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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이냐 불구속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구속이냐 불구속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의사신문
  • 승인 2018.12.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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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21〉
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마왕 신해철을 기억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음악적 성취나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하였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길은 평탄치 않았다. 그의 사망 원인이 되었던 수술을 놓고 격한 법적 공방 끝에 법원은 그를 수술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였고, 그의 사망은 이른바 신해철법이라는 입법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해철 사건과 관련한 법원의 판단 중에서 여론의 상당한 비판을 받은 것이 있다. 신해철을 수술한 의사에 대하여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해서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한 것이다.

심지어 그 후 같은 의사가 다른 사람에게 같은 수술을 하다 또 사망에 이르게 하였음에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또 기각시키자, 여론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이렇게 국민들의 법관념상 법원에 의한 최종적인 형의 선고보다 그 이전의 구속 여부가 더 민감하게 여겨지며, 재판실무상으로도 형사사건은 `사건'과 `구속사건'으로 구분될 만큼, 피고인(또는 피의자)의 구속 여부는 중요한 사항이다.

국민들은 잘못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은 사건 초기부터 법원이 당연히 구속시킬 것으로 생각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국민들의 생각에 반하는 결정을 자주 내리곤 한다. 이러한 결정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번 회에서는 구속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하여 살펴보겠다.

먼저 얼마나 많이 구속되는가? 2015년 기준으로 구속사건은 전체 형사재판 중 12.8%이고, 지난 10년간 등락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전체 형사재판의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즉 피고인 8명 중 1명만 구속재판을 받는다.

어떤 절차로 구속되는가? 원칙적으로 검사가 청구하여 법원의 영장전담판사가 발부하거나, (검사의 청구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발부하는 구속영장이 있어야만 구속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현행범인 경우나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일단 잡아놓고(이것이 바로 `긴급체포'이다)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어떤 사유로 구속되는가? 구속영장이 발부되려면 반드시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가 있어야 하므로, 구속사유가 있느냐 없느냐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구속사유는 먼저 판사가 보더라도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을 기본 전제로, 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②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거나 ③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이렇게 셋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여야 한다.

위에서 본 `구속사유' 이외에 아래와 같은 `고려요소'가 있는데, 아래의 고려요소에는 사건의 최종적 판결을 위하여 필요한 실무적 선행판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구속사유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된다.

법원은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① 범죄의 중대성 ② 재범의 위험성 ③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을 반드시 고려하는데, 첫째 `범죄가 중대'하여 최종적으로 실형의 선고가 예상되는 경우 구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판사가 `어차피 실형 살 사건인데, 미리 구속시켜 놔도 무방하겠네.'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나는 도주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사회적 지위상 실제로 그럴 것 같지만 그럼에도 구속되는 경우는 많은 경우 이에 해당한다. 화이트컬러 범죄 중 중한 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둘째 객관적 물증이 있어 범죄 성립이 분명하여 보임에도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거나, 피고인이 범행은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우 구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범행을 부인하거나 말로만 인정하는 경우로서, 이러한 경우 `재범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정신 못 차린'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 성폭력 범죄나 사기 범죄 등의 경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피고인은 구속되어 구치소에 입감되면 자신이 누리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단 하루면(!) 깨닫게 된다. 게다가 직장에서 잘리는 것은 덤이다. 따라서 구속되면 태도를 바꾸어 범죄를 인정하거나 피해자와의 합의 시도에 성실하게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이어서, 이미 `몸으로 때우겠다'고 결심한 사기범들에게는 이러한 법원의 의도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

셋째 피해자, 증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거나 공범을 도피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 거의 예외 없이 구속된다. 조직폭력 범죄나 인터넷불법도박 범죄, 보이스피싱 범죄 등이 그렇다.
구속의 효과(?)가 이렇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불구속으로 재판을 하는 것일까?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흉악범임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피고인의 얼굴을 가리고 그 성명을 익명으로 처리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최근에는 흉악범죄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죄 확정 이전에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추정 원칙은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원칙은 유죄 확정 이전에(또는 무죄로 밝혀지기 전에) 국가권력으로부터 회복불가능한 피해를 입어 만신창이가 되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민계급이 몇백 년간의 투쟁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보면, 인터넷 여론을 통한 인민재판과 사람 망가뜨리기를 매우 즐기는 우리 사회의 성향을 고려하면 더욱 중요한 원칙이다.

아직 모든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심받는 사람을 죄지은 사람과 같이 취급하여 그 인신을 구속하지 않는 것, 백 명에 한 명이라도 죄 없는 사람이 죄지은 사람으로 오해받아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그리고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자신이 지은 죄 이상으로 처벌받지 않게 하는 것은 인권 보장의 기본이다. 아무리 대중의 보복감정이 크더라도 말이다.

신해철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재판을 하기 전에는 의사의 잘못으로 신해철이 사망한 것인지 여부는 법원도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밝히기 위하여 재판을 하는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인 신해철의 집도의도, 구속사유가 명백하지 않은 한,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가 있다. 그리고 법원은 헌법에 충실하게 판단하였던 것뿐이다.

마왕은 떠났고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남겼다. 하지만 의사가 구속되어 재판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해진 `과한' 오해는 지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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