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16 (목)
가난...癌 투병 속 '仁術의 씨앗' 꽃피웠다
가난...癌 투병 속 '仁術의 씨앗' 꽃피웠다
  • 송정훈 기자
  • 승인 2019.01.30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故안대휘 안과의사 연세의대 동기들 추모행사…특별 박애상 수상
지인들이 기억하는 故안대휘 원장(오른쪽)의 모습

"의사 故안대휘는 너무나도 가난했던 시절을 보냈기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재능으로 가난 속에서 고통받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애쓴 故안대휘의 희생정신과 투철한 사명감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연세의대 졸업 동기들, 94년 졸)

전 세계 시각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의 마지막까지 밝은 세상으로 인도했던 의사 故안대휘(안과 전문의, 前양평 연세안과 원장).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꿋꿋이 의료선교를 이어왔던 그가 지난해 12월 15일 소천했다. 향년 51세, 젊은 나이였다.


여덟 식구와 단칸방 생활...나이 삼십에 떠안은 빚 ‘10억 원’

생전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연세의대 졸업동기 이해경 전문의는 안 원장을 ‘가난한 사람같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케했던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이 전문의는 “안대휘 원장은 안과 레지던트 시절에도 판자촌 달동네에서 여덟 식구가 다함께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 생활을 했다”며, “하지만 늘 웃으며 주변을 편하게 해주는 그 깊은 목소리에 우리는 그가 가난한 줄도 몰랐다”고 전했다.

레지던트 시절, 나이 삼십에 가족의 빚 10억 원을 감당하기 시작한 안 원장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2년 양평에 개원을 했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간호사인 아내와 함께 독거노인들을 찾아 시력을 되찾아줬다. 그가 시력을 되찾아준 이는 2년간 500여 명에 이른다.

故안대휘 원장이 ‘가난’과의 사이에서 역전승하며, 깊은 수렁이었던 10억원의 빚을 벗어날 때 즈음, 위암이라는 더 깊은 나락이 그에게 홀연히 찾아왔다. 그는 위장절제 수술 직후 비장 동맥이 터져 사경을 헤맸고,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폐색전증으로 죽음과 삶을 오갔지만, 오히려 용기를 냈다. 


“나 위암 말기인데, 이때까지 돈 버느라 신을 위해 한게 너무 없어”

이해경 전문의는 22년의 공백을 깨고 故안대휘 원장이 했던 첫마디를 잊지 못한다. 위암 3기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의료선교의 길을 선택하는 그의 우직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술과 더불어 1년 간의 항암치료 이후 안 원장은 말기 암환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3년간 6번의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2017년 7월부터 11월까지 온두라스, 탄자니아, 우간다, 모로코에서 의료선교를 이어갔다.

안 원장은 2018년 8월 간호사 부인, 두 자녀 등 가족과 함께 페루로 의료선교를 떠났다. 2018년 초 암이 재발한 그에게 마지막 의료선교였다. 그는 4개월 후인 2018년 12월 15일 오후 9시(현지시간) 뉴욕에서 가족들과 영원한 작별인사를 나눴다.

안대휘 원장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해경 전문의는 추모사를 통해 “(위암 말기에도) 기어이 넌 우간다까지 가서 수많은 영혼, 시력을 찾아주고 갔구나”라며, “고맙다, 친구야. 너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손수 보여줘서. 이제 우리가 네 몫까지 이어서 할께. 천국에서 보자”고 애도를 표했다.

 

지난 2017년 모로코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했던 故안대휘 원장(가운데)

“내가 못 다한 것, 같이 다 해줘”

그가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의 마지막 말에 아내는 “오직 성령이 안대휘에게 임하시면 안대휘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답했고, 두 딸도 “아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한 자에게는 예수님이 상급을 주신다고 했던 말씀, 이제 제가 기억할께요”라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전했다.

작별인사 이후 찬송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의 3절을 온 가족이 부르던 중 안 원장은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해경 전문의는 “미국 이민 교회에서 진행된 故안대휘 원장의 장례식엔 함께 봉사와 찬양을 한 많은 이들이 그가 작사·작곡한 찬양을 엄숙히 부르며 그를 그리워했다”며, “그가 짧은 시간동안 성치않은 몸으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지고 갔는지, 장례를 목도한 본인은 참으로 기이했다. 막연했던 슬픔이 감격으로 변하고 삶의 재도전을 받는 시간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故안대휘 원장의 아내는 “말기암환자가 왜 이 고생이냐고 묻지 말아달라. 암은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라며, “지난 3년간 그는 미국에서도 끝까지 잘 싸운 그리스도의 용사였고 저와 아이들의 찬양속에서 예수님과 천국으로간 행복한 가장이다”고 남편을 추억했다.

한편, 지난 26일 연세의대 총동창회 총회에서는 故안대휘 원장에 대한 특별박애상 시상이 있었다. 수상은 졸업동기(94년졸) 9명이 참석해 대리 수상했다. 

안 원장의 시신은 미국의 한 의대에 기증됐으며, 예비 대학생인 그의 큰 딸은 현재 의사를 꿈꾸고 있다.

시각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했던 의사 故안대휘(왼쪽)
위암 투병 중에도 해외 의료선교를 떠났던 故안대휘 원장(가운데)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