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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여정의 종착지 드디어 마터호른 정상에 서다
8년 여정의 종착지 드디어 마터호른 정상에 서다
  • 의사신문
  • 승인 2018.11.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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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호른(Matterhorn) 등정기 〈하〉

서 윤 석
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7전 8기의 이 감동의 순간을 맞게 해주신 마터호른 산신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이곳에서 정상릿지를 따라 스위스 훼른리릿지로 넘어가면 그 곳 정상에는,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넘나들던 많은 상인들과 등반객들을 구조한 성 버나드(Saint Bernardo)상(像)을 만날 수 있다.

날씨는 점점 나빠져 천둥번개를 동반한 눈보라가 얼굴을 때린다. 시간은 오후 3시, 정상에서 약 10분을 머문 후 우리는 급히 하산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마터호른 산신은 쉽게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다. 오버행 구간을 하강한 뒤 우리는 긴 설능 구간을 한발 한발 내려오는데 눈발이 거세지고 바람은 더 휘몰아친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 헤드램프를 착용하였지만 눈보라 속에 길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 하강 길을 찾았지만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계곡 속에 꼭 숨겨진 철제링의 하산 길은 두 번씩이나 우리를 혼란에 빠뜨려 시간을 지체하게 만든다. 20여 미터 자일하강을 하고 북쪽 능선에서 내려가니 바람이 잦고 눈도 멎었다. 이후 긴 트래버스 구간도 남았지만 눈이 와 상당히 미끄럽고 시간이 너무 늦어 하강지점에서 비박(Biwak)을 하기로 결정한다.

비탈진 바위 위에서 텐트는 물론 옷까지 부실한 상황에서 비닐 한 장 뒤집어쓰고, 진정 노숙자 신세가 되어 밤을 지세우기에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낮에 영상 15도까지 오르던 기운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데다 바람까지 살살 부는 4000여 미터의 고도에서 하룻밤은 평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18년 8월2일
추위에 떨며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눈을 뜨니 저 아래 절벽 밑에서 불빛이 여러 개 보인다. 시간은 새벽 4시30분. 정상에 오르려는 팀들이 하나 둘씩 오른다.

우리도 얼은 몸을 추스려 하산을 시작한다. 손과 발의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아 걱정이다. 한벽 한벽 넘어서고, 트래버스하며 조심스레 내려선다. 다들 몸이 굳고 뻣뻣해 속력은 나지 않지만 진행은 계속된다. 오늘 날씨는 맑음으로 예보되 있어, 카렐산장에 다가가자 많은 등정객들이 오르고 있다.

산장에 도착해 간단한 요기를 하고는 2시간여의 수면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눕자마자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시간이 오후 2시, 다시 오리온 산장으로 내려서야 한다. 우리를 태워다 준 지프가 기다려 준다면 모를까, 산장에서 시간 반은 또 내려서야 한다. 직벽을 자일 하강하고 바위를 넘고 넘어 쉬지 않고 내려가지만 속도는 나지 않는다.

마지막 설산을 트래버스하고 너른 설원을 끝없이 걸어야 한다. 팀원과의 속도 차이로 뒤쳐져, 저 멀리보이는 산장을 향해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살아서 내려가고 있다. 지치기는 했지만 사지는 멀쩡하다. 손발의 저림(numbness)만 빼고는. 같이 등반하지 않은 성항경씨 한테서 지프를 대기시킨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올해로 8년간 나는 매년 알프스에 왔다. 연례 행사를 하듯, 당연한 과정처럼 이곳에 왔다.6번은 체르마트로, 2번은 브로일을 통해서였다. 6번은 악천후로 등정을 포기하고 1번은 예비등정하다 허리를 다쳐 3일 만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전생(前生)에 인연이 없는 것인지 올해도 쉽사리 등정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등정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하산을 시키려니 무언가 아쉬운지 또 악천후를 내려 추운 고도에서 하룻밤을 묵게 발목을 잡는다.
알프스 여신께서 나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으시려는 건지 쉽게 놓아 주시지를 않는다. 덕분에 주위의 4000m급 봉우리를 5개나 등정하였으니 대단히 섭섭하지는 않다.

단번에 올랐으면 다음에는 발길을 끊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생명의 위험을 느낀 적도 2번이나 있었다.2014년 허긍열 대장과 마터호른 등정을 계획하고 예비 산행으로 브라이트호른(Breithorn 4164m)을 올랐다.

그리고 하산하여 이태리 쪽 산장인 로씨보란테(Rossi-Volante 3700m) 무인산장에 들려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약 60cm 정도의 눈이 쌓이고 날씨는 소위 말하는 화이트아우트(White-Out)으로 앞으로 전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길이 뭍혀 버리고,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허 대장과 나 뿐이었다. 좌우상하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안자일렌을 하고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한발 한발 전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구릉에 여러 번 빠져가며 오직 살겠다는 신념하에 시계에 장착된 나침반만을 의지한 채 걷고 또 걸었다. 장갑이 얇아 손끝이 떨어져 나갈 지경 이지만 움직이지 않고는 살길이 막막하여 이를 악물었다.

2시간 거리의 눈길을 10시간 만에 걸어 크라인마터호른 케이블역에 도착하였다. 그래도 크레바스에 빠지지 않은 것을 다행히 여기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오 하나님 ! 하루를 푹 쉬고 난후 마터호른을 등정키 위해, 눈을 헤쳐 가며 훼른리릿지로 올라 솔베이무인산장(SolvayHut 4003m)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또 눈이 30cm나 내려 눈물을 머금고 하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것이 끝이 아닌 것이 2017년의 이탈리아 폭설이다.

그 날도 날씨가 좋고 오후에 흐리다 라고만 예보되어 있었는데 카렐산장 도착 30분 전부터 폭설과 강풍으로 산장에서 이틀간 같혀 있다가 출국시간에 쫓겨 탈출한 사건이다.

이때는 KMG 전용학 대장이 찬 순토 시계의 GPS기능으로 눈 덮인 바위 길을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이제 8년간의 힘든 여정을 끝내고 생각해보면 `아! 그래도 해 냈구나!' 하는 뿌듯함에 힘들었던 순간순간의 기억들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마터호른을 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해 8년간을 버텼다기 보다는 그 과정을 즐겼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기쁨이고 행복임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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