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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샘…늙음의 샘
청춘의 샘…늙음의 샘
  • 의사신문
  • 승인 2019.01.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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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 오디세이아 〈61〉
유형준 CM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시인·수필가

“세월이 거꾸로 가는가 봅니다. 더 젊어지셨어요.”
“그대로세요. 하나도 늙지 않으셨네요.”
“변함없이 고우세요.”

모처럼 만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젊음을 유지하고 있음을 짚거나 또는 그렇게 되길 바라는 덕담이다. 이런 덕담에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젊음을 지탱하고픈 욕구를 속으로만 간직하기보다 겉으로 드러내어 끊임없는 노력을 투자하는 풍조가 거세고 그에 휩쓸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드러냄에 편승하여 노화에 관련하여 실험실서 얻어진 극히 단편적이고 인체에서의 검증도 없는 연구 결과라도 청춘을 상업화하여 경제적 부까지 맛보고 있는 사람도 덩달아 늘고 있다.

청춘. 가슴 뛰는 단어다. 치기어린 실험이 듬뿍 섞이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청춘이란 말만으로도 심장이 뛴다. 개인적으로도 청년 시기엔 양쪽 어깨에서 날개가 돋아 하늘 어디든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했었다. 지금이야 양어깨를 삼백 육십도 앞으로 뒤로 돌릴 수 있음을 대단한 능력이라 감사하고 있지만. 청춘을 그대로 지니고 늙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패션에서 말투까지 온통 젊은이처럼 변신하면 몸과 마음의 안팎에 청춘이 만발하여 젊은이들과 견주어 손색없이 멋지게 엉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청춘은 청춘의 때가 있다. 나이가 쌓은 벽을 넘거나 허물어 소통한다며 젊음을 모방하는 건 진정한 소통도 상호 이해도 아니다. `당신이 장차 밤가루를 분가루에 타서 귤껍질같은 주름을 없애고, 버드나무를 깍아 단단하게 하여 앞니 빠진 자리를 때우며, 꽃무늬 아로새긴 옷을 입고 젊은이들과 어울린다면 이 역시 잘못이 아닌가.'라는 `각로선생전'의 안타까움에 공감한다. 청춘과 늙음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며 어울리는 것이 나이의 벽을 거두는 모습이 보기에 더 무난하다.

한창 때의 기준으로 늙음을 헤아리는 건 답답하다. 늙음에서 세월을 빼면 젊음이 될 수 있으니 세월을 제거해보자? 헛생각, 헛수고다. 물론 아무리 늙어도 결코 변하면 안 되는 도리가 있다. 나이로 구별 안 되는 인성의 기본은 당연히 변함없이 견고해야 한다. 한창 시절 청춘을 솟아 내던 샘이 세월에 따라 청춘은 마를지라도 샘물만은 계속 내어야 하듯이. 청춘 같은 -솔직히 말하면 청춘을 흉내 낸- 늙음이 아니라 늙음 다운 늙음이 보기에도 더 순하다. 노인은 노인다워야 한다. 동참할 자리인지 아닌지부터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노인 흉내를 내라는 뜻은 아니다. 노인만이 누릴 수 있는 늙을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다.

젊음의 기운과 힘이 솟아나는 곳을 청춘의 샘이라 부른다면 그 샘은 정말 있는가? 이제까지 지구상 어디에도 청춘의 샘을 발견한 사람은 없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고 단지 각 사람의 속에 들어 있다손 쳐도 `그땐 청춘을 솟쳐 내었지만 이제는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지금은 `늙음의 샘'이란 이름으로 청춘 대신에 타고난 건강, 생활환경 개선, 질병의 적극적 관리, 긍정적 사고 등에 관한 지식과 지혜를 흘려 내고 있다.

늙음은 노년다운 노년의 삶을 따라서 찾아가는 과정이며 또한 하루하루 늙어가는 현상 그 자체다. 그래서 늙음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는 것도 드물다. 각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과 공과에 따라 다 다르다. 청춘이 여전히 팽팽하다면 남다른 축복이라 감사하며 젊은 늙음을 누리면 된다. 백발성성한 채 높은 자리에서 큰 일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약속임을 고집하여 일선 현장에서 물러나 자연의 일부라도 되려는 풍성한 산수를 관조하며 즐기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 늙음을 원하는가. 철저히 늙고 싶다. 그래서 앞뒤좌우 어디로 보든지 노인이고, 빈틈없이 노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다.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에 등장하는 여든 살이 다 되어도 주인에게 충성하는 애덤처럼 머리에 온화한 허연 서리를 얹고.

“비록 늙어 보이지만 건강하고 원기 왕성합니다.
젊은 시절 거칠고 드센 술을
내 몸에 들이 부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허약과 무기력의 길을 뻔뻔스럽게 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내 나이는 활기 찬 겨울로서 서리가 내렸지만 온화합니다.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늙음에 관한 지혜는 하나가 아니다. 정평 있는 교과서들에 언급되어 있는 노화이론만 해도 삼백 오십 개가 넘고 늙음에 이롭다는 실제 방안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수많은 실제 방안들 중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무탈한 근본은 `좋은 늙음은 뾰족하고 신기한 비법이 자아내는 마술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영양과 운동에 달려 있다'다. 여기서 운동을 활동으로 바꾸어 불러도 전연 틀리지 않는다. 활동도 어려우면 동작, 움직임이라 해도 좋다. 이는 `억지로 사려를 쓰고 억지로 시력과 청력을 쓰고 억지로 언어를 쓰고 억지로 동작을 쓰지 말아 앉고 눕기를 때에 따라 하고 음식을 적절히 하라'(`노년의 풍경', 김미영 등)는 팔십 삼세를 산 조선 중기 철학자 장현광 선생의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늙음에 대한 지혜에, 노인병 의사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정보, 심지어 상상력까지 동원하여 두 문장으로 된 수사를 보탠다.

“세월이 억지로 거꾸로 갈 수 있나. 청춘에서 늙음으로 이름이 바뀐 바로 그 샘을 찾아 열심히 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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