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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사 1월호 낭만닥터 인터뷰(홍관수 세실내과의원 원장)
서울의사 1월호 낭만닥터 인터뷰(홍관수 세실내과의원 원장)
  • 의사신문
  • 승인 2018.12.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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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홍관수 원장이 운영하는 세실내과의원의 접수 데스크 옆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다. 일반적이지 않은 광경이지만 음악 애호가 홍 원장이기에 수긍이 간다. 인터뷰가 무르익어갈 무렵, 진료실 안으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온다. 진료가 없을 때는 가까운 음악인들에게 연습실용으로 공간을 제공한다고 홍 원장은 웃으며 말한다. 음악 문외한에서 오페라 전도사가 된 그를 만났다. 


운명처럼 다가온 오페라 

홍 원장은 진료를 본질로 삼으면서도 틈틈이 오페라 해설과 성악, 작시를 하고 있다. 하루가 모자라겠다는 말에 그는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건 없다’며 웃는다. 그런 그가 오페라에 빠지게 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우연히 오페라 강의를 듣게 됐고, 관심이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오페라는 물론 음악 문외한이었죠. (웃음) 오페라에 재미를 느낀 후로는 혼자 보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오페라를 함께 감상했고, 제가 해설을 했어요.”


책이나 영화의 경우 줄거리를 다 알고 보면 흥미를 잃는다. 하지만 오페라는 달랐다. 알고 봐야 재미와 깊이를 더 느낄 수 있기에 홍 원장은 인문학, 미술, 역사, 신화,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시작했다. 


“요새 오페라 강의나 감상 모임이 많습니다. 과거보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었죠. 처음 오페라를 접하시는 분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입문하시면 좋습니다. 특히 오페라에는 일정한 룰, 즉 일정한 스토리와 형식이 있습니다. 룰을 모르는 스포츠는 지루하게 느껴지잖아요?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페라는 사전지식, 배경지식이 풍부할수록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여전히 40~50명 정도의 수강생이 그의 오페라 해설 강의를 찾고 있다. 오페라 입문자들의 길라잡이가 돼주는 홍 원장은 이를 통해 보람을 느낀다. 이제 오페라는 그의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여러 수강생이 오페라를 만나 자신의 삶이 품격있게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수강생은 평소 대중가요만 들었는데, 오페라를 들으며 자존감과 안목이 높아졌다고도 하더군요. 그런 말 들을 때, 좋은 문화를 알려줬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오페라는 ‘좋은 문화’다  

악보에 수놓아진 음표들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웃긴다. 음의 배치, 즉 선율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렇게 전해지는 음악은 형이상학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학적인 것들과는 다르다. 홍 원장은 음악처럼 형이상학적인 것을 공부하면 자아가 확장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또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좋은 문화가 자리 잡고, 좋은 사회가 된다고 덧붙인다. 


“음악에 대한 이해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악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오히려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 대개 오페라를 어렵게 생각하지만, 오페라에는 가사가 있고 스토리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사와 연극적인 형태가 합쳐진 장르죠. 따라서 다른 장르보다도 감동하기 쉬운 장르이면서도, 아주 좋은 문화입니다. 좋은 문화가 많아지면 나쁜 문화가 자리 잡을 곳이 없어요. 오페라는 개인과 사회가 순기능 하기에 효율적인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홍 원장은 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느꼈던 여러 감정… 세월이 가면 잊혀지지만 그 감정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습니다. 오페라의 선율은 깊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감정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며 감정을 순화시키죠.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암시해줍니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깊이 있는 삶을 살게 해주고, 안목을 높여줍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은 후세에 붙여진 곡명이잖아요? 사람들이 그 곡을 듣고 운명을 느낀 거죠. 예술은 사람들에게 이런 걸 느끼게 해줘요. 결국 세상을 깊이 있게 살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홍 원장은 의사들이 자존감이 떨어지고, 위축되는 이 시대에 오페라는 위로가 돼줄 것이라고 전했다. 

 
성악, 가곡 작시, 공연 기획… 23시간의 사나이 

‘하루가 너무 짧다’는 의미로 홍 원장에게 붙여진 ‘23시의 사나이’라는 별명. 실제로 그는 오페라 말고도 성악과 가곡 작시, 공연 기획 등을 꾸준히 하고 있다. 


“대학 동기가 전문의를 마친 후 한양대 음대에 편입했어요. 음악 활동으로 바쁜 동기가 병원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개원하게 됐죠. 당시 여러 성악가분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셨는데 제 목소리를 들으시곤 성악을 권유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성악을 시작했죠.”


이제는 웬만한 아마추어를 가르칠 만큼 그의 성악 실력은 수준급이다. 한계점이 보일 때마다 최적의 발성법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한 세월 덕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그의 기획으로 3년 동안 열리고 있는 세실건강콘서트 무대뿐 아니라, 주기적으로 성악 공연에 서고 있다. 특히 오페라 때문에 쓰기 시작한 시는 그를 등단 시인으로 이끌었다. 


“2011년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보통 제가 쓴 시를 가사로,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 성악가들이 부르곤 합니다. 제 시로 작곡된 가곡이 벌써 20개가 넘고, 합창곡으로 작곡된 건 5개쯤 되네요. 오페라를 만나 어느 순간 성악가가 됐고, 또 어느 순간 시인이 돼 있었습니다. (웃음)” 

  
생명의 신비로움, 의사로 이끌다 

홍 원장은 중학교 시절 잠깐 의사를 꿈꾼 적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 후 수학 교사를 존경해 수학 교사를 꿈꿨다. 또 생물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곤충의 표본을 만드는 체험학습은 그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일이다. 시간이 지나자 생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자연히 생명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익사 직전에 구조돼 인공호흡으로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거죠. 그 후로 무의식 속에 생명에 대한 감사함, 신비로움, 아름다움이 잠재하고 있던 것 같아요. 움직이는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이 늘 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생물에서 생명으로 관심이 옮겨졌고, 그래서 의사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홍 원장은 의사가 됐고 환자를 진료하며 소소한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부족함을 항상 느낀다며, 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의사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껴요.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일에 소홀하니까요. 또 ‘과연 내가 양질의 진료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걸까?’ 싶어서 환자들에게 미안하죠. 어쩌면 의사를 오래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한 곳에서 20년 넘게,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는 그이지만, 때때로 자신을 자책한다. 진료실 안에서 환자에게 질병에 대해 한참을 열심히 설명하던 그의 모습이 겹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은 훌륭한 의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훌륭한 의사가 아니에요. 좋은 의사, 실력 있는 의사도 아니죠…. 그래도 믿을만한 의사는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적어도 이익 때문에 환자를 속이진 않아요. 가끔 환자들이 제게 ‘좋은 의사’라고 말하면, 전 이렇게 대답해요. ‘좋은 의사는 아니지만, 믿을 만은 해요’라고. 의사로서 많이 부족하지만, 신뢰할만한 의사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깊이 있는 삶을 꿈꾼다 

홍 원장은 향후 세 권의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자신의 시에 미술을 전공한 딸의 그림을 삽입한 시집과 20년간 온라인 카페에 연재했던 오페라문답식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다. 마지막으로는 20년 넘게 스스로 터득한 성악 발성법 책이다. 


“해부 생리를 기초로 한 성악 발성법인데요. 언젠가 책으로 꼭 낼 예정입니다. 해부 생리와 연관된 발성법 책이 많지만 음악만 전공한 분들은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전 의사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성악 발성을 배우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어요. 그 노하우를 다른 분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책을 꼭 쓰고 싶어요.”


‘내일은 없다’를 모토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하루에 최선을 다한다는 홍 원장. 그는 인터뷰를 맺으며 조심스럽게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말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고, 건방진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스스로에게 늘 하는 말입니다. 끝으로 독자분들께도 ‘깊이 있는 삶을 삽시다’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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