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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병원 의사, 모두 처벌되는 건 아니다
사무장병원 의사, 모두 처벌되는 건 아니다
  • 의사신문
  • 승인 2019.02.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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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26〉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법무법인(유한) 한별

 

여기 사람키의 두세 배 되는 큰 마을 물독이 하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평상시에 각자 자기 힘이 닿는 만큼, 사정이 되는 만큼 물을 길어와서 물독에 부어 물을 모은다. 그리고 이 물을 함께 나누어 쓴다. 굳이 이렇게 큰 마을 물독을 마련한 이유는, 내가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있어 물을 길어오지 못할 때에도 물을 써야 하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물독에 실금이 있어 물이 약간 새더라도 사람들은 물독을 바꾸는 돈과 품을 생각하여 그냥 물독을 쓸 것이다. 실금이 커져서 작은 구멍이 된다면 사람들은 불안해 할 것이다. 만약 그 구멍이 더 커져서 물이 줄줄 새는 것이 보일 정도가 된다면, 사람들은 마을 물독에 계속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마을 물독이라는 좋은 제도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물이 떨어질 위험에 노출될 것이고, 물을 길어올 힘이 없는 노인이나 가족이 없는 고아들에게는 그 위험이 즉시 현실이 될 것이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 흔히 쓰는 말로 `사무장병원'이다. 자격 보유자와 자본 보유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그 불일치의 간극에서 사무장병원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자격 보유자는 자격을 제공하고, 자본 보유자는 자본을 제공하여 동업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격과 자본의 거래는 필연적으로 자격이 자본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과, 그 자격이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극히 중요한 자격인 의사면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예속은 예외 없이 `영리의료'를 추구하게 만들어 의료의 본질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1년에 100조 원이 넘는 돈을 운용하는 건강보험의 재정은 웬만한 `실금'으로는 끄떡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누수는 더 이상 실금이 아니다. 사무장병원으로 인정되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환수가 결정된 금액은 2012년∼2016년까지 1조 8,574억여 원, 2016년만 해도 5,158억여 원에 이른다. 2016년 지출된 건강보험비용이 53조 원 남짓이라는 점과 최근의 폭증세를 고려하면, 현재는 연간 건강보험비용의 1%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세계적 모범사례인 우리나라의 마을 물독에 난 큰 구멍이다.

건강보험재정이 건전하게, 쓰여야 할 곳에만 지출되고 있다는 국민들의 신뢰는 제도의 유지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신뢰가 위협받게 되면 국민들은 정부와 국회에 의료기관에 대한 감독과 단속의 강화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의료기관을 옥죄는 입법들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무장병원은 더 이상 미루거나 무관심해도 될 문제가 아니다.

첫째 사무장병원이란 무엇인가? 의료법에 따라 의사, 의료법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일정한 비영리법인 등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이렇게 의료법에 열거된 주체를 제외한 사람 또는 단체가 개설한 의료기관은 모두 사무장병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놓고' 사무장병원을 개설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형식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 실질이 문제가 된다.

둘째 사무장병원을 개설한 것으로 보는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대법원은 의료기관의 개설을 `실질적으로' 판단한다. 즉 개설 명의가 누구로 되어 있었느냐가 아니라, ① 자금을 실제로 누가 관리하였느냐, ② 직원을 누가 뽑았느냐, ③ (의료적 지시가 아닌) 업무적·행정적 지시를 누가 하였느냐 등과 같은 사실에 따라 개설자를 판단한다. 간단히 말하여, 은행계좌를 누구 명의로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그 계좌의 통장, 도장, OTP나 보안카드를 누가 점유하였는지, 주요비용의 지출 여부를 누가 결정하였는지를 보는 것이다.

셋째 사무장에게 고용된 의사는 언제나 처벌되는가? 사무장에게 고용되어 의료기관 개설 명의를 빌려준 의사는 원칙적으로 사무장과 함께 의료법위반과 사기죄의 공범이 된다. 다만 의료기관 개설 명의를 빌려준 의사의 사기죄 성립에 대하여 최근 대법원은 주목할 만한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 판결은 일반환자의 경우, 교통사고환자의 경우, 실손보험환자의 경우로 나누어 매우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는데,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 (원칙) 사무장병원이 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하여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는 경우, 의사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

② (예외 1) 사무장병원이 `교통사고환자'를 진료한 후 보험회사에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지급을 청구하면서 사무장병원임을 알리지 않은 경우, 의사에게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③ (예외 2) 사무장병원이 `실손의료보험의 피보험자'를 진료한 후 보험회사에 실손의료보험계약에 따라 실손의료비를 청구하는 보험수익자에게 진료사실증명을 발급해 주면서 보험회사에 사무장병원임을 알리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의사에게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②번의 경우 의료기관이 보험회사에 대하여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청구하는 것은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보험회사에게 갖는 법률상 `직접청구권'에 근거한 것이어서 보험회사는 그 지급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설령 사무장병원이 청구하였다 할지라도 보험회사는 지급하여야 하는 것이어서 의사에게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③번의 경우 실손의료보험의 피보험자에 대한 진료사실증명을 발급하여 주는 것은 보험수익자의 보험회사에 대한 실손의료보험계약상의 보험금청구를 돕는 것뿐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무장병원이 진료사실증명을 발급하여 주었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②번이나 ③번 같은 경우가 아닌 통상적인 ①번 같은 경우에는, 원칙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

내용이 약간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대법원이 (사무장병원에 대한 처벌은 유지하면서도)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실손의료비 지급청구 같은 경우에는 법리와 현실을 고려하여 사무장병원에 개설 명의를 빌려준 의사가 책임져야 할 한도를 넘어서 기계적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은 기억하자.

개인적 차원에서, 의사가 사무장병원 개설에 명의를 빌려주었다가 적발되는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환수와 형사처벌에 더하여 의사면허취소 위험까지 지게 된다. 의사는 정해진 월급을 받았을 뿐이고 그 어마어마한 환수액은 아예 보지도 못하였는데 말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사무장병원은 의료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암적 존재이다. 이익과 불이익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을 절대 잊지 말고 사무장병원과는 멀찍이 거리를 두면서도, 그 근절을 위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이중적 태도'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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