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과 선한 의사
선한 사마리아인과 선한 의사
  • 의사신문
  • 승인 2018.11.1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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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9〉
전 성 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법무법인(유한) 한별

서구권의 병원 중에는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이라는 명칭이 많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은 예수가 설법하기 위하여 들었던 사례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어느 유대인 상인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반죽음 상태로 길에 버려졌다. 유대교 사제가 길을 가다가 사경을 헤매는 이 동족 상인을 보았는데, 사제가 보기에는 이 상인은 곧 죽을 것 같았고, 유대교에는 시체를 만지는 자는 부정해진다는 율법이 있었으므로, (물론 율법에 따라 다시 정화할 수 있지만) 자기의 몸을 부정하지 않게 지켜야 한다는 핑계로 이 상인을 못 본 채 지나갔다.

뒤이어 레위인이 길을 가다가 이 상인을 보았는데, 레위인 역시 종교의식을 담당하는 신분이었으므로 같은 핑계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침략자인 아시리아인과 유대인의 혼혈로 생긴 종족이어서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부정한 혈통이라고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 길을 가다가 이 상인을 보자, 불쌍히 여기고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부어 응급처치를 한 뒤 여관에 돈을 치르고 유대인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말하고 떠났다.

예수는 `사제, 레위인, 사마리아인 중 누가 상인의 이웃이냐?'라고 묻고는, `자비를 베푼 이 입니다'라는 대답을 듣자, `가서 너도 그리 하여라'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호의로 타인을 돕는 사람을 지칭하거나 비유하는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사람들의 인지가 발전하면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행위로 인하여 만에 하나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선의에 의한 악결과'에 대하여는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성문법 시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내용의 입법을 하게 되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의무가 도덕적 의무인지 법적 의무인지는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도, 사제나 레위인처럼 `나름의 사정'이 있어 그냥 지나치는 것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 형법도 원칙적으로는 이러한 전제에 서 있다. 그러나 의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의사에게는 형법 이외에도 `진료거부'를 처벌하는 의료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올해 5월의 `부천 봉침 사망 사건'을 잘 아실 것이다. 모 한의원에서 초등학교 여교사 A가 봉침을 맞았으나,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뇌사에 빠진 끝에 22일만에 숨진 사건이다.

A의 사망 한 달 후 유족들은 사고를 낸 한의사 B뿐만 아니라 한의사의 요청에 따라 즉시 응급처치를 시행한 같은 건물 같은 층의 가정의학과의원 원장 C 역시 피고로 삼아 9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유족들의 주장은 `B가 곧바로 C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C는 골든타임으로 볼 수 있는 4분 이내에 에피네프린을 투약하지 않았으므로, 법률로 의사에게 주어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족들의 주장에 대하여 대한의사협회는 `생명구조라는 선의의 목적으로 한 의료행위에 대하여 과실 여부를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 법은 대한의사협회의 입장과 같이 `선한 의사'를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보호하고 있는가?

응급의료에 관한 기본법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모든 국민은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반면 응급의료를 위하여 필요한 협조를 요청받으면 누구든지 적극 협조할 의무를 짐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위 법은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을 두고 있는데, 그 내용은 ①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② 비의료인이 응급처치를 제공하거나, 의료인이 비번일 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 범위에서 응급의료를 제공하였는데 ③ 이로 인한 재산상 손해, 상해 또는 사망이 발생한 경우 ④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다면 ⑤ 재산상 손해와 상해에 대한 책임은 면제하고, 사망에 대한 책임은 필수적으로 감경 또는 면제한다는 것이다.

위 내용만 보면 우리 법이 선한 의사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은 아래와 같은 맹점들로 인하여 사실상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 위 조항은 면책의 요건으로 `의사가 본인이 받은 면허 범위에서 응급의료를 제공하여야 함'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의사가 자신의 면허 범위에 포함되는 기초적인 응급의료행위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그 경계에 있는 응급의료행위를 제공하는 경우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의사가 고의로 악결과를 발생시켰다면 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과실과 중과실의 구별은 구체적인 경우에 사회통념을 고려하여 결정될 문제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므로 그 경계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는바, 피해자가 의사의 중과실을 주장하는 경우 결국 법적 판단을 받아야 결론이 나게 되므로 면책을 위하여 의사가 감수하여야 할 절차적 불이익이 크다는 점이다.

셋째 위 조항이 `선의에 의한 악결과'에 대한 법적 비난이 적절치 않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입법된 것임을 고려하면, 단지 그 악결과가 크다고 하여 법적 비난가능성이 부활하는 것은 위 조항의 입법 취지에 전혀 맞지 않는다. 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 상해와 달리 보아 완전한 면책이 아닌 감경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만으로도 선의의 응급의료행위를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의사가 선의로 제공한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에서 `잘 되면 보람 있고 못 되면 처벌받는다'는 불균형한 저울을 강요하는 한, `비행기 타면 술 먹고 자는 것이 최고'라는 일부 의사들의 농반진반의 냉소적 농담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처벌 논란 역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선의로 생명을 구하는 행위, 그것도 그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의료행위에 의한 악결과를 처벌하거나 손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지 다시 한 번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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