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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찾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찾는다
  • 의사신문
  • 승인 2018.11.26 09: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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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의사의 영화 이야기 〈5〉

이 형 중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걸쳤던 2살 아래 여자와 첫 만남 이후,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다시 만날 때까지의 기다림을 견디기 힘들던 남자는 이를 운명이라 생각하고는 근 30년간의 독신생활을 접기로 했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작용으로 꿈결 같았던 짧은 신혼이 지난 후 태어난 아기는 앞으로 사랑이 감내해야 할 대가(후유증)가 녹록치 않음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발령 초기의 박봉과 병원에 빼앗긴 시간들, 고된 육아와 교육, 숱한 이사를 통한 거듭된 짐싸기 신공은 생활의 안정이란 미명 하에 사랑을 더 이상 활활 타는 장작불이 아닌 부부간의 인간적인 신뢰를 토대로 한 근친상간적인 오누이 관계로 탈바꿈시켰다. 데면데면해진 몸의 어루만짐으로 인한 열정의 사그라짐은 수험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선 피할 수 없는 변곡점이 되고 말았다. 중년의 그에게 열렬한 사랑은 이제는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게 된 것일까?

연애감정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선천적으로 각인된 후손번식에 대한 무의식적인 암컷, 수컷에 대한 끌림은 sexuality(성적관심), emotion(감정), reason(이성)의 세 단계를 거쳐 비로소 사랑과 결혼을 통한 연애의 완성이라는 외피를 걸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감정이 언제까지 어떤 식으로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영화는 대부분 결혼까지를 다룰 뿐 그 이후는 `잘먹고 잘살았다.'로 끝맺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 5년차 부부가 있다. 남자(루)는 한결같이 듬직하고 유머감각도 있다. 여자(마고)는 그런 남자에게 만족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던 차에 남편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한 남자(다니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도 사랑일까, 2011〉는 사랑이 설레임에서 익숙함으로 변하는 시점의 병적인 무료함을 메우는 여자의 일탈을 죄의식없이 그려낸다. 마고는 길모퉁이를 돌자마자 비치는 햇살에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고 우산도 없이 나온 외출 길에 맞닥뜨린 소나기에 함박웃음을 짓는 매우 감성적인 여자이다. 애정을 갈구하며 루에게 백허그를 하고 입도 맞춰보지만 그 순간의 공허함과 말이 없어지는 생경함을 더 견디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새로운 남자 다니엘은 마고에게 다른 접근방법을 택한다. 그간 잊었던, 서로의 몸과 몸을 언뜻 스치는 아련한 느낌과 말도 되지 않는 농담과 게임을 이어가며, 의미는 없지만 시시각각 감정에 충실한 정신적 배설에 열중하게 만드는 호기심과 두근거림을 받아들이는 마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결혼기념일 외식을 하지만 직업이 요리사인 루는 아무 말도 없이 식사를 음미하며 음식 지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마고는 이런 루를 책망하고 뭐라도 말해보라고 하지만 루는 손을 잡고 몇 초간 눈을 맞추고는 `사랑한다'는 영혼없는 속삭임으로 끝맺는다. 결국 마고의 마음이 다니엘에게 향한 것을 알아 챈 루가 아무 조건 없이 마고를 보내주자, 그녀는 다니엘의 집을 찾아가 다시 한번 설레이는 사랑을 찾고자 한다. 영화 맨 처음 장면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가 주저앉아 카메라를 응시하던 마고의 옆에 실루엣으로 처리된 남자는 남편이 아닌, 짧은 호기심과 설레임을 충족한 후 다시 공허해진 새로운 남자의 그것이었다. 영화 제목에서 `우리'란 5년 결혼생활을 함께 한 남편이 아닌 몇 개월간 불같은 사랑을 함께 한 새로운 남자를 의미한다. 이렇듯 짧디 짧은 유효기간을 지닌 설레임으로서의 사랑이란 감정은 실로 불가해하고 항상 어디로든지 튈 준비를 하고 있는 얽힌 실타래와도 같다.

국어대사전에는 `사랑'을 `1) 어떤 사람이나 사물,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녀 혹은 동성간(2014년 새롭게 추가)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정의하고 있다. 시인 문정희는 사랑을 `청춘의 열정이지만 한편 결혼 생활의 지혜'라고도 했다. 아울러 남편이란 존재를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라고 규정지었다.

사랑과 그 대상에 대한 유효기간을 깊이있게 다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는 76년의 결혼생활을 영위한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이들은 항상 서로를 어루만지며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이다. 사계절 내내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주고,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눈싸움을 하는 매일 매일이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 둘만의 세상을 함께 했던 친구였던 강아지 `꼬마'를 묻고 오던 날부터 할아버지의 생명력은 불길한 기침소리와 함께 눈에 띄게 쇠약해져 할머니는 곧 찾아 올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게 되고, 홀로 된 할머니는 그리움에 목놓아 울게 된다. 결국 사랑은 둘 만이 공유하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가치임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프로이트는 자기보존적 본능과 성적본능을 합한 삶의 본능을 eros(쾌락원칙)라 했고 공격적인 본능으로 구성되는 죽음의 본능을 thanatos(죽음충동)라 하였다. 〈감각의 제국, 1976〉은 열정과 죽음이라는 사랑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표현한 영화이다. 사랑했기에 헤어지는 게 아닌, 사랑했기에 그의 본질인 심볼만 취하며 껍데기는 내던져 버린 불륜의 사랑,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의 비극적 종착역이다.

사랑은 때때로 종말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게 될지 묻기도 한다. 〈아무르, 2012, 사진〉는 충격적인 영화이다. 단란하게 살던 80대 음악가 노인은 어느 날 연이어 찾아온 부인의 뇌졸중과 이로 인한 반신마비, 인지저하, 그리고 종국엔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닌 울부짖기만 하는 몸뚱아리와 마주치게 된다. 그가 생각하던 그녀는 우아하고 사려깊고 분별있으며 총명한 눈이 빛나던 단아한 그녀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소통도 되지 않는 짐승이 되어버렸다. 사랑의 궁극적 행위는 상대방을 품위있게 대해주는 것이라 생각한 그는 그녀를 베개로 질식시킨 후 정성껏 단장한 꽃들로 주검을 장식한다.

사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amour(아무르)는 부정과 극복을 뜻하는 접두사 a-와 죽음을 뜻하는 어근 morte이 합쳐서 만들어졌다. 사랑은 죽음에 대항하여 이를 넘어서는 숭고한 감정으로서 영화 속에서 초로의 남편이 보여준 이별의 준비와 그 실행은 고대로마의 전쟁을 앞둔 장군의 일성을 뛰어넘은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의 또 다른 해석이기도 하다. 즉, 영생(永生)은 꿈이 아니고, 죽음도 필연이 아닐 수 있으며, 만일 우리가 순간을 놓치며 산다면 그것은 영원을 놓치는 것 일수도 있다. 사랑(행복)을 고통 없는 세상을 사는 낭만적 개념이 아닌 스스로 상처를 돌보고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만족의 과정(상태)으로 볼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무심코 들었던 존 레논의 노래 `Love'의 몇 구절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is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knowing (what) we can be. Love is living, living is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사랑은 어루만짐. 사랑은 다가가는 것.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사랑.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사랑. 사랑은 살아있는 것. 부족해서 사랑 받으려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래도 사랑이 시효를 지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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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희 2018-11-26 23:15:59
제 블로그에 옮겨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