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 강제 의무가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저해
무차별적 강제 의무가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저해
  • 의사신문
  • 승인 2018.12.0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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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Ⅲ : 의료인권 향상을 위해 정부·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
박형욱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한 언론인은 일본 삿포로의 대형병원 응급실 방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삿포로에서 두 번째로 큰 병원이기에 응급센터는 당연히 환자들로 북적댈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예상은 바로 빗나갔다. 센터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정적만 흘렀다.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의료진은 응급 환자가 하루에 3∼4명만 온다고 했다. 우리나라 큰 병원 응급센터에는 매일 150∼250명의 환자가 몰려와 시장바닥을 방불케 하는데, 그렇게 적은 환자만 찾는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정은 이랬다. 이곳은 철저히 중증 응급환자만 받는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거나, 심근경색증이 발생했거나, 뇌출혈로 쓰러진 경우 등 생명이 위급한 환자만 들어온다고 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의아했다. 해답은 119구급대에 의한 적절한 통제였다. 119신고가 들어오면, 구급대 통제센터에서 환자의 상황을 판단한다. 중증이라고 여겨지면 환자를 바로 이곳에 싣고 온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 중소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한다(김철중, 2010).”

이제 우리나라에서 중증 외상환자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탄식을 들어 보자. “전화기 너머 보험심사팀장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나는 거듭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의 삭감청구서가 거대한 화살이 되어 나를 정조준했다. 나는 자꾸 궁지로 내몰렸다 …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십 차례 제출해도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환자마다 쌓여가는 삭감 규모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도 이르렀다. 결국 교수별 진료실적에 기반을 둔 ABC 원가분석이 더해져 나는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 매출 총액대비 1∼2퍼센트의 수익규모만을 가지고 간신히 유지되는 사립대학 병원에서 나는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불러오는 조직원이었다(이국종, 2017)”

의사의 사명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하는 것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법은 환자의 생명 보호를 위해 의사에게 매우 엄중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으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제60조 제2항에 의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더 나아가 응급환자만 강제진료 의무를 부과하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환자에 대하여도 의사에게 강제진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법적 의무를 강제한다고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합당한 의료환경을 마련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강제되는 법적 의무는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 향상을 저해한다.

위 일본 응급실 사례는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떠한 의료환경을 조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첫째, 응급실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 중한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민 각자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 일본의 시민사회와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지켜준 것이다. 이런 의료환경이 존재해야 의사들은 중한 응급환자의 생명보호에 전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을 길러 나갈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응급의료종사자가 이렇게 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며 행정적 징계는 물론 민사적,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둘째, 합당한 재정지원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위 일본 응급실에는 외과, 응급의학과 등 20명의 전문의가 근무한다고 한다. 이런 전문 의료진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시민사회가 합당한 재정지원을 해 주고 있음을 암시한다. 반면 우리 사회는 이국종 교수의 예처럼 일 년 내내 열심히 진료한 결과가 연간 10억 원의 적자로 돌아오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하루 3∼4명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20명 규모의 전문 의료진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셋째, 경증환자를 되돌려 보낸 의사에게 강한 법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의사는 법적 책임이 무서워 응급실을 찾아 온 환자는 무조건 받아들여 진료할 것이며 응급실은 곧 마비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중한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전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와 시민 사회는 의사들이 프로페셔널리즘을 향상시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 주기를 바란다.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의사에게 법적 의무만을 부과하면서 합당한 의료환경을 구비하지 않는다면 이루기 힘든 목표다. 형사적으로 아무리 처벌을 강화하고, 민사적으로 아무리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한다 해서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이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을 향상해 나갈 수 있는 의료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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