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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속의 청향<30>
무더위 속의 청향<30>
  • 의사신문
  • 승인 2010.07.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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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마금이라는 품종의 난. 왼쪽 위 가장자리에 화제로 香問十里를 써 넣으면 멋진 그림 한 폭이 될 듯하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지인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돌에 붙인 소엽풍란에서 피어난 흰 꽃 세 송이가 보입니다. 아직 몇 촉 되지 않은 난이었지만 점잖게 올라 앉아 단단히 뿌리를 붙여 뻗고 있는 생명력이 기특할 뿐입니다.

어느 날 잎 사이에서 좁쌀 알갱이만한 것이 자라 올라 저렇게 꽃이 피었으니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사무실에서 기르던 나도풍란이 보잘 것 없이 생긴 꽃을 올리고는 창밖에서 들이치는 봄 햇살을 받으며 한껏 향을 내뿜을 때 그는 그 맑은 향을 참 좋아 했습니다. 소엽풍란의 앙증맞은 꽃도 향이 그것도 달콤한 향이 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가 소엽풍란 꽃을 자랑하고 있을 때 저는 사무실의 또 다른 난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지난 초여름 한바탕 소나기처럼 여러 꽃대를 올렸던 살마금이 다시 여린 꽃대를 하나 올렸습니다. 그리고 꽃대 하나가 또 올라오고 있으니 그의 소옆풍란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여름에 올라온 두 번째의 꽃대를 반가워만 할 일은 아닙니다. 두 달 만에 또 꽃을 피운다는 뜻은 뭔가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에 냉방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난이 계절을 잊었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지난해와 올해 두 번에 걸쳐 새 촉이 많이 올라와 자리를 잡으면서 난이 너무 비좁아져 화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름은 난에게 그리 반가운 계절은 아닙니다. 산 속에서 자라고 있다면 한 여름 우거진 수풀 속에서 강한 햇볕을 피하고 적당한 습기를 즐기며 더운 여름을 참아내겠지만 화분 속은 사정이 다릅니다. 조금만 관심에서 멀어지면 너무 건조해져서 봄에 올라와 자라던 어린 새싹들이 성장을 멈춥니다. 관심이 지나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화분 속 습도가 높아져 뿌리가 썩을 수도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키우는 난은 평상시처럼 3∼4일 간격으로 물을 주고 있습니다. 아파트 실내에서 난을 키우더라도 이정도 간격이면 크게 실패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만일 아파트 베란다에 내 놓고 키운다면 이틀에 한 번 쯤 흠뻑 뿌려주어도 과습으로 인한 문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난이 물을 싫어하는 식물이라고 생각해 3∼4일에 한 번 스프레이로 살짝 뿌려만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화분 속은 마치 사막같이 보송보송해집니다. 난이 뿌리에 저장해둔 물까지 다 쓰고 나면 슬며시 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집니다.

난에 물을 줄 때에는 반드시 화분 위에서 충분히 흠뻑 뿌려주어야 합니다. 큰 물통에 화분을 담가 물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 화분을 번갈아 가며 그렇게 담그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병충해가 옮겨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화분 위에서 물을 뿌려준 다음에는 반드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새 촉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 잎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속에 물이 들어가 고여 있으면 곧 썩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고여 있다면 화장지처럼 물 흡수성이 좋은 종이를 가늘게 말아서 조심스럽게 찍어내면 됩니다.

난 기르기가 이래저래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디 난뿐일까요.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요.

오근식 <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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