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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70%도 못 미치는 전국민 의료보험에서 비롯
원가 70%도 못 미치는 전국민 의료보험에서 비롯
  • 의사신문
  • 승인 2018.12.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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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의사의 위상
한광수 전 서울시의사회 회장

나는 1916년에 의사가 되신 선친에게서, 100여 년 된 우리나라 의료계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죠센진(朝鮮人)'은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나 판검사가 되는 길만이, `니혼진(日本人)'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었다. 서울시의사회의 모체인 한성의사회(漢城醫師會)는,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 의사들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조직적 침탈에 대해 1915년에 결성된 단체다.

불과 103년이 지났을 뿐인데, 의사들은 건강지킴이로 존중하기는 커녕, `살인 면허' 받은 파렴치한으로, 걸핏하면 진료 현장에서 폭행을 당하는 처지까지 이르렀다. 병원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환자의 권리'는 크게 게시돼야 되지만, `의사의 권리' 대신, 헌신적 봉사를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만 남았다.

나는 정부와 사회가 의권을 존중하지 않게 된 이유를 현대의학의 도입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선교사들에 의해, `마술' 같은 현대의학이, `동의보감'만을 신주처럼 모시던 국민들에게 소개되었고, 상류계급과 왕실의 비호 속에 상당한 보상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선교활동과 진료와 시술을 당당히 시행할 수 있는 병원과 교육기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았던 일반 서민들은 초기에는 수가 지불 없이 진료 받고, 당연히 종교에 입문했다. 점차 고가의 수가를 지불하게 된 국민들은, `의사는 도둑놈, 돈 없으면 죽어야지'하는 속담처럼, 입원이나 수술 보증금 없이는 응급수술도 못 받았다.

진료 기구라고는 청진기 하나가 전부였고, 왕진가방 하나면 무슨 환자건 진료하던 때가 반세기 전 일이지만, 이제는 천문학적 장비와 시설, 의약품과 수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엄청난 진료 원가는 도외시된 채, 아직도 `醫術은 仁術' 이라며, 무료에 가까운 시혜에 의존하려는 사회의 시각은 당연한 마찰을 야기했다.

광복 후 제5공화국까지의 반세기 동안, 의료정책 책임자인 장관은 반드시 의사였다. 보건부가 건강보험, 국민연금, 사회복지까지 맡게 된 지금에는, 장차관은 커녕, 관련 공무원 진용에도 의사는 거의 없으니, 의료계와의 소통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보건의료정책은 선진국들에게서 벤치마킹하면 무리가 없으련만, 가장 사회주의적 국가들로부터, 그 마저도 제일 의사에게 불리한 정책만을 뽑아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려는 듯한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본인이 부담하는 저렴한 비용은 고려하지 않고, 최상의 진료를 받고자하는 국민들의 여망을 충족시키려면 각자의 부담을 늘리고, 정부의 보조를 증액해야 하는 게 답이다. 의사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소중한 건강 파수꾼들을 경시하는 당국의 진정성이 없기에, 근로기준법보다도 혹사하는 의사들의 인고가 한계에 다다랐다.

원죄는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가적 사업을, 원가의 70%에 못 미치는 의료수가로 시작한데 있다. 의료계 총파업의 격변을 통해 얻었던 결과를 반추해보고, 합리적 정책 변화 촉구 노력과 더불어 자정 노력과 함께, 우리 실정에 맞는 의료정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정부와 국민의 인정을 되찾고, 더 이상 추락할 데가 없는 의사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그럴듯한 표어로, 원스톱으로 그럴듯한 의료행위가 가능했지만, 권한의 분할은 필연적으로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 각 직역들과 갈등을 빚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직역 간에도 의료기관의 규모와 종류에 따라 이해가 갈렸다.

정부가 즐겨 시행하는 Devide-and-Rule의 결과로,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더라도, 모든 직역이 오로지 환자에게 가장 좋은 제도와 수단을 마련하는데 합심해야 할 때다. 전체 `파이'를 정해놓고, 직역들에게 합리적 분할을 위임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도 있으니 심사숙고해 볼만 하다.

일 세기 전만 해도 `神醫'의 대접을 받았었건만, `어떤 의사가 일부러 자기 환자를 죽게 하겠어?' 의료분쟁이나 고소하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여기고, `쌀 열 가마 값'이 위자료의 상한선이었다던, 선친의 회고가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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