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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려 애쓰면 민·형사 재판에 면허취소 까지
생명 살리려 애쓰면 민·형사 재판에 면허취소 까지
  • 의사신문
  • 승인 2018.12.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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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사례 Ⅱ : 의사면허 취소 수위 강화
윤은희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순천향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최근 KBS `추적 60분' 프로그램은 `범죄자가 당신을 진료하고 있다. 불멸의 의사면허'라는 제목으로 성폭행이나 폭행 등 강력 범죄로는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노골적인 범죄 재연 화면과 함께 방송하였다. 의사면허는 일단 취소되어도 쉽게 재발급이 이뤄지므로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취소가 더 용이해져야 한다는 제작진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의사집단의 일원으로서 방송을 보면서 수치심,모욕감과 동시에 억울함이 치밀었던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의사협회는 대변인을 통하여, 성범죄의 경우, 현재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 최장 10년간의 취업제한을 받고 있고, 취업제한 선고를 받는 경우 의사가 의료인으로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사실상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것과 같은 제한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17년 환자 시체유기 사건'은 현재 항소심에서 업무상과실치사,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 징역 4년이 선고된 상황'이므로 `의료법 제8조 제4호의 면허취소'에 해당하는데, 본 방송은 사실을 교묘히 왜곡하였다고 반박하였다.

최근 의사면허취소를 용이하도록 하는 취지의 의료법 개정안들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줄줄이 발의되었다. 즉, 범죄행위로 인한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보건의료 관련 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로 인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로 강화하는 취지이다. 이러한 개정이 통과되면, 소생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생명을 살리려고 애쓰다가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 해당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 기소된다. 아울러 공판에 회부되어 금고이상의 실형을 받게 되면, 그 의사면허는 취소될 것이다.

진료거부권이 없는 의사에게, 장차 악결과가 예상되는 환자를 앞에 둔 경우, `의사인 당신은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시오! 그렇지만 상해나 사망에 이르는 악결과가 나온다면 민·형사책임뿐만 아니라 의사면허 취소라는 위험도 당연히 감수하시오!'라는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는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일뿐 아니라 의료시스템의 근간을 흔들수도 있는 법개정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의대를 갓 졸업하여 인턴,레지던트의 수련과정을 거치는 초년생의사의 경우도 예외는 없다.

의사면허를 가진 이상 `환자를 치료하면 반드시 좋아지는 신의 손'을 가질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의사면허를 취득한 당신이 신의 손이 아니라면, 당신의 의사면허는 결국은 취소될 것이다'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가 아닐 것이다.
최근의 의사 3인 구속사태에 대하여, 공분한 의사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사자인 의사들에게는 너무도 절박한 문제이다.

대한의사협회 KMA policy도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의 직업윤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통한 자율 징계 기능을 강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의료인의 면허 또는 자격의 행사를 제한하는 법률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감시 및 분석을 통해 합리적으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일부 사례로 인하여 전체 의료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의료법 등을 개정하여 의료인의 가중처벌과 면허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경계한다”고 했다.

즉, 의료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적대감을 유발하는 방식보다는 자발적 참여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율규제의 틀을 제공하고, 의사는 의학전문성을 발휘해 이를 투명하게 운영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의료전문가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의사들과 대한의사협회는 스스로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왔으며, 자율규제를 위한 의료전문가로서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 걸맞는 재정적 및 제도적 개선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해당사자인 의사단체의 의견청취없이 일방적으로 법률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선량한 의료인에게는 직업수행의 자유 등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것이다.

국가재정투여가 없는 민간의료가 중심인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서, 의사가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까지도 져야함에도, 의사면허까지 취소하는 것은 생존권을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의료'라는 국가와 사회전체의 `공적 책임과 그에 따른 위험'을 민간인 의사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려 역시 필요하다.

`다수'인 환자의 권리와 공익이 우선한다는 원칙에 의해 `소수'인 의사의 권리는 주장하면 안되는 것인가? 이를 지나치게 침해하여 생존권에 해당하는 의사면허마저 취소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갑'이 아니며 `을'에 해당할 뿐이고,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일개 직업인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은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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