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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의 안전 보장되지 않을 땐 환자 안전도 없어
의료인의 안전 보장되지 않을 땐 환자 안전도 없어
  • 의사신문
  • 승인 2018.12.0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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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사례 Ⅳ : 의료기관 내 의료인 폭행 문제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섭외이사(인제대 서울백병원 응급의학과장)

환자와 의사 관계는 신뢰 관계가 없다면 형성될 수 없을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사정과 신체 부위를 의사를 믿기에 숨김없이 드러내고, 의사는 환자를 믿기에 환자에게 자신의 모든 의학적 지식과 임상적 경험을 통하여 진료를 행하고 치유를 돕는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이러한 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이를 현대적으로 수정한 세계의학협회 제네바선언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현실은 환자와 의사의 불신, 그리고 더 나아가 환자가 의사에게 폭언, 폭행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1989년 창립된 대한응급의학회는 1990년 대한응급의학회지를 창간했다. 1992년 발간된 제3권 제2호에 `응급실 난동 환자에 대한 연구'가 의료기관내 의료인 폭언, 폭행 관련 첫 논문으로 발표됐다. 창간된 지 2년 만에 응급실 폭력에 관한 논문이 출간될 정도로 응급실 폭력은 1990년대 당시부터 문제였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대한응급의학회지에 2000년대 초중반 3편, 2015년 1편 총 4편의 관련 원저가 발표됐다. 대한의사협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폭행', `폭력' 등의 제목,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2005년 5월호에 `의료현장에서의 폭력 문제'가 처음으로 발표됐는데, 의사 사회의 교수나 상급 년차 전공의의 제자, 후배 의사에 대한 폭력에 관한 내용이었고, 이후 2014년 2월호에 이르러서야 `의료인에 대한 폭력의 대처 방안'이 발표되어 응급실 폭력 문제를 처음으로 다루었다. 이후 2018년 5월호에 역시 의사 사회 내부의 폭력 문제를 다룬 시론 1편과 필자가 2018년 8월호에 발표한 `응급실 폭력 문제 개선을 위한 제언'을 포함하여도 시론 4편이 전부이다. 이를 통해서 보면 의료기관내 의료인에 대한 폭언, 폭행은 응급실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고, 의사 사회 내부의 폭력이 매우 큰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언론 기사들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의료기관내 외래 진료실과 병동, 중환자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의 의료인에 대한 많은 폭언, 폭행 사건을 알고 있다. 오히려 응급실 폭력으로 살해당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나 전공의는 아직 없는데 비해, 흉기를 사용하여 의사에게 중상해를 입히고, 의사가 사망한 경우까지 이미 언론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왜 대한의사협회지조차 시론 외에 의료기관내 의료인 폭언, 폭행 문제에 대하여 원저나 사례 분석 한 편 발표된 바 없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먼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응급실을 포함한 의료기관내 폭언, 폭행 등 폭력 사례에 대한 국가적인 통계나 정례적인 조사 연구도 없다. 관계 정부 당국은 물론이요 대한의사협회나 지역 의사회, 관련 전문학회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하여 보건의료인이 환자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환자안전에 위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고에 대하여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을 통한 자율보고가 `환자안전법'에 의하여 2016년도부터 시행되고 있다. 직원 안전 없는 환자 안전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직원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환자의 안전 역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보건의료제공자인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의 폭언, 폭행에 아무 안전 장치 없이 노출되어 있는데도, 이에 대한 기본적인 자율보고시스템조차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어떤 폭언과 폭행이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와 조사 연구가 행해져야만 이에 대한 실제적인 개선책도 준비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생각이나 단편적인 경험만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률과 제도적 개선은 현재 대한의사협회와 지역 의사회들이 앞장서서 열심히 진행하고 있기에 여기에서 더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 의료계의 일부 선생님들의 태도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기를 원한다. 관련 법률과 제도의 개선을 위해 애쓰시는 대한의사협회와 지역 의사회의 노력에 최소한의 관심과 회비 납부와 같은 기본적인 의무조차 다하지 않으면서 남탓만을 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억울하고 당황스러운 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흔히 의사들은 자기 환자에만 관심이 있고, 자기 연구에만 관심이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 환자 진료를 통한 연구에 진력하며, 동료 의사들을 전문가로서 상호 존중하다보니 그런 오해도 생겼다고 본다. 다만, 이로 인해 응급실 폭력을 포함한 의료기관내 의료인에 대한 폭력과 같은 의료계의 중대한 문제에 이제까지 상대적으로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중차대한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우리 의사들은 이제 의료계의 중요한 당면 현안이 된 폭력 없는 안전한 진료 환경 만들기를 위하여 대한의사협회와 지역 의사회, 관련 전문 학회가 중심이 되어 의사 회원들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 건강한 환자와 의사 관계를 올바르게 굳건히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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