 낳는다 - 늑대 새끼들: 새벽, 오래된 숲의 계곡에서, 지나치게 웃자란 숲 속에서 큰 머리의 늑대 새끼들이 즐겁게 울부짖고 있었다. 일주일 후 큰 뼈 두개와 어깨뼈만이 헛간 뒤에 놓였다. 나머지는 모두 빼앗겼다. 여름엔 뼈를 모으는 농부가 이 어깨뼈와 두개골을 옮겨서 사용하도록 했다.'
죽어서 살은 새 생명의 양식이 되고 뼈는 뼈대로 농부의 요긴한 도구가 되는 주검과 그렇지 않은 주검, 둘을 자세히 묘사하며 비교하고 있다. 늙음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분해되어 스러져가는지도 늙음을 평가하는 소중한 변수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대단한 정력가였다. 위대한 문학 작업은 물론이고, 예순 일곱 살에 자전거를 배웠고, 테니스와 냉수욕을 즐겼다. 뜨거운 여름에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풀을 베었다고 한다. 처한 시절마다 열정을 다하여 살았고, 기력이 떨어져갈 무렵에는 `인류의 정신적 진보는 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노인들은 보다 선량하고 보다 지혜롭다'는 역설로 늙음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늙음과 죽음에 대한 완벽한 생각을 세우지 못하고 늙음의 막바지에 `삶은 완성을 위한 과정'이라며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그리고 고작 열흘 뒤, 러시아의 한 간이역 역장 관사에서 폐렴으로 여든 두 해를 마감한다. 치열한 미완성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완성이다.

며칠 후, 강연은 `아름다운 노년은 있는 그대로의 늙음'임을 되짚으며 늙은 홀스또메르의 대사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끝을 맺었다.
“내가 이렇게 늙고 초라한 불구자가 돼버린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늙은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라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늙고 병들고 불구자가 된 것이 내 허물은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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