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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쇼팽 연습곡 작품 10-12 `혁명'
프레드릭 쇼팽 연습곡 작품 10-12 `혁명'
  • 의사신문
  • 승인 2010.08.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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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피아노의 예술적 발전 이끌어

상상력과 시적 감흥이 요구되는 쇼팽의 연습곡은 어느 장르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완성도가 높은 곡들이다. 쇼팽의 연습곡은 단순히 집에서 혼자 피아노 연마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연습곡이라는 장르는 쇼팽의 손을 거친 뒤 비로소 고도의 피아노기법과 낭만적인 감수성, 초월적인 예술성을 겸비한 피아노의 장르로서 듣는 이들에게 정서적인 감동과 예술적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완전한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가히 쇼팽의 연습곡은 혁명적인 시대정신의 발로였다. 

쇼팽은 피아노의 기법과 예술성 각각 그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그들이 하나로 조화를 이룰 때 완벽한 예술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리스트의 현란한 테크닉에도 별 감동을 받지 못하고, 낭만적 감정에만 치우친 슈만에 대해서도 별다른 친근감을 갖지 못했다.

연습곡 `혁명'은 쇼팽이 고국 폴란드에서 파리로 떠나는 도중 슈투트가르트에 머물고 있을 때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게 침공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한 나머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작곡하였던 곡이다. 피아노 기교 상 왼손을 위한 연습곡으로서 격동적인 왼손의 흐름에 오른손은 거친 옥타브를 가지고 강렬한 선율을 노래하고 있다. 이 곡은 연습곡이지만 곡에 담긴 통한의 심정은 연습곡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음유시인 것이다.

사실 폴란드를 떠난 쇼팽은 그때까지만 해도 비엔나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쇼팽 자신도 비엔나의 향락의 밤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 당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협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라 러시아에서 독립하려는 폴란드 국민은 비엔나에서는 적국 사람으로 무시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쇼팽은 비엔나를 떠나 파리로 가는 도중 러시아가 폴란드를 다시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글로 남기고 있다. “가엾은 아버지, 어머니 굶주리고 계시겠지. 누이와 동생은 어린 몸을 러시아 군인들에게 얼마나 짓밟혔을까.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괴롭다! 오로지 절망을 피아노에 쏟을 뿐이다.”

훗날 프랑스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쇼팽은 항상 폴란드에 대한 향수와 애국심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러한 애국심이 그에게 평생 위대한 음악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폴란드를 떠날 때 은컵에 담아온 폴란드 흙은 프랑스에서 쓸쓸하게 사망하였을 때 그의 묘지위에 뿌려지게 되고 자신의 유언대로 그의 심장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성십자가 교회로 옮겨 묻히게 된다.

쇼팽은 피아노를 때려 부술 듯이 연습곡을 써내려갔고 그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곡속에 그대로 서려있다. 이 곡속에서 나라를 잃은 분노와 타국에서의 외로움이 격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무엇보다도 악센트와 힘을 필요로 하는 연습곡이 된다. 특히 왼손은 힘을 빼고 조절하면서 연주를 해야 하며 격동적인 부분에서는 거칠게 선율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테크닉적으로도 어려운 곡이다. 그의 12편 연습곡의 대미를 장식할만한 장대한 곡이다.

쇼팽의 음악성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민족주의적 테두리, 혹은 낭만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모델로 한정 지울 수는 없다.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혁명적인 예술적 발전을 이끌어낸 작곡가이다. 교향곡의 베토벤, 바이올린의 파가니니, 오페라의 바그너에 비견할 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혁신적이다. 그의 음악은 예술세계가 요구하는 애국심, 낭만성, 시대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음악기법을 내포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연습곡(에튀드)과 전주곡(프렐류드)는 그의 대표적인 혁신적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들을만한 음반 :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DG, 1972);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Decca, 1972, 81, 82); 스비아토슬라브 부닌(피아노)(EMI, 1998); 상송 프랑스와(피아노)(EMI, 1958); 알프레도 코르토(피아노)(EMI, 1934)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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