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욕심으로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 모두 망쳐
비뚤어진 욕심으로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 모두 망쳐
  • 의사신문
  • 승인 2018.12.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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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서울시의사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2〉 : 우수상 -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읽고 
김지선 성북 맘편한 내과의원

나는 일본 작가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동안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극찬을 하는 일본책들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읽다보면 왜 그런 극찬을 받아야 하는 책인지 그 의견에 동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추리소설도 몇 권 읽어봤지만 일본의 추리소설은 다른 나라의 작가들 책에 비해 사건 구성이 너무 밋밋하고 스릴이 느껴지거나 반전의 묘미가 있다거나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문장의 흡입력이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이라는 책은 몇 년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던 책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자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책을 선정해서 읽는데 이 책은 여러 블로그에서 추천한 책이었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나는 웬만하면 일본 소설은 읽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 책은 여러 번 내게 입질을 보냈지만 나는 거기에 수응하지 않았었다.

최근 마음이 너무 복잡했던 어느 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내기에는 서점 둘러보기가 최고였던 나는 유명한 추리소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던 대형서점의 한 곳에서 이 책을 또 만나게 되었고, 이렇게 여러 번 내 눈에 띄는 것도 인연이다 싶어 `그래, 한 번 더 속아보자' 싶은 마음에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별 기대를 안했던 탓인지 이 책은 꽤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이 책을 그 날 하루에 다 읽어버렸다. 심지어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검색하며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 넣고 있었다. 많은 작가들과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세대에 살면서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난다는 건 정말 가끔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고 행복인 것 같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유명제약회사의 딸인 도모미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차사고를 당해 죽게 되고, 그녀의 죽음에 연관될 수 있는 8명이 산장에 초대를 받아 같이 휴가를 보내게 된다. 그녀의 아빠, 엄마, 오빠. 그리고 사촌 여동생, 그녀의 애인, 친구, 사촌 여동생 아빠를 대신해서 오게 된 그 집의 주치의  그리고 아빠의 여비서.

이 책은 도모미의 애인이었던 다카유키의 관찰자 시점으로 글이 씌여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감정들이 다카유키를 통해 서술되고 있고 독자들은 다카유키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만 직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인 도모미가 사고로 죽었는데 사고의 원인이 평상시 먹던 진통제를 누가 모양이 비슷한 수면제로 바꾸어 넣어서 그걸 먹은 도모미가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8명 중 몇몇이 의심을 드러내고, 누가 과연 이런 짓을 했을까 서로를 의심하며 각자의 무죄를 주장하며 휴가를 보내던 중 은행강도 3명이 우연히 그 산장에 들어오게 되고, 그 와중에 도모미의 사촌 여동생인 유키에가 죽게 된다. 도모미의 죽음도 미스테리에 싸여있는 와중에 은행 강도들의 위협, 유케에의 살인자까지 찾아내야 하는 극도의 긴장사태가 조성된다.

2박 3일의 산장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들이 차츰 드러나게 된다. 다카유키는 도모미의 사촌 유키에를 좋아하게 되고, 도모미만 없어져준다면 유키에와 무리없이 결혼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헤어지자고 하면 도움을 받고 있었던 도모미가의 재력을 놓치게 되고, 사촌인 유키에와의 결혼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한 다카유키는 도모미가 자주 복용하던 진통제를 모양이 비슷한 수면제로 바꾸어 놓게 되고, 그 사실을 그 날 운전하기 전에 알게 된 도모미가 결국 비참함과 절망속에서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죽으면서도 다카유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수면제는 복용하지 않고 다카유키가 원한 죽음을 스스로 택하게 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산장에 모이게 된 이 모든 것이 모두 다카유키의 진실을 알기위해 벌인 연극이었고, 나머지 7명과 도중에 강도로 분장한 3명까지 모두 연극의 일원이었음이 밝혀진다.

글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다카유키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기 때문에 다카유키가 범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이런 식의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다카유키와 같이 한편이 되서 사건을 관찰하게 되고 , 무의식적으로 다카유키는 주인공이고 착한 사람일 것이고 범인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반전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 책 역시 독자들에게 이런식으로 멋지게 반전의 펀치를 주고 있다.

모처럼 흥미진진한 책을 발견해서 읽는 것은 좋았지만, 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고 보니 가슴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한 사람의 비뚤어진 욕심이 타인의 삶을 망치고 또 결국 자신의 삶마저 망쳐버린 사건. 하찮은 인간의 아둥바둥하는 모습이 안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고 이런 잔인스런 일을 초래하게 만든 다카유키가 사이코패스나 인격장애, 혹은 나쁜 사람이라 일컫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에 더 환멸이 느껴져서 일수도 있겠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냥 유키에가 좋아졌을 때, 다카유키가 도모미에게 이별을 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장은 상처가 됐겠지만 동정같은 감정은 사랑이 아니기에 시간이 흐르면 도모미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 때까지도 다카유키가 유키에와의 좋은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다면 그 때 결혼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도모미집안의 재력의 도움도 잃고 싶지 않고. 주변에 좋은 사람으로도 남고 싶고, 유키에처럼 예쁜 사람과의 인연도 놓치고 싶지 않고… 어느 것 하나 양보하거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 한 남자의 비틀린 욕심이 결국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한 여성과 그녀를 사랑한 친구, 친척,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2년전, 도모미와 다카유키가 차사고를 통해 만나게 됐고 이로 인해 도모미는 발목을 절단하게 됐고 발레리나가 되려던 꿈을 접게 됐으며 도모미가 마음을 열도록 호의를 보이며 다가왔던 다카유키가 과연 도모미가 재벌집 딸이 아니었으면 그랬을까 싶은 마음도 들고, 결혼준비까지 다 마친상태에서 도모미의 사촌 여동생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도모미가 자기 삶에 없어져 줬음 좋겠고 그녀의 부유한 집안배경은 계속 인연이 됐으면 좋겠고, 죽음이 아니고는 사촌 여동생과 이어질 수 없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들이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쉽게 여기면서 자기의 욕심은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잔인함이 이 가을,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한 요즘, 내 마음속을 더 서늘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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