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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사 12월호 낭만닥터 인터뷰(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교수)
서울의사 12월호 낭만닥터 인터뷰(장항석 강남세브란스병원 갑상선내분비외과 교수)
  • 의사신문
  • 승인 2018.11.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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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간 내면의 보편성을 건드리는 글을 쓰고 싶어요”

늘 긴장을 안고 수술대 앞에 서는 외과 의사가 있다. 정신력으로 버텨낸 수술 후에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진료와 수술, 국내외 학술 활동과 봉사까지… 24시간을 쪼개가며 의사 본연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이는 갑상선암 분야의 명의, 장항석 교수의 이야기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을 위해 의사의 소신과 소명을 지키는 그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때는 바로 글을 쓸 때다. 얼마 전 소설가로도 등단한 장 교수의 삶을 잠시 들여다봤다.

2006년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세 권의 책 집필과 소설가 등단으로

장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즐겼다. 운동이나 음악에는 소질이 없던 터라 할 수 있는 건 독서뿐이었다고 그는 웃으며 회상한다. 자녀들에게도 매일 책을 읽는 아빠의 모습은 익숙하다. 의사가 된 후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장 교수는 틈틈이 세 권의 책집필과 소설가 등단, 또 다른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어려서부터 내내 책을 붙들고 성장했던 그이기에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실 중학교 때 시를 써서 상으로 옥편을 받은 것 외에 어린 시절 글쓰기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어요. (웃음) 오히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배웠던지라, 한때 미대 진학을 꿈꿨죠.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건 2006년부터입니다. 얼떨결에 시작한 글쓰기지만 그 배경은 분명 독서인 것 같아요.”

2006년 미국 연수 시절 장 교수는, 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 다시 의대에 진학한 동생 장호진 교수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외과 의사인 형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동생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 우연한 시작은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 

“처음 나온 책은 '진료실 밖으로 나온 의사의 잔소리'였고, 그 연장선으로 나온 두 번째 책은 '냉장고도 모르는 식품의 진실'입니다. 두 책은 잘못된 의학 상식을 바로 잡는 일종의 의학서적이죠. 최근에 나온 책은 '판데믹 히스토리'인데, 제가 워낙 역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3년간 자료 조사한 내용을 나름 재미있게 조합하려고 애썼죠. 그리고 올해 '외과 의사의 길(가제)'이 출판 예정입니다.” 

특히 '판데믹 히스토리'와 '외과의사의 길(가제)'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하는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됐다. 장 교수는 두 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평소 교양, 역사, 인문학책을 주로 읽을 만큼 좋아해요. 어느 날 모 대학에서 '판데믹 히스토리'의 내용을 3시간 동안 압축해서 강의하게 됐어요. 당시 강의를 들으신 그 대학의 총장님과 학장님이 ‘우리 문과 같으면 1학기 강의 분량’이라더군요. 한정된 시간 안에 다 쏟아 부어야 하는 의대 스타일 강의를 한 거죠. (웃음) 그리고 책으로 써보라고 권유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준비를 시작했죠. '외과 의사의 길(가제)'은 2006년에 동생에게 썼던 글과 갑상선 환자 커뮤니티 카페 ‘거북이 가족’에 썼던 글을 발췌한 내용이에요. 외과 의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죠.” 

출판 전 두 책에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역사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닌 의사의 글은 자칫 아마추어로 느껴질 수 있고, 굳이 더 하지 않아도 이미 의사들의 에세이는 많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장 교수의 글은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으로서 그 가치를 증명했다. 10년 이상 글을 써오며 장 교수는 이야기의 폭을 넓혀갔다. 최근에는 월간 시사문단에 낸 단편소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신인상을 수상, 소설가로 등단했다. 

“과거에 쓴 글은 논문처럼 딱딱한데, 10년 이상 글을 쓰다 보니 꽤 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웃음) 그래서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도 도전했어요. 글을 내고 나서의 떨림, 긴장은 수술과는 또 다르더군요. 막상 ‘됐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는 ‘실화인가?’ 싶었어요. 취미생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작가가 됐으니 일말의 책임을 느낍니다.” 

장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다. 회진이 끝난 후 뭘 하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아침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도 내게 보내는 메시지 기능을 이용해 쌓아두고 있다. 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그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까. 자못 기대된다.

문제점 보이는 의료 봉사, 언젠가는 바로 잡는 글 쓰고 싶다

장 교수는 구상 중인 책 몇 권이 있다. 인간의 본성과 신체의 반응에 대한 글, 외과 의사의 역사, 신화 속 의학 이야기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의료 봉사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의료 봉사를 실천해왔다.

2014년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의료봉사상인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故 장기려 박사님의 일곱 번째 제자이십니다. ‘의사는 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죠. 또 제 스승님들께서는 ‘지금껏 알게 모르게 받아온 의사로서의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정기적으로 봉사를 하진 못해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혹은 개인 휴가를 이용합니다. 시간을 겨우 내서 하는 봉사지만 다녀오면 마음이 너무 좋아져요.”

장 교수는 국내 의료 봉사 수준이 아직 농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봉사 지역으로 선정된 나라를 무지하다고 여기며 시작하니, 문제가 더 꼬인다고도 덧붙인다. 그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봉사’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케냐 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수술 기구도, 통역도 열악했죠. 환자들의 증세를 제대로 전달받기도 어려웠습니다. 너무 지쳐서 5분 정도 휴식을 취하는데, 창밖 너머로 나무 그늘 밑에 환자들이 모여 앉아 약을 한데 모으고 있더군요. 빨간약, 노란약으로 나눠 갖더니 뿔뿔이 흩어졌어요. 그 약들은 분명 블랙마켓에서 거래됐겠죠? 무엇보다 의료 봉사의 일환으로 현지에서 환자를 수술할 때는 현지 의사를 참관시켜 보고 배우게 해야 해요. 열악한 환경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봉사를 널리 하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봉사 개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장 교수는 전한다. 실제로 그는 아무런 수술 장비 없이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환경에 맞춘 의술을 공유한다. 

“우리나라 시스템을 체험한 후, 현지 의사들이 오히려 고향을 떠나는 일이 있어요. 현지 의료가 위축되지 않게 그들을 가르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책에 담고 싶어요.” 

외과 의사의 필요조건 중 하나인 ‘사자의 심장’은 ‘용기’와 ‘끈기’다

평생 외과 의사로 살아온 장 교수에게는 하나의 소신이 있다.

‘의사는 의사의 본분이 0순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그 다음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소설가로 등단까지 했지만 늘 그에겐 치열한 공부와 진료, 수술이 최우선 순위다. 그의 단호함에 명의는 괜히 명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여태껏 어떤 수술도 어렵고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매일 겁나고 힘들지요. 하지만 수술 후 수술장갑을 벗을 때 희열을 느껴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외과 의사들은 대개 그렇지 않을까요? 음악 하는 분들이 열심히 연습한 후 공연을 마치면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외과 의사도 비슷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온 환자를 살려야 하는 수술을 여러 번 경험한 장 교수. 6시간, 27시간… 생과 사를 오가는 수술장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을 터. 위기가 닥칠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외과 의사의 필요조건 ‘사자의 심장’을 다시금 떠올린다. 

“사자의 심장은 위기를 만났을 때 굴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용기와 끈기를 뜻하는 것 같아요. 제가 포기하면 환자를 살릴 수 없어요. 가능성은 0이 되는 거죠.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텨내는 것, 그게 외과 의사가 갖춰야 할 사자의 심장 아닐까요?”

숱한 수술을 경험해온 갑상선암 분야 최고의 전문가지만 수술 직후에 몸 컨디션이 엉망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장 교수. 수술 내내 칼날처럼 곤두세우고 있던 자율신경이 수술 후 확 풀리며 그대로 쓰러지기 일쑤다.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고된 직업이지만 그는 ‘평생 이 직업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의사란 직업과 저는 애증의 관계랄까요? 종종 ‘글재주가 있으니 은퇴 후에는 작가로 살 거냐’라는 질문을 받아요. 그러면 저는 ‘조용한 오두막에서 글 쓰고 그림 그리며 살고 싶긴 한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라고 되묻죠.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의사예요. 아직 사회에서 받은 걸 다 되돌려 드리지도 못했고요. 결론은 저는 이 직업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뻔하고 상투적이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산다

앞으로도 장 교수는 의사의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그의 세계관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할 예정이다. 지금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의 미래가 그려진다.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고 소신을 지켜온 그이기에 의사로서, 작가로서의 활발한 행보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어요. 삶의 모토를 묻는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인 것 같아요. 너무 상투적이고 뻔하죠? 어쩌면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훈이나 좌우명에 대해 대답하기 어려웠나봐요. (웃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장 교수는 향후 꾸준히 글을 쓰게 된다면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글’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신선하고, 새로운 글보다는 인간 내면에 깊숙이 담겨 있는 보편성을 건드리는 글 말이다. 

“제가 감동했던 문학 작품들을 돌아봤을 때, 뒤통수를 맞은 듯 와닿았던 문장들이 있어요. 대부분 우리의 보편성을 지적하는 이야기였죠. 제게도 그런 문장을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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