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비인기과 전문의 `애환'
마이너 비인기과 전문의 `애환'
  • 의사신문
  • 승인 2019.01.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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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1〉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 제가 이 칼럼을 시작한지 어느덧 4년이 되어 작년 의사신문 마지막 호에 `마로니에 단상 100회'가 게재되었습니다. 그동안 미숙한 글을 따뜻하게 감싸주시고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 지난 호 의사신문에 100회 연재를 축하하는 기고문을 써주신 한광수 전 서울시의사회장님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 첫 번 째 101회 수필은 마이너 비인기 과 전문가의 애환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 후 의대생의 진로는 크게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계열로 나눈다. 또, 임상의학 계열은 환자를 직접 보는 진료과와 환자를 직접 상대하지는 않고 진료 의사를 보조해 주는 진료지원과로 나눈다. 임상 진료과는 의료계의 상황에 따라 인기의 부침이 있으나, 기초의학 계열과 진료지원과들은 대부분 만성적으로 지원자가 미달이다. 이런 소위 `마이너 비인기 분야'의 전문가가 겪는 애환을 내 전공 핵의학을 예로 들며 이야기 해 보겠다.

우리나라에서 핵의학은 1995년에 전문과목으로 인정받아 독립하여, 전공의(專攻醫) 수련 과정도 만들고 현재 170 여 의료기관에서 360 여 명의 전문의가 일하고 있다. 전문과가 된 후 우리 핵의학은 우수한 인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급성장해 세계 3∼4위권의 높은 진료와 연구 수준을 유지하여 그동안 제법 자질 있는 의대생들이 지원하여 왔다. 그러나 요즈음 PET 검사 등 보험 적응증이 축소되면서 인기가 떨어져 지원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형편이다.

아직도 핵의학은 일반인뿐 아니라 의료인에게도 낯선 분야이다. 병원에 `핵의학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의료인도 막연하게 알고 있어 종종 진단방사선과(현, 영상의학과)나 치료방사선과(현, 방사선종양학과)와 혼동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임상 이용과 시설 투자가 적어지고, 다시 전공 지원자의 감소를 불러와 계속 미지의 분야가 되어, 임상 이용이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惡循環)이 생길 수 있다.

이 기회에 설명하면 외부에서 인체로 방사선을 투과시켜 촬영이나 치료를 하는 진단방사선과(현, 영상의학과)나 치료방사선과(현, 방사선종양학과)와 달리 핵의학과는 방사성 물질을 인체에 주입해 세포 대사나 장기 기능에 따라 전신에 분포된 후 나오는 방사능으로 영상을 만들고 치료 효과를 얻는다. 즉, 저 쪽은 물리적 현상, 우리 과는 생리·생화학적 현상을 이용해 진료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본 원리가 다르니 공부해야 하는 지식과 연구 진료하는 방법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이너 비인기 분야 의료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다. 핵의학 전문의 제도를 만들 때에도 많은 회원은 내과, 방사선과로 돌아 가고 몇 명만 남게 되었다. 동료가 적고 때때로 혼자 일하고 있으니 길을 잃은 것 같기도 하여 불안하였다. 그러다가 핵의학 용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친척처럼 반가워하며 단합하여 지금의 `작지만 강한' 핵의학회를 만들었다. 미국의 유명한 전원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는 길〉에서 이런 외진 분야를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 속 고독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가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중략-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길은 풀이 더 있고 사람 발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지요
-중략-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선택하였고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현대인은 여러 여건으로 점점 물질주의자와 배금주의자가 되어 가고, 특히 젊은이들에게서 뚜렷한 현상이다. 마이너 특수 분야는 경제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수입이 적은 경우도 있다. 날이 갈수록 지원자가 적어지는 또 다른 이유이다. 그렇다고 본인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더 안정되고 보수가 높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런 특수 분야를 전공할 때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약점이 바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특수성과 희귀성이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기 때문에 본인만 노력하면 타 분야보다 쉽게 교수나 연구원이 되고 학문과 진료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따라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생긴다. 자신과 가정의 소시민적인 안락도 중요하지만 가치 있는 인생에 대한 이상을 가진 젊은이라면 험난하나 보람 있는 길을 도전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와 명예를 함께 가지기를 원하나 사실은 불가능하다. 마이너 비인기 과 전공자는 개업을 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해 질 수는 없지만 (사실 이런 개업 의사는 극소수), 대신 연구나 교육에 관여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학의 주류에서 벗어난 외딴 길을 걷는 것 같으나, 현대 의학은 극도로 세분화되어 메이저 과 임상 의사도 한정된 분야의 일을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어떤 마이너 과 전공자는 응급 환자가 없고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다는 점을 선호해 병원 일 보다 취미생활과 가정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현재 가장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의료계에 들어 오는데 이들의 능력 발휘와 자기 성취가 개인이나 사회 전체의 발전에 아주 중요하다. 물론 메이저 임상과에서 환자를 직접 치료하며 봉사하는 것도 보람 있지만 뛰어난 지능으로 기초의학 연구나 신 의료 개발에서 능력을 발휘해 인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사명감과 자부심을 키울 수 있게 스승과 선배가 모범을 보이고 올바로 지도해야 한다. 또 선배가 적어 젊은 나이에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가 많다. 작은 학계를 대표하면서 인내와 성실, 원만한 대인 관계, 리더십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자연스럽게 키워진다. 이 결과 적지 않은 비인기 과 의사가 여러 학장이나 병원장이 되고, 때로는 의학계의 대표로 활약하기도 한다.

참고로 우리 핵의학계의 악순환 정면돌파 전략을 소개하겠다. 반 원자력 정서를 피하기 위해 `핵의학과' 이름을 애매하게 바꾸지는 않을 생각이다. 과대 포장된 미래로 지원자를 혼동시키지도 않겠다. 그대신 지금의 의료는 아직도 해부학과 생리학적 시대의 논리에 머물고 있으나, 점차 생화학, 분자생물학의 시대로 발전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겠다. 핵의학 고유의 추적자 원리, 표적 치료법과 진단법의 융합(theranostics), 유전자 영상법과 방사성핵종 유전자 치료법, 핵의학 영상과 빅 데이터 관계 등 미래 의학에서 핵의학의 기여도를 연구하고 강조하겠다.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극저준위 방사능 피폭의 단점을 훨씬 능가하는 핵의학 진료의 이익을 설득하겠다.

마이너 각 분야마다 특수성이 있어 전략은 다르겠지만 소수 집단에서 느끼는 고독과 위축을 선구자의 호연지기로 승화시킬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구성원이 적을수록 더욱 단결하여 협조해야 한다. 이런 노력과 본보기는 우수한 의과대학생의 잠재된 지적 호기심과 사명감을 자극해 지원생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연구와 진료 수준이 재도약하여 다시 수요가 증가하는 선순환(善循環)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한편, 자기 분야의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험한 리더십으로 보건의료계뿐만 아니라 미래 우리 사회 전체를 선도하는 뛰어난 인재도 나오는 역전 드라마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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