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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변호사라고?…“밴드는 내 삶의 활력소”
딴따라 변호사라고?…“밴드는 내 삶의 활력소”
  • 하경대 기자
  • 승인 2019.01.28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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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 유한(한별)

우리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의 연속선상으로 봤다.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곧 권태로움이 찾아와 무기력함을 느끼기 십상, 또 다른 고통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즉 결핍에 의한 고통과 만족에 수반된 권태 사이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는 것이 인류가 직면한 현실이며 낙관주의야 말로 고뇌에 대한 날카로운 조소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극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귀찮더라도 뭔가에 몰두했을 때, 혹은 힘들었던 것을 감수하고 한 가지 일을 끝냈을 때, 그로 인해 뜻하지 않은 또 다른 가치를 얻곤 한다. 단순히 권태를 쫓기 위해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새로운 감정,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취미라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쉬는 것보다 목표를 갖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다. 본업에 치여 밴드 매니저를 하면서 정말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소중한 자산이었다.”

밴드와 바람난 변호사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 유한(한별))는 벌써 7년 째 그룹사운드 소울바이트(이하 밴드) 매니저 일을 자처하고 있다. 본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10년 이상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던 자칭 `딴따라'인 그는 군대를 다녀와 음악에서 손을 놓고 지냈다. 그러던 중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들과 모여 특별한 음악회를 만들어 보자는 계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가끔씩 본업에 치여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힘들고 귀찮아서 쉬고 싶은데 시간을 쪼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고 투덜거릴 때도 있지만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낼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꿀 같은 행복이라고 말하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공연 기획·연출 및 밴드 매니저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법연수원 동기들끼리 시작한 밴드의 매니저 일부터 공연 일정 조정, 장소 및 출연진·관객 섭외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일을 맡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그냥 아무 의미 없이 공연을 하는 것 보다는 이 일을 통해 의미도 찾고 싶었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비행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단체나 장애인 시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초대해 공연을 기획하고 더 다채로운 공연을 위해 무료로 무대에 서 줄 재능기부 팀도 섭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소울 바이트는 2012년부터 매년 정기자선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기부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단체나 기관 등을 연계해 기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6회의 자선공연을 통해 총 1150여명, 총 기부액은 5700여만 원에 달한다”며 “기부금은 난치병 어린이의 치료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부모 없는 아이들의 보호시설인 서울삼동소년촌, 소년법 6호처분을 받은 보호소년들을 보호하는 나사로청소년의 집 등 꼭 도움을 필요로 하는 19곳에 전달됐다”고 소개했다.

취미처럼 시작한 일이라고 해서 신경 쓸 일이 적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여러 팀을 섭외하다보니 일정 조율이 쉽지 않고 일정 조율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또한 할 일은 태산인데 시간은 촉박하기 일쑤였고 밴드 운영을 위한 잡일부터 공연을 끝낼 때까지의 모든 일들은 사전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신경 쓰는 게 많아지는 만큼 배우고 경험하는 것도 많아지는 법, 그에게 밴드 매니저 일은 일종의 성장의 기회였다.

전 이사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에 대해 “지금까지 발달 장애를 극복한 여자기타리스트, 시각장애인 마술사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났다. 오히려 다른 초대 팀들을 통해 배운 점이 많았다”며 “시각장애 마술쇼 같은 경우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공연을 보고 우리가 오히려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공연을 구경했던 관람객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입을 뗐다. 관람 청소년 중 지금까지 이메일로 연락하는 인연이 있다고 자랑하던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공연을 보고 환하게 웃는 관객들을 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이 있다. 이들과의 인연도 나에게 소중한 추억과 삶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세월이 갈수록 밴드의 음악적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몇 가지 장르에 국한됐던 젊은 시절과 다르게 팝과 가요, 락과 트로트, 아이돌 댄스곡까지 넘나드는 음악 취향의 변화가 마치 인생을 닮아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젊은 시절 좁은 식견과 부족한 지식으로 우쭐되기 쉬운데 다양한 음악 장르를 접하면 접할수록 더 많은 세계와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함을 깨닫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는 설명. 때문에 밴드는 최근 옛날 가요부터 방탄소년단(BTS)의 최신 곡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을 공연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음악의 선택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발라드부터 헤비메탈,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부터 Mark Ronson의 `Uptown Funk'까지, 심지어 BTS의 `DNA'까지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음악을 취향에 맞게 편곡해 연주한다. 특기를 살려 서울시의사회가 연말에 주최할 예정인 자선 송년의 밤 행사를 맡아 멋지게 기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음악과 밴드활동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참을 망설였다. 뜸을 들이다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명한 건 이제 밴드 매니저가 자신에게 단순한 취미 활동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시작했으니 변호사 일보다 경력 면에서 오래됐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는 “인생에서 본업인 변호사 일과 함께 업고 가야할 각자의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그 음악을 통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공연 수익금으로 기부까지 할 수 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인생의 가치와 소소한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몰입하고 노력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요즘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는 일명 워라벨이 인기 키워드로 뜨고 있는데 휴식도 좋지만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밴드 운영을 위한 잡일부터 공연을 끝낼 때까지의 모든 일들은 가끔씩 그에게도 버거운 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고통을 이겨내고 힘든 6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그가 얻은 소소한 감정들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일상의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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